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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r 14. 2024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 데이

연인들의 축제

날씨가 봄을 재촉하듯 맑은 하늘에 햇살이 가득한 하루였다.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봄은 문턱을 넘어 행로를 시작하는 것 같다.
오늘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였다.
백화점, 쇼핑몰은 물론 가까운 편의점에도 선물용 캔디와 초콜릿을 대량으로 세일 판매를 한다.
오늘처럼 화창한 날은 젊은이들에게 더 좋은 화이트데이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중년인 필자도 젊을 때는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를 무척이나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커피숍과 카페가 범람했던 시기여서 연인들의 행사는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조성되던 시절이었다.

요즘이야 젊은이의 감성을 빌어 기업이 마케팅을 하면 한국에만 존재하는 축제일은 많지만 필자가 20대에는 연인들의 날이라면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 외엔 특별한 연인을 위한 행사는 없었다.
아마 그때를 시작으로 18K 금반지를 주고받는 커플들의 100일 기념일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다수 어르신들은 국적 없는 외국 행사를 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기념일이란 부정적 시각도 많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 기업도 좋고 젊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날이라면 당연히 긍정적 의미는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이젠 상식이지만 화이트데이는 서양에는 없는 동양권의 행사이며 밸런타인데이에 아이디어를 얻은 일본 과자업계에서 상업적 행사로 만든 기업 마케팅에서 비롯된 이벤트이다.
우리 부모님들이 좋아하시던 모리나가 캐러멜의 회사에서 화이트데이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유래도 있다.

그리고 밸런타인데이에 꼭 초콜릿을 선물로 주는 것은 아니며 미국에서는 사랑을 고백하며 반지와 함께 "Will you be my Valentine?"이라고 말을 하는데 의역하면 내 연인이 되어 달라는 말이지만 21세기에 이런 고백을 하는 미국 젊은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연인의 날이라는 개념은 변함이 없는 이유로 연인 사이에 선물을 주고받기도 하며 쇼핑몰 밸런타인 행사도 한다.

밸런타인데이는 초콜릿을 팔기 위한 기업의 마케팅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가톨릭 발렌타인 성인의 기념일로 시작된 뜻깊은 날이다.
유래를 보면 3세기 로마의 클라디우스 황제는 왕권 강화를 위해 젊은 청년들을 징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혼을 금지했다.

그러나 타인 사제는 국법을 어기고 많은 젊은 연인들에게 혼배성사를 주고 사랑을 실천하다 서기 269년 2월 14일 로마에서 처형당했다.
감옥에서 처형을 기다리던 발렌타인은 아르테리우스라는 간수의 눈먼 딸과 사랑에 빠졌는데 발렌타인의 절실한 믿음과 기도 때문에 기적적으로 간수의 딸은 시력을 회복했다.
처형을 앞두고 발렌타인은 간수의 딸에게 보낸 편지에 당신의 발렌타인으로 부터(Love from Valentine)라는 작별의 서명을 했고 그 편지가 유래되어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유럽에서는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전하는 풍습이 어어 졌으며 오늘날까지 서양에서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가 연인들의 날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
미국 및 유럽의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선물 세트를 세일 판매하기도 한다.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기 전부터 과자와 초콜릿은 부담 없는 가격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지는 강산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중 초콜릿은 세대를 떠나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는 식품이며 한국의 먹방 문화와 단짠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디저트 문화가 발전하면서 해외 고가 초콜릿 판매도 늘었다.

