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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Sep 23. 2021

갈 길을 잃은 교회

신앙의 의미

가끔 뉴스에서 상상하기조차 힘든 희한한 일들을 다.

길을 건너다 달려오는 자동차가 급제동을 하고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면한다.

말기 암환자가 몇 달 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몇 년째 건강하게 살고 있다.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확률적으로 희박하고 과학의 범주를 벗어난 일이 발생하면 종교적 관점으로는 기적이라 하고 과학적으로 해석이 불가능하다면 미스터리(mystery)라고 한다.

주위에서 그런 사실을 접하게 되면 어르신들은 그 사람이 평소에 착하게 살아서 그런 일이 있다고 결론을 짓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신자라면 주님의 은총이고 기적이 실현된 것이라 믿는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때로는 나쁜 일도 생기기 마련이며 사건, 사고는 수 없이 발생하지만 누가 피해를 당할 것 인지 예측할 수  없다.

불안정한 세상에서 세속이 주는 가치와 만족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면의 평화와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한 이유로 종교에 의지한다.

선과 악은 빛과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게 세상이고 도덕과 윤리는 가치판단의 기준이자 유혹과 욕망을 제어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양심보다 강한 것이 탐욕이므로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고 신앙생활을 한다.

저 마다 종교의 의미는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지향하는 목적은 공통적이며 현실을 초월한 믿음과 평화를 위해 기도를 하고 신앙인이라면 내세를 믿는다.

어떤 일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행운이라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을 기적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고 세상의 순리와 자연의 법칙을 종교적 관점에서는 신앙으로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과거에 종교는 신성불가침이었고 절대적이었으며 자연의 근원 또한 신의 영역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세상의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증명하게 되었고 우주의 영역까지 과학적 증명이 가능한 세상은 종교의 기능을 약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진정한 가치의 기준이 신앙이라면 무엇보다 신앙은 내면의 고뇌와 갈등을 제어할 수 있는 불변의 원칙이며 그로 인해 얻어지는 위안과 평화는 세상에서의 어떤 것보다 강력한 삶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

모든 종교는 긍정의 원리와 선과 악의 구별, 인본주의를 기본으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지만 교회는 아직까지 교회법에 의한 절제와 인내, 희생을 요구하고 선과 악을 기준으로 죄인을 규정한다.

그러나 교리의 진정한 가치는 공감이 가능한 믿음을 제시하고 사랑을 전파해야 하며 세속이 주지 못하는 위안과 평화를 제공해야 한다.

신자로서의 의무와 교회법이 강조되고 형식을 위한 전례와 일방적인 교리의 주입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내용도 목적도 없는 거짓 신앙일 뿐이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성한 포도나무와 다름이 없다.

교회에 갈 때마다 빈자리가 늘어나고 젊은 사람을 보기 힘든 현실은 세속의 가치와 물질적 풍요가 종교보다 중요한 현대인의 생활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른 종교의 기능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반증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성서의 내용은 수 세기가 지나도 바뀌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성역이자 신성한 성전임은 변함이 없지만 시대가 변하면 강론과 설교 또한 시대의 상황에 맞는 신앙을 전달해야 하며 원론적 교리와 교회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고 공감을 얻을 수도 없으며 전교의 가능성은 희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성경의 내용과 교회법은 원론에 위배되지 않은 시대적 해석이 필요하고 과거와 현대의 사회적 변화를 현실에 맞게 여과하고 융화시키되 신앙의 원리와 의미는 그대로 전달되어야 하는 깊이 있고 진화된 성직자의 역할이 절실한 것이며 세뇌에서 벗어난 성숙한 종교관이 신자들에게도 정립되어야 한다.

매주 교회에 다니지만 세속적 가치만을 추구하고 위선을 행하면서 신앙인이라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업을 위해 애타게 기도하고 자식이 명문대에 입학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청원기도를 하지만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줄 모른다.

신부나 목사에게 순종하고 잘 보이는 것을 신앙이 깊은 것으로 여기고 교회에 돈을 많이 내는 것을 축복이라고 자부하며 고백성사를 보고 내 죄는 없어졌노라 스스로 판단한다.

