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세계대전이 핵전쟁이면 그 이후의 전쟁은 몽둥이와 돌멩이로 하게 될 것이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역사적으로 서양세계의 패권은 로마에서 스페인, 영국에서 미국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태평양을 사이 둔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진행되고 있으며 정치적 군사적 긴장 또한 조성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전쟁을 통해 흥망을 거듭한 결과로 만들어졌고 범람한 피의 대가로 세계의 지도는 그려졌다. 종교와 사상, 역사적인 영토 확장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 뒤에 숨겨진 권력의 탐욕과 광기로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육한 전쟁은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전쟁보다 더욱 참혹했던 광란의 시기는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대항할 수 있는 아군과 적군이 있는 전쟁보다 자신들과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저항조차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을 사냥하고 생포하고 사육했던 노예제도만큼이나 잔혹했던 역사는 없다. 아프리카와 남미에 살던 원주민은 가족이 있고 그들의 사회가 있으며 그들의 종교와 문화가 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했을 뿐 백인들과 꼭 같은 인간이었고 부모와 가족, 혈연의 사회에서 생활하던 존엄한 생명체였다. 자신들과 피부색이 다르고 미개한 인종이라는 이유로 총과 칼로 무장한 인간들에게 남획되어 동물처럼 잡혀온 유색인종들은 영문도 모른 채 약탈자들에게 끌려가 겉만 인간인 소유물로 비참한 삶을 강제로 살아야 했다.
스페인은 남미 제국의 마야문명을 철저히 파괴하고 엄청난 살육을 자행했으며 남미 원주민들을 자기 땅으로 끌고 갔고 남미의 모든 은을 채굴해 수탈하고 그들의 땅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원주민의 거주지에 교회를 세웠다. 노예들을 선박으로 수송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충분한 물과 식량도 없이 서랍과 같은 상자 속에 갇혀 화물처럼 운송되었고 항해 과정에서 그들의 절반에 달하는 생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살아남은 원주민의 대부분은 정신이상 증세를 나타냈다. 식민지에서 그들의 언어까지 말살한 결과 오늘날까지 남미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쓰며 고유한 언어가 있던 아프리카의 나라들도 영어가 모국어이다. 카리브해, 바베이도, 남미에서 노예무역으로 영국과 유럽으로 끌려간 노예의 95%는 대부분 설탕산업(Sugar Plantation)에 투입되어 대가 없는 노역을 했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신체가 절단되는 가혹한 형벌을 받으며 살아야 했다. 당시 상품이었던 1인 성인 노예의 가격은 총 3자루, 럼주 3통 또는 면직물 1 필에 거래되었다. 영국과 유럽 이외에 미국 대륙으로 팔려간 노예는 영국 노예의 5% 밖에 되지 않았으니 그 숫자를 짐작할 수 있다. 노예는 가축처럼 무역품으로 보험가입 대상 물품이었고 항해과정에서 풍랑을 만나게 되면 배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물건을 버리듯 흑인들을 바다에 던져 수장시켰으며 무역선에서 흑인들을 150명이나 익사시킨 사건에서 노예상인은 선주에게 배상을 요구했으나 흑인들을 몰살한 선주와 선원들은 아무도 법적인 처벌을 받지 않았다.
몇 개월씩 소요되는 노예의 수송기간에 생기는 노예 사업주들의 금전적 손해를 대비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보험이었고 노예 산업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의 보관을 은행이 하게 되면서 은행이 번창했다. 그리고 노예 산업과 서양의 식민 정권의 뒤에는 언제나 가톨릭 교회가 있었으며 사제와 주교는 특권을 누리던 최상의 지배계층이었고 그 당시 교회는 반인륜적이란 이유로 반대의 움직임만 보였을 뿐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 흑인 노예들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노예는 인간이 아닌 가축이라는 자본주들의 주장을 교회는 부정하지 않았고 가축과 다름없는 노예는 법의 보호에서 제외되었으며 교회가 노예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흔적은 역사를 통해 찾아볼 수 없다. 비참하고 참혹한 노예 역사는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 로마제국에도 있었지만 그 당시의 노예는 전쟁 패배국의 국민들로 이루어진 역사의 흔적이었으며 유색인종에 국한된 노예무역과 산업자원은 아니었다.
흑인 노예의 역사는 서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대서양 노예무역을 통해 절정을 이루었고 최초 유럽의 노예무역은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에서 시작되었으며 유럽 강대국의 아프리카 식민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유럽의 흑인 노예 산업은 더욱 활발해졌다. 1526년부터 1867년까지 약 1천2백5십만 명이 넘는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로 끌려갔으며 항해 도중 15%가 사망했고 그 외의 국가로 팔려간 노예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벨기에의 두 번째 국왕 레오폴드 2세는 콩고에 식민지를 세우고 1천만 명 이상의 콩고인을 학살했으며 가장 잔인한 역사의 인물로 지금까지 콩고의 학살자라 불린다. 유럽에서의 노예 산업은 설탕산업과 함께 영국 경제에 막대한 부를 가져왔고 은행과 보험이 함께 성장했으며 후에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경제의 기반이 되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으로 설탕을 들여온지 500년이 넘은 시기에 이르러 노예 1명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수확한 사탕수수는 4,200배의 이익을 창출했다. 영국인들은 노예들이 재배한 차에 노예들이 생산한 설탕을 섞여 즐겨 마시고 자신들이 만든 술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차를 즐겼으며 당시의 차는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무역품이었다.
