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의 교차로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언제나 아쉬움만 가득한 것이 인지상정인지 모른다.
특히 냉혹한 비즈니스는 결과가 모든 것을 평가하기 때문에 계획에 미치지 못한 성과는 싸늘한 계절과 함께 자책만을 가중시킨다.
경쟁에서의 승리란 남들과의 비교가 아니라 그래프로 나타난 한 해의 도표로 귀결되기 마련이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 위안이나 합리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가치는 과정에서 평가되는 법이 없으며 승패의 결과는 수익의 양으로만 측정되기 때문에 가장 솔직하고 사유가 없는 것이 결산이다.
어떤 분야이던 비즈니스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며 수익이 없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경제 상황이 나쁘다 해서 사업이 안 된다는 말을 하지만 아무리 불황이라 해도 먹고사는데 필요한 거래는 발생하고 역사적으로 공황이 세계를 덮치고 이름 모를 전염병이 창궐하던 과거에도 상거래는 인간의 생활을 위한 필수적인 삶의 방식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사람들은 경제의 주역으로 기업을 이끌었고 고난 속에 성장한 기업들은 사회를 발전시켰다.
일을 할 때 감성은 불필요한 장애일 뿐 어찌 보면 힘겨운 상황에서의 결핍은 에너지의 동력이라 할 수 있다.
경제란 규모와 환경만 다를 뿐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진통은 경제의 주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고 경제의 법칙은 기업도 국가도 상이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복지 시스템이 발전한 나라일수록 국민들의 도전의식은 감소되는 법이며 사회주의의 정치체제는 자유로운 경제성장을 제한한다.
독일의 장벽이 무너졌을 때 동독과 서독의 융화 과정에 수많은 진통의 가장 큰 원인은 동독의 이질적인 국민의 정서가 경제성장의 장애로 작용했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자본주의를 도입하던 시절 러시아와 중국,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의 가장 큰 난제는 국민들의 안일한 사고방식과 처음 접하는 생소한 경쟁의식의 부적응이었다.
복지국가를 자랑하던 북유럽의 나라들도 현재의 경제상황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미국과 서구 선진국에서는 국민들에게 막대한 지원금을 지급했지만 저소득층의 많은 젊은이들은 지원금에 의존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상황이 확산되었고 우리나라는 정책의 실패가 속속들이 드러나는 정국을 보면서도 청년들에게 지급되는 포퓰리즘의 혜택 때문에 2030 세대의 종북 정권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되고 있다.
복지제도란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위한 혜택이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소수의 계층을 위한 지원이 복지의 기능이자 역할이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움직이는 복지정책은 효율적인 혜택의 집행 과정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라의 경제 순위와 GNP가 국가의 경제지표라 생각을 하는데 GNP(Gross National Product)는 국민총생산량을 뜻하는 것이지만 나라 전체의 지표가 아닌 동일한 국적의 국민의 생산량을 나타내는 것으로 외국기업이 한국에서 생산한 경제활동은 GNP에 산정이 되지 않고 외국에 있는 한국기업의 생산 활동은 포함된다.
그러나 현대에는 글로벌 기업의 증가로 해외 소득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고 세금을 납부하는 투명한 기업들의 생산량만 산정되는 이유로 세심하고 정확한 통계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요즘은 국민의 총소득 GNI(Gross National Income)를 경제지표로 나타내는 추세이다.
GNI는 국민이 국내와 해외에서 생산한 소득의 합계로 국외에서 받은 소득은 포함이 되지만 우리나라에서 근무하는 외국인의 수입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국민의 순소득을 산정하려면 GNI에서 감가상각(고정자본 소모)을 뺀 수치를 계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GDP(Gross Domestic Product)는 한 국가의 영토 내에서만 생산한 경제지표를 말한다. 해외에서 발생한 수익은 포함되지 않고 국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합산한 것으로 외국인이 국내에서 발생한 수익도 포함이 된다.
부동산 거래와 대부분의 중고거래, 원자재와 부품, 소모성 부품은 GDP에 포함되지 않고 완성된 하나의 상품만이 지표로 계산되며 명목 GDP와 실질 GDP로 나누는데 생산량을 산정한 해의 물가상승률이 반영된 지표를 명목 GDP라 하고 실질 GDP는 물가상승률은 반영되지 않고 생산량만 나타내는 것이다.
