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키보드로 모든 컨트롤이 가능하고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서류를 작성하고 전송할 수 있으며 사무실에서 세계 각국을 화상으로 연결해 언제, 어디서나 국제회의가 가능한 세상이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상은 적응하기 무섭게 새로운 시스템을 접해야 하고 기존의 편리한 시스템도 반복되는 업그레이드를 통해 불필요한 진화를 강요당하는 현실 속에 현대인은 살고 있다. 소비자는 단일한 상품을 구매해야 하고 제품마다 내장된 과대한 기능과 프로그램은 사용자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기업의 이익만 창출하는 수단이 되었다.
글로벌 시대 경제의 교류와 통합은 높은 수익창출만이 목표이기 때문에 획일화된 거대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고 다국적 기업의 전문화 확산은 진보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그들의 탐욕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선진국 거대 기업의 영향력으로 각국 정부는 자유무역과 투자협정의 연맹을 결성하고 환경규제가 없는 나라와 임금과 세금이 낮은 나라로 국경 없는 개발과 투자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었고 대량생산과 거대한 수익을 위한 시스템은 가속화되고 있다.
지역의 특성과 나라의 전통은 배제된 경제구조를 만들고 각국의 다양성은 통제가 가능한 균일한 생산 체제로 바꾸어 놓았다.
심각한 문제는 모든 분야의 대규모의 생산은 자동화에 의한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지지만 소멸되는 분야 또한 증가하는 양극화 현상이 도미노처럼 확산된다는 사실이다. 기업이 주도하는 대형화, 대량 생산체제는 소비패턴의 변화로 연결되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의 국경 없는 범람은 감성 마케팅에 노출된 소비 중심 문화를 가속시킬 수밖에 없다.
선진국이 주도하는 경제의 기류는 곧바로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매스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는 서구문화는 TV와 인터넷을 통해 획일화된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쏟아지는 거대 기업의 광고가 확산하는 브랜드 파워는 제3세계의 도시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나이키 운동화에 아디다스 후드 재킷을 입고 맥도널드에서 식사를 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세계의 젊은이들은 BTS와 같은 하나의 스타에 열광하고 꼭 같은 음악과 할리우드의 충격적 영화에 자극을 받는다.
폭력을 조장하는 게임이 확산되고 폭력을 미화하는 영화가 돈을 벌고 선정성을 예술로 포장하는 그릇된 문화 상품이 범람하지만 결과적으로 점차 잠식하는 문화의 이익은 상업예술을 생산하는 기업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며 그 기업은 서구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이다.
산업구조뿐 아니라 농업 또한 생명공학을 통해 만들어진 유전자 변형 작물은 수확량 증대를 위해 개발되고 생산되면서 지역 특성에 맞는 고유한 작물들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다.
유전자 변형 작물이 대규모로 재배되는 지역에서는 인공 유전 물질에 노출되지 않은 재래종이 자라날 수 없는 토양의 형질 변화가 일어나고 생태계의 교란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지역적 특성과 자연환경에 적합한 다양한 작물보다 상업적 가치가 있는 작물만을 유전공학과 첨단기술을 통해 빠른 수확과 대량생산이 가능한 재배법이 확산되는 현상으로 이것은 생물학적 안정성이 파괴되고 생태계의 변화를 초래하며 자연과 인간의 순리적인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해양생물의 개체 수는 해마다 감소하고 있으며 지구의 산호초는 1/3이 멸종됐고 남아있는 산호도 계속 죽어가고 있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인해 지금의 속도로 지구 상의 동식물이 멸종된다면 다음 세대에는 즐겨먹던 생선과 채소들은 식탁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정부의 재정을 위한 정책과 거대한 기업들은 단기적 이익에 몰두한 채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라는 대량 생산이 미래 인류를 위한 유익한 방안임을 내세워 수익을 챙기기 바쁘다.
많은 경제학적 이론과 거대 기업의 프로젝트는 단기적 이익과 근시안적 혜택을 목표로 하지만 발전과 수익 이면의 부정적 측면은 언제나 가려져 있었다. 자급자족의 경제는 존재할 수 없는 세계는 대외 무역에 대한 의존도는 증가하면서 문화와 교육뿐 아니라 사람들의 가치관마저 획일화시키고 있다.