노예제도는 유럽에서 폐지되기 시작했으나 그 이유는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노예를 먹이고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보다 각 지역에서 상경한 값싼 노동자의 저렴한 임금이 노예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운영비보다 싸게 들었기 때문이며 프랑스혁명 시절 프랑스의 노예들 때문에 노동자의 지위가 손실되고 있다는 혁명의 목소리에 묻혀 프랑스 노동자들을 위하여 노예제도가 점차 없어진 것이지 노예의 인권과 관련된 인본주의와는 전혀 무관한 결과였다. 유럽보다 가장 늦게 링컨 대통령에 의해 노예제도가 폐지된 미국은 남북전쟁의 결과로 노예들이 해방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남북전쟁은 연방정부의 유지를 위한 정치적 목적과 번창했던 목화산업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전쟁이었지 노예 해방을 위한 전쟁은 결코 아니었으나 4년간의 동족 간의 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하고 흑인의 해방도 함께 포함된 전쟁으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크며 미국의 노예해방은 브라질 사탕수수 산업의 노예해방에도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선진국 정권과 노예 산업의 주역들은 우성 유전자와 열성 유전자를 구분하려는 노력에 매진했고 종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려 혈안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만행을 합리화할 수는 없었으며 그들의 광기로 희생된 유색인종의 숫자는 식민 정권의 확대와 함께 비극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식민 정권의 공식적인 사과와 보상은 현대에 이르러 몇몇 국가에서 미약한 수준으로 이뤄졌지만 실상은 자국의 국제적 이미지 쇄신과 보상차원의 명목으로 산업시설 인프라를 식민지였던 나라에 구축하고 자국의 자본과 기술을 투입하여 현지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경제적 이익에 목적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예제도의 참혹한 역사는 지나간 과거사의 흔적일 뿐 그들의 희생을 보상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인종 간의 갈등과 마찰은 끊이지 않으며 같은 국민이면서도 미국에서는 흑인들의 거주 지역을 우범지역으로 분류하고 범죄 발생률을 흑인사회에게 집중시키고 있는 현실 속에 아직까지 끝나지 않는 인종문제와 관련된 사건과 사고는 세계 곳곳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세계적으로 공식적인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오늘날 지금 이 시간에도 노예는 속출하고 있으며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현대의 노예는 다름 아닌 경제의 노예라 할 수 있는 돈의 노예, 일의 노예와 부채의 노예를 말할 수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에서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구조로 존재하고 있다. 현대는 총과 칼이 아닌 경제로 전쟁을 하는 시대이며 부채로 인간을 노예로 만들고 나아가서는 한 나라를 자본으로 복속시키는 세계가 된 것이다. 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2020년 1월 31일 브랙시트(Brexit)를 단행하고 유럽연합(EU)을 탈퇴했고 중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으며 양국의 정치,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 국제적 문제를 함께 동반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변화는 곧바로 우리의 체감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선진국 경제의 미세한 변동에도 주변 국가와 경제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모든 기업은 비상이 걸린다. 정치제도와 자본주의의 거대한 문명에 소속된 개체로서 과학문명의 혜택에 길들여진 인류는 사회구조의 시스템을 원망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기류처럼 연결된 경제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기업도 국가도 필요할 때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나름대로 매출과 손실, 기간에 따른 이자율도 계산하고 은행을 찾고 은행은 고객의 신용을 이용해 갖가지 혜택으로 포장한 금융상품을 추천한다. 그러나 대출계약서에 서명한 순간부터 자산의 실질적 소유주는 은행으로 옮겨지고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는 한 자신의 사업과 재산은 은행에 귀속되는 계약이 시작되는 것이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원금과 이자를 기간 내에 못 갚게 되면 대출금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을 지는 악순환은 계속되고 그때부터 부채의 사슬에 얽매여 빚을 갚기 위한 은행의 노예로 전락은 시작된다. 은행은 고객이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이든 가리지 않고 고객을 부채의 노예로 만들어 복종시키며 성장하는 것이 다름 아닌 은행의 업무이고 은행의 실체이다. 그러나 대출에서 비롯된 개인의 잘못된 선택은 자신의 책임이며 은행과 사회구조의 탓도 책임도 아니다. 어찌 보면 은행과의 대출계약서는 예고된 노예계약과 다름이 없는 것이지만 은행은 광고와 합법적인 영업만 했을 뿐이며 등 떠밀며 은행 돈 써달라고 사정하지 않았고 강요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고객의 문제는 고객 몫으로 귀결되고 은행은 이익만을 계산하며 사냥하듯 힘없는 수많은 고객들을 수시로 유혹한다.