명목 GDP는 국민경제의 규모와 변화를 측정할 때 사용되고 실질 GDP는 경제성장과 경기 변동, 실질적인 생산활동을 위해 사용하는 지표가실질 GDP이다
그러나 GNP, GDP, GNI가 상승했다고 부자나라가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며 체감물가와 개인의 삶이 향상되는 것을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글로벌 시대의 국제적 신용도는 한 나라의 경제능력과 재원을 평가하는 기준이므로 나라마다 GNP 상승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며 이는 개인의 신용평가에 따라 금융거래의 한계가 달라지는 것과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다.
국가 간의 외교와 경제교류 또한 개인과 기업의 신용창조와 다를 바 없는 것이며 국경 없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국가의 위상과 외교, 경제 협력은 국가의 신용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신용이 높게 평가되고 경제규모가 성장한 지표는 내실과 직결되는 함수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목해야 할 부문은 성장이란 매출의 표면적인 수량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어떤 경우라도 외형적 성과만이 노출되기 마련이며 거기에는 매출을 위해 수행된 여러 분야의 막대한 지출은 자세히 포함되지 않는다.
즉 고급 주택가의 호화 아파트를 소유했다 하더라도 대출금이 대부분이고 소유주에게 매달 들어오는 고정적인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 호화 아파트의 실소유주가 은행과 채권자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1997년 한국의 금융위기로 IMF에 지원금을 신청하기 전까지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경제의 위기를 실감하지 못했고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세계의 언론들은 '한국이 너무 빨리 샴페인을 터트렸다.'는 조소의 기사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세계에 유래가 없는 신속한 발전으로 '한강의 기적'으로 불렸지만 빠른 성장의 부작용은 곧바로 국민의 생활문화에서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경제의 성장에 비해 국민 전체의 의식 수준은 선진국 시민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던 문화의 불균형이 확산되던 시대였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중산층의 마이카 시대가 개막되었고 당시에는 티슈박스가 모든 차량의 뒷좌석에 배치되는 웃지 못할 광경이 한국 자동차의 모습이었으며 선캡 모자를 쓴 엄마들의 선글라스와 흰색 면장갑을 착용한 동일한 운전 패션이 전국적으로 유행했다.
1990년 전후로 한국도 여행자유화가 시작되자 너도 나도 해외여행을 수학여행 가듯 연례행사로 가기 바빴고 기업체, 관공서 할 것 없이 산업시찰, 해외연수 명목으로 보너스 지급하듯 직원들 해외여행 보내 주는 게 유행이었다.
노래방과 마사지 업소가 거리마다 생겨났고 사우나가 대중화되었으며 유흥가는 불야성으로 낮 보다 밝은 밤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젊은이들은 단란주점, 나이트클럽에서 밤이 새는 줄 모르고 흥청거렸고 성인 나이트와 룸살롱이 전성기였으며 호텔마다 빠징코라는 오락실이 자리를 잡았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리바이스 청바지가 학생복처럼 유행하더니 고가의 해외 유명 브랜드가 하나 둘 백화점으로 입점하기 시작했다.
1997년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까지 국민들의 사치와 쾌락 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가 그 당시 사회의 모습이었다.
청탁과 각계각층의 비리는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풍조가 만연했고 고소득층 자녀들의 입시 비리 또한 빈번했으며 줄만 잘 서면 모든 일이 만사형통이었고 능력보다 인맥이 중요하던 시절이었다.
고소득층의 사치와 자녀들의 일탈행동이 뉴스에 자주 등장했던 그 당시에는 사회적 위화감으로 인한 강력사건도 빈번했다.
사실 한국의 금융위기는 예고된 상황이었다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기업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역부족이었다.
금융위기 사태 이후 모든 분야에서 바닥으로 치달은 경제를 단합된 국민의 저력으로 수많은 희생과 고초를 감내하며 국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금융위기의 후유증은 길고도 길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길목에서 발생한 금융위기가 한국의 상황이었지만 세계 최고의 강대국인 선진국 미국에서도 금융위기는 발생했다.
미국은 2000년에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모기지 대출을 시작했고 겉으로는 멀쩡하던 미국 경제도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많은 국민들이 부채 사슬 속에서 갚아도, 갚아도 빚을 못 갚는 악순환은 계속되었으며 부동산 가격은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 카지노 자본주의는 난무하다 2008년 미국에는 결국 금융위기가 왔다.