대기업이 지은 비슷한 구조의 아파트에 대기업이 만드는 자동차,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가정용 전자제품은 세계 모든 현대인의 생활 속으로 자리를 잡았고 국적과 브랜드만 다를 뿐 모든 사람들은 획일화된 삶을 영위하고 그들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을 낙후된 실패자라고 치부한다. 좀 더 큰집에 살고 좀 더 비싼 차를 갖고 연봉이 오르는 게 모든 사람의 꼭 같은 희망이 되었고 업그레이드된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자신과 꼭 같은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적성은 배제된 동일한 교육을 강요하며 자녀들을 학업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의식은 당연한 삶의 모습이 되었고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공동체는 새로운 계급사회를 만들고 사회를 분열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동일한 형태의 라이프 스타일은 무형의 가치마저 유형적 척도로 평가되는 심각한 오류를 낳는다. 고소득층의 과소비가 최고의 문화로 둔갑하고 개성이란 경제 가치가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으며 희소한 가치마저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이 이미 도래한 것이다.
개발과 발전의 그늘에는 빈민층으로 몰락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사회는 자본주의의 주역이 주도하는 경제 시스템을 통한 획일적인 문화 속에 단계 별 업그레이드를 위한 노력만이 이 시대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가 되었다.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등장한 능력주의는 치열한 경쟁과 질주본능을 유발하고 엄선된 소수의 브레인들은 자본가의 도구로 사용되지만 자신의 유효기간은 알지 못한다.
빈익빈 부익부의 증가로 나타나는 양극화 경제의 가장 큰 원인은 지식의 확산이 없다는 것으로 전 국민의 교육 수준, 전문적인 노하우, 기술 수준이 선진화되지 못하는 데 있다.
20세기 말 선진국을 따라잡은 아시아 강국은 자본의 이동에 의한 외국자본의 투자가 아니라 인적자본의 투자로 스스로 필요한 재원을 조달한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자급자족의 경제는 20세기 가난에서의 탈출의 수준으로 개발도상국에서 마감되었고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선진국의 정상이 모여 결성한 국가 간의 연맹은 거대 기업의 활동에 자유로운 정당성을 부여하고 연합된 산업 인프라 구축을 통해 제3세계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막대한 선진국의 자본이 투입되고 전문 기술과 첨단 시스템이 집중되는 선진기업의 대형 프로젝트는 정부의 합의에 의해 무상으로 가난한 나라의 땅을 사용하고 그 나라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대규모의 투자와 개발이 이루어지지만 가난한 나라의 혜택이란 그 나라의 자연이 파괴되고 대책 없는 인구이동과 노동자의 손에 쥐어지는 임금이 전부이다.
그러나 개발과 진보라는 선진국과 기업의 탐욕으로 발생하는 폐해는 언제나 숨겨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GNP의 수치 상승을 위해 매진할 뿐 성장 이면의 부정적 문제는 선진화의 당연한 진통으로 치부해 버린다.
즉 획일화된 선진국의 경제 시스템과 문화의 변화를 당연한 현대문명의 진화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획일화된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길들여진 과학의 편익과 눈앞의 이익을 위해 자본주의의 폐해마저 어쩔 수 없는 순리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폐해는 한국도 선진국과 다름이 없는 상황이지만 경제의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는 심각한 경제난을 도외시하게 만들고 있다. 기업이 생산하는 수익의 혜택은 소수의 몫으로 돌아가고 이미 경제상황에 따라 바뀌는 사회 구조는 계속해서 낙오자를 양산하고 소멸되는 분야는 증가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국가의 몫도 기업의 탓도 아닌 결과로 귀결되고 만다. 세계 경제 11위의 랭킹에만 집착한 정부는 섣부른 여유로 경제를 평가하고 있으며 한국의 실정이 간과된 정책은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을 촉진하고 해외 투자는 빠져나가도 정치권의 포퓰리즘은 대책 없는 혼란만을 가중시키고 있다.
자본주의의 속성은 규모가 크던 작던 마찬가지이며 국적이 달라도 동일한 것이다.
특히나 한국의 자본투자가 금융업으로 집중되고 대기업의 공장은 외국에 있으며 본사와 함께 주식투자마저 해외로 향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선진 자본주의의 막대한 폐해가 한국에도 도래할 것이라는 근거 있는 예측을 하게 된다.