성직자와 종교지도자는 의무를 강조하고 십일조를 내세우며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을 성숙한 신앙인이라 부르짖는다. 그들은 부유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높은 자리에서 존경받고 대접받기를 좋아하며 겉으로는 청빈과 겸손을 강조하지만 돈 많은 신자들과 고급 식당에서 호화로운 식사를 즐기고 골프를 치며 기도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

그들의 교리에 세뇌된 무지한 신자들을 면죄부를 사듯 교회에 돈을 갖다 바치며 자신의 행적을 신앙이라 과시하고 마지못해 참여한 불우이웃 돕기 행사의 모금과 봉사활동을 사진으로 남기고 업적처럼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진정한 의미의 신앙이란 신과 자신의 관계에서 기도로 형성되는 영성이고 지식이나 이론이 아닌 생활 속의 사랑이며 호흡하는 영혼의 양식이다.

성직자는 전례를 집전하는 제사장일 뿐 신의 대리자가가 아니며 신앙의 중재자가 자격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주관으로 성경을 왜곡하거나 신앙을 명목으로 돈을 버는 행위는 명백한 사기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며 사이비교주의 행위와 다를 바 없는 탐욕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남의 영혼을 간섭할 수는 없지만 진정한 신앙이란 명확한 선과 악의 개념을 통한 사랑이 기본이므로 정의를 내세운 편향된 사상으로 왜곡된 이론은 결코 신앙과 연결될 수 없다.

요즘은 교회가 성전이 아닌 사회구조의 시스템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기관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크나큰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사랑을 실천하고 전파해야 할 전교는 교회의 홍보와 영업활동이 되었고 월말 결산을 거룩한 성전에서 브리핑하듯 보고하며 매달 돈 내란 소리는 그치지 않고 신자 수가 지 않는다고 신자들 탓만 하기 바쁘다.

착한 신자들에게 교회 일을 떠 맡기고 봉사를 강요하면서 정작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고통받는 신자들에게 위로의 문자 메시지도 보내지 않는다.

종교마다 교리에 의한 가치가 있고 신앙의 목표가 있기 마련이지만 신앙의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위안과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종교이며 신앙이란 결코 세뇌로 주입될 수 는 사상이 아니므로 진정한 교회의 역할이란 고통받는 자들에게 삶의 위안과 영혼의 안식을 주는 안식처이어야 하며 세속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진정한 믿음을 제시해야 한다.

신앙이 확산되고 교회가 늘어난다는 것은 사랑이 실현되는 긍정적 현상이지만 교회의 재원이 늘어나고 호화로운 교회를 짓는 외형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계적 유산으로 등재된 유럽의 대성당을 짓기 위해 몇 세대에 걸쳐 헤아릴 수 없는 노예들의 땀과 피가 교회의 토대가 되었고 백성들의 고통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성전이 올려졌다. 찬란한 역사의 유산이지만 역사에 새겨진 백성들의 고통의 흔적이기도 하다.

남미에 세워진 수많은 교회는 마야문명의 파괴로 시작된 약탈과 살육의 대가였고 식민지에 건설한 스페인 정권의 유산이다.

중세 가톨릭의 탐욕과 부패로 수많은 성인, 성녀가 희생당했고 개신교가 탄생했지만 고귀한 성인들의 희생의 결과로 신앙의 의미는 존속될 수 있었다.

과거 먹고살기 힘들고 교육이 부재되었던 시기에 박해를 통해 뿌리를 내린 한국교회는 고난의 역사와 함께 성장했지만 지금 우리의 교회는 어떤 모습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비대해진 성장은 본모습을 잃기 쉬운 법이고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며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군사독재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정의구현 사제단은 초심을 잃은 지 오래됐고 친북을 외치고 있는 현실에서 갈 곳을 잃은 교회가 점점 늘어나고 본분을 망각한 사제들이 고통받는 서민들을 외면한다면 세대가 교체될 무렵의 한국 교회는 빈자리만 가득한 텅 빈 모습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모든 게 변한다 해도 변해선 안 되는 것이 신앙이고 믿음이며 존재의 가치는 결코 유형의 자산에서 찾을 수 없다.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언제나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 옆에서 사랑을 베푸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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