현대의 인터넷 사회는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하지 않고 개인의 신상과 금융기록 및 건강기록에서 통화내역, 동선뿐만 아니라 며칠몇 시에 식사한 메뉴와 금액까지 기록, 저장되며 열람이 가능한 현대판 판옵티콘(panopticon) 속에 살고 있다. 누구나 24시간 감시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자유가 속박된 노예의 삶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CCTV의 감시 속에 정해진 업무량을 채우기 위해 긴장을 늦출 수 없고 업무량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은 언제나 이어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기획안도 회사의 이익과 대표의 업적으로만 종결된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나 상사의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더라도 해고되지 않으려면 참고 견뎌야 하는 상황은 노예의 생활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어도 법의 도움을 받는 경우는 자신의 일자리를 포기하는 상황을 감수해야 하므로 쉽게 이행하지 못하고 현재의 생활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것이 힘없는 사람들의 현주소이다. 대부분의 고용계약서는 회사의 규정에 맞춰진 서류이며 계약서의 내용과 다른 행동과 결과는 불이익과 법적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고용주의 조건만 명시된 고용계약서는 과거의 노비문서와 다를 바 없는 것이며 사회적 보완제도가 공정하게 실행되지 않는 사회는 자본가의 횡포를 묵인하는 과거의 계급사회와 동일한 상황이라 말할 수 있다. 과학발전과 현대의 물질문명은 인류에게 더할 나위 없는 편익을 제공하지만 자본주의의 병폐와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일자리와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자본가가 세운 조직의 일부로 소속되어 삶을 유지해야 하고 수세기를 통해 정립된 사회구조 안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존엄과 자유의 보장이 헌법에 명시되고 개성이 존중되며 개인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지만 경제적 여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귀속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돈을 위해 복속된 삶을 살아야 하며 목적을 위해 당연히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부당한 사회의 대우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함께 사는 세상, 평등한 세상을 지향한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공평한 세상은 존재할 수 없고 평등한 관념도 존재할 수 없으므로 형성된 질서와 정립된 계급을 떠나서는 사회가 유지될 수도 없다. 정부에서도 부당한 사회의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한 법안을 만들어 정책을 제정하고 없는 자들의 권익을 보장한다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이며 경제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차별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소수계층의 부당한 실상이 아니더라도 현대사회는 개인의 목적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스스로 계약된 삶을 선택하는 것이며 부의 창출을 위해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지만 모든 일은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결과는 언제나 자신이 수용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노예와 다름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일이고 강요에 의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을 위한 선택은 명확하게 구분된다. 계속 일하는 방법과 그만두는 방법 이외에 해결방안은 없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세상이며 예나 지금이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경제적 가치에 따른 사회계층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시대는 개방되어 있고 변화를 위한 선택은 언제나 수용하며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의 다면 경제는 개인의 능력에 따른 상승을 제한하지 않으며 자신의 아이디어가 경제적 이익과 연결되는 시스템이 구축된 세상이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분야가 넘쳐 나고 아직도 잠재한 수많은 가치가 존재하며 시대가 급변하고 다양해질수록 그에 비례하는 성장 가능성도 많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구글, 아마존이 글로벌 기업으로 지금과 같이 성장하리라는 상상을 아무도 할 수 없었고 IT기업의 성공신화는 오래된 역사가 아니며 자신만의 기술을 활용한 스타트업 기업과 유니콘 기업도 몇십 년의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은 기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그 밖의 연동된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은 실용이 가능하다면 경제적 가치와 연결되는 것은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요즘은 석사, 박사 학위가 없어도 교육 분야의 유명강사로 성공한 사람들을 TV, 인터넷을 통해 자주 볼 수 있는 능력과 개성이 존중되는 시대이며 게임분야의 전문가는 한국인이 많고 미국 할리우드 Fix사에서도 한국의 그래픽 전문가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대부분 젊은 CEO가 길지 않은 기간에 이루어낸 결과이고 모두가 최고의 학력과 훌륭한 배경이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의 성공은 결코 신화가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이고 시대의 변화에 대응한 정보를 활용했으며 열정적인 일에 대한 애착의 가치가 성공이라는 결과를 창출했다. 그리고 성공을 향한 과정에서 고용인으로서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술은 한나라의 경쟁력을 나타내고 현대는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세상이므로 수동적으로 지속되는 생활에서는 변화도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고 지금의 노예와 같은 생활은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라는 명확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니체는 ‘고귀한 가치평가는 선을 추구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지향하지만 천박하고 무지한 가치평가는 혼란과 몰락을 초래할 뿐이므로 인간은 계속 발전해야 하며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지식의 게으름을 피하라.‘고 강조했다. 자신의 신분을 바꾸고 싶다면 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