물가는 오르고 사는 게 힘들다는 서민들의 목소리는 경제의 상황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고 체감경기는 곧바로 국가경제와 연결되는 것이다.
국민들의 희망이 사라지는 정서는 심각한 경제의 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인데 시기를 틈탄 편협한 사상과 정책이 고개를 들고 정권을 위한 포퓰리즘이 서민들의 고된 정서를 현혹하면 사회의 혼란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강력한 정책도 획기적 대책도 글로벌 경제의 순환을 바꿀 수 없으며 세계의 경제학자들의 학설과 예측도 경제의 위기를 해결한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역사는 증명한다.
획일화란 상부의 조정과 통제가 가장 편리한 시스템이며 권력층의 의도대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구조를 말한다.
중세 시대의 가톨릭은 교황청이 유럽의 모든 왕실을 휘하에 두고 권력을 남용하고 부패하기 시작했고 사회주의와 독재는 하나의 권력이 광란의 전쟁을 일으키고 세계를 사상으로 분리시켰다.
현시대의 자본주의의 막강한 힘은 국경을 무너트리고 자본의 위력으로 획일화를 이뤄낸 선진 자본주의는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으며 자본은 이미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이 되었다. 권력의 광기가 전쟁을 만들었다면 자본의 분노는 세계를 어떻게 만들지 예상할 수 없다. 성난 민심은 정권을 바꿀 수 있지만 화패 없이 생존이 불가능한 인류는 자본의 힘에 복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후 경제성장을 달리 한 이유는 경제는 자본주의지만 정치는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일률적인 조정과 통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구 상에서 모순의 나라로 구분되는 정치와 경제의 특수성을 가진 나라이며 수세기 동안 사회주의를 유지해온 나라이므로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는 다른 체제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어렵다고 사회주의의 계획경제를 답습한다면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처럼 국가 부도의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자본은 경제의 에너지이자 핵심이다. 사상과 이데올로기, 종교적으로도 접근과 해석이 불가능한 대상이 자본이며 거대한 경제의 기류는 세계를 변화시켰지만 거대한 성장일수록 부정적 폐해 또한 거대한 법이다.
물론 경제의 성장과 첨단과학이 부정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근시안적 수익이 장기적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오류가 사회를 형성하는데 무책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며 그로 인한 윤리와 가치관마저 흔들리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막대한 거금이 투입되는 개발과 투자는 대규모 수익창출만이 목적이며 정부가 허가한 해외 자본에 의한 국가 간의 사업은 균형 있는 장기적 성장과 산업 인프라의 혜택이 해당 국가와 지역 주민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경제 지표만 상향시키고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손실과 위험 부담은 감춰진 대형 개발은 자본주의 이익을 나눠 갖는 정상 간의 거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경을 넘는 투자는 양국의 상이한 법률을 조율해야 하고 현지에서 적용되는 국제법이 정상 간의 계약에 명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크던 작던 언제나 계약이란 강자에게 유리한 법이며 프로젝트의 특성에 따라 변동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형 투자와 개발은 포장된 단기적 이익만 드러날 뿐 개발로 인한 부정적 피해는 거대한 획일화의 물결 속에 수몰되고 마는 법이다.
그러나 세계는 변하고 있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한 논의는 국제적인 대응방안을 위한 협력이 일어나고 있으며 세계 전역의 산업사회에서 자연과 인간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움직이고 있다. 기업의 파렴치한 경영은 시대가 용납하지 않는 반면 사회 각 분야의 모든 영역에서 생명과 자연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자각과 인간 중심의 가치를 살리자는 기업의 변화 또한 활발하다. 이제는 기업도 환경문제를 배제한 생산체제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디젤엔진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 중심으로 세계는 움직이는 것이고 자본의 힘이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경제의 주체는 소비의 주체인 사람이다.
이미 진행된 경제의 순환을 역행할 수는 없는 것이며 형성된 경제구조를 바꿀 수도 없지만 사람이 우선인 세계는 결코 변함이 없어야 한다.
자연의 순환에도 법칙이 있듯 경제의 순환도 마찬가지라 희망을 갖는다.
긍정적 문화가 정착한 곳에는 편협한 사상도 이기적인 탐욕도 들어설 자리가 없는 법이고 긍정의 에너지는 긍정의 세상을 만드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