엄청난 실업자가 발생하고 자본주의의 산실이던 뉴욕 증권가(Wall Street)는 직격탄을 맞았고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에서 노숙자는 국가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 증가하고 또 증가했다.
미국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호황이라 하지만 빚으로 성장한 경제는 실체가 드러나기 마련이고 인플레이션 후에 디플레이션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경제의 순환이지만 경제 전문가들의 예측은 무성해도 디플레이션이 오는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 경제의 실체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가의 총체적 위기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금융질서의 교란에 책임을 돌릴 수 있지만 경제의 소비주체인 국민들의 책임 또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안일한 생활에 젖어 개인의 부채를 당연한 삶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신용카드 남발하며 내일이 없는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했던 엄청난 대다수 국민들의 가계부채 역시 경제 파탄에 원인을 제공한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아직도 현존하는 개개인의 실책은 그릇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빚어낸 실종된 주체의식이란 사실을 한국인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 막부 시대의 장수들이 전쟁에서 패배를 하면 스스로 할복을 하고 목숨을 끊었고 과거 일본에서 기업이 부도가 나면 법인 대표는 훈도시(일본의 전통 팬티)만 입은 상태로 주주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한 후 모든 책임을 지고 자취를 감췄다.
20세기 후반 일본의 기업들이 세계 경제를 재패했을 때 세계인들은 이러한 일본의 책임의식과 강인한 조직력을 경제성장의 원인이라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일본의 성장을 국민의 저력으로 돌리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의 국제적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삼성은 소니의 아성을 무너트렸고 현대 차는 미국의 서민 자동차로 미국 도로를 달렸고 고가의 한국 전자제품은 세계에 브랜드 인지도를 각인시켰다. 잊을만하면 한국과 미국의 기업 간의 법정싸움이 뉴스에 등장하고 이제 한국은 경제 순위 세계 11위의 선진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삶은 힘겹기만 하다.
물가는 고공행진이고 경제는 경색되었으며 자영업자들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은 아비규환이 되었고 서울 외곽의 작은 아파트가 12억이 넘는 지경이 되었으며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희망은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지방 경제는 부도직전이고 공부 잘해도 대학 가려면 빚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대기업은 해외에 공장과 본사까지 이전을 하고 심지어 주식 상장도 뉴욕에 하는 상황이다.
해외자본은 아니다 싶으면 빠져나가고 2022년 8월에는외국인 투자자금이 5조 이상 빠져나갔다.
거기에다 한국의 자본투자가 금융업으로만 집중되는 현상은 심각한 경제의 불균형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 부실의 책임을 대표에게만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실종된 주체의식이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안전불감증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상식 없는 무능한 정부의 정책에 시달린 국민들의 몸과 마음이 현실의 문제들을 도외시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시 국가부도 위기가 찾아 올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에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비공식적인 통계라 해도 대한민국의 부채가 1,000조를 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며 눈앞에 얄팍한 포퓰리즘과 지원금에 현혹된 젊은 층도 현재의 경제상황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며 각계각층의 이기주의 역시 목소리를 높일 시기가 아니란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이 되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희망이 차단된 세상을 잘도 참아준 국민들의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국민 모두가 정권교체에 희망을 갖고 단합된 성원을 보내야 할 때이다.
정권이 바뀐다 해도 바닥으로 떨어진 경제를 재건하는 데는 많은 진통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경제의 주체는 우리 국민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만구르는 돌에 이끼는 끼지 않는다.
생산과 소비는 경제의 순환 이전에 인류의 생존 방식이며 생명을 유지하는 자연현상과 같다.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산다면 결과 또한 평범한 법이고 미래는 불투명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평범한 생활마저 불가능해질 것이다.
지난 금융위기에 금 모으기 운동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인의 저력과 태안 앞바다에 유출된 검은 기름을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닦아냈던 한국인의 단합된 능력을 다시 발휘할 때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정치 놀음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실종된 주체의식을 국민 모두가 되찾아야 할 시점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유린하고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대한민국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트린 주인공들이 법과 국민의 심판을 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
샐러리맨이 잘 사는 세상, 상인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 기업이 성장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국민의 몫이란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나의 큰 탓이요.'라는 교회 신자들의 기도는 개인의 영혼뿐 아니라 경제의 자각을 위한 모든 이들의 다짐으로 각인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