초콜릿은 중세 왕족이나 귀족의 애호품이었고 고가의 가치가 있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남미의 카카오로 만든 초콜릿은 기분을 좋게 하고 자양강장제 기능과 최음제의 효능도 함께 있는 음료로 서민들은 접하지 못하는 음료였다.
처음 식품으로 사용된 초콜릿은 카카오의 쓴맛이 강해 약효로 마시던 음료였으나 선교사들이 설탕을 넣고 마시면서 단맛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카카오의 원산지 멕시코 베라쿠스는 카카오와 고무나무가 잘 자라는 지역이다.
남미 올메카에서는 기원전 1,200년부터 카카오를 먹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시초의 식용으로 사용된 초콜릿은 건조시킨 카카오 열매를 갈아 원기회복 음료로 마셨다.
남미 마야 문명은 고유한 문자와 수학의 발달로 전성기를 이루던 시대에 마야 피라미드에서 카카오 풍년을 기리는 제사를 지냈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을 했다.
그 이유는 더욱 많은 피를 바칠수록 풍성한 카카오 수확을 얻는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아스테카에서 카카오 콩을 화폐로 사용할 정도로 카카오의 가치는 높았으며 카카오 콩 100알은 노예 한 명의 가격이었고 카카오 콩 8알이면 매춘을 할 수 있는 화폐와 같았다.
특히 아스테카의 무테스마 왕은 카카오 음료를 무척 즐겨 마셨던 것으로 전해진다.
쿠바를 정복한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카카오 음료를 처음 마신 유럽인이며 코르테스는 카카오의 사용법과 화폐로서의 가치를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 전한다.

아스테카에서 화폐로 사용될 정도로 귀한 카카오의 진가를 알게 된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는 코르테스를 앞세워 아스테카를 침략해 정복한다.
카카오와 초콜릿 음료는 그렇게 메소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다.

초콜릿의 페닐에틸아민 성분은 기분을 좋게 하고 도파민을 분출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 사유로 인해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유럽에 전파되며 유럽인들에게 초콜릿은 최고의 가치를 더했고 파리에는 초콜릿 카페가 등장했으며 유럽 곳곳에 초콜릿 가게가 많이 생겼다.

초콜릿의 원료 카카오를 더욱 많이 생산하기 위해 카카오나무가 남미에서 유럽의 식민지 아프리카로 건너가 대량으로 재배되었다. 

이때 '하얀 악마, 벨기에의 살육자'로 불리는 벨기에의 왕 레오폴드 2세는 유럽 아프리카 협회 회장직을 맡고 유럽 국가들로부터 콩고의 통치권을 받아낸 후 벨기에 국토의 75배나 되는 콩고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레오폴드 2세는 당시 돈이 되는 고무와 상아에 집착했고 카카오 생산에 광분했으며 그는 초콜릿 음료를 즐겨 마셨다.
수탈 과정에서 작업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노예들의 손을 자르는 만행을 저질렀고  선진국에서 추정하는 콩코에서 살해된 노예는 1,000만 명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국제 사회의 강력한 비판에도 레오폴드 2세는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지 않고 자연사로 생을 마쳤다.
사실 콩고 노예들의 피의 역사로 카카오 초콜릿이 탄생하고 발전한 유산이 오늘날 최상의 초콜릿으로 인정받는 벨지움 초콜릿이다.
그리고 흔하게 사 먹는 고형 초콜릿은 19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산업혁명을 지나 현대,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최상의 초콜릿은 예나 지금이나 벨지움 초콜릿이며 

세계 여러 지역의 유명한 초콜릿은 많지만 벨지움 초콜릿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맛은 마치 연인의 달콤한 키스를 능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성에 맞게 여러 백화점에서는 이때를 맞춰 많은 양의 벨지움 초콜릿을 세일 판매한다.


젊은이들의 희망이 차단된 시대란 말을 많이 한다.

연인이 있어도 돈이 없어 결혼을 못하고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돈이 없으면 대학 입학은 꿈도 못 꾸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조물주 보다 건물주가 최고인 시대이고 오리지널 명품백이 신분을 나타내는 세상이라 해도 사랑은 감성이며 우리 젊은이들의 정서를 가로막을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뜻한 이 봄, 좋은 계절에 사랑을 하자.

봄에 싹튼 사랑은 세월과 함께 충만한 결실을 맺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화이트데이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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