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사고가 나면 내 잘못은 하나도 없고 감기에 걸리면 미세먼지 탓이며 언짢은 일이 생기면 꿈자리가 나빴기 때문이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기 때문에 가족이 이런 얘기를 하면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정확한 사유는 되지 못한다. 자신에게 발생한 일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몫이며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개체로 생존이 불가능한 사회는 연결된 거대한 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므로 자의든 타이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며 자연의 섭리도 형성된 질서대로 순환하는 것이다. 계획대로 예정대로 진행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다시 돌릴 수는 없는 것이고 그에 대한 해결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상치 못한 일이 사소한 것이라면 별 문제는 없겠으나 때로 난처한 상황을 접하게 되면 누구나 당황하게 되고 현명하게 대처하기 힘들다. 상황의 경도에 따라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힘겨운 상황에 침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든 이미 발생한 일은 해결이 우선이지 원인을 따지고 책임을 먼저 묻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동일 뿐이다.
복잡 다양한 사회는 획일화된 구조 속에 모든 것이 움직이지만 생명이 없는 부품 하나도 규칙적인 구동이 불가능할 때가 있기 마련이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불협화음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이익을 창출하는 대규모 조직 내의 갈등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모든 일은 목표가 있고 과정이 있으며 자신의 능력에 따른 결과가 있다. 사유도 많고 평탄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결실은 언제나 솔직한 것이고 아무리 세심하고 철저한 계획이 선행된다 하더라도 결과에 만족할 수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첨단 기술이 동원된 과학 프로젝트도 오차는 발생하고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마련이며 실패로 끝나는 상황이 빈번한 까닭은 사람이 하는 일은 결코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가 있다.
노력만큼의 결과가 없거나 기대나 희망이 무너지면 누구나 감당하기 힘들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심리이며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행위는 현실도피일 뿐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고 남의 탓만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문제만 더욱 심각해진다. 이러한 마음 상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그럴듯한 사유가 방어의 수단인 명백한 합리화이다.
합리화(rationalization)란 말 그대로 합리적인 핑계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일의 시작과 계획, 진행 과정의 모든 일들을 자신에게 유리한 실패의 원인으로 귀결 짓지만 합리화의 사유 속에 자신의 책임은 포함되지 않는다. 잘되면 내 탓이고 안 되면 조상 탓이라는 심리를 말하는 것으로 잘못된 일의 책임을 벗어나려는 도피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내 잘못은 없다는 사고방식이지만 합리화는 결코 심리적 위안을 얻을 수 없는 방어기제 일 뿐이다.
누구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한계가 있고 부정적인 결과를 긍정적인 기회로 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에 대한 생각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좋지 않은 부정적인 일을 낙관적으로 좋게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긍정적인 사고가 아니라 억지로 감정을 억압하는 비정상적인 심리이며 긍정적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어떤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나쁘고 힘든 상황이어도 외면하지 않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긍정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위해 노력하려는 자세가 올바른 긍정의 개념이다.
대부분 남의 탓을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존감이 결여로 비롯되는 의존적 성격이 많고 주체의식이 없다.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변명이 많기 때문에 때에 따라 자주 바뀔 수 있는 기회주의적 성향을 말한다. 일이나 상황에 대한 강한 합리화를 전문적으로 도피기제(Escape Mechanism)라고 하는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고통 등을 거부하고 피하기 위한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중 하나의 수단이다. 현실에 적응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결과가 부정적이어도 자신에게 해결방안으로 작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도피기제는 욕구좌절 상태에 부딪쳤을 때 발생하는 비합리적인 해결책이므로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이나 노력을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상태이며 당사자 자신이 핑계를 통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의식적으로 그럴듯한 핑계를 지어내지만 만들어낸 사유를 통해 상처로부터 자아를 보호하는 무의식적 방어를 뜻하는 것이며 결과의 사실과 자신의 행위는 인정해도 부정적 부분은 인정하지 않는 심리를 말한다.
그러나 크던 작던 모든 일은 책임이 필요한 것이며 내 몫과 남의 몫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고 현실을 회피한다고 문제 자체가 소멸되지는 않는다. 결과에 따르는 책임에는 관련된 사람들의 정신적 피해는 물론 경제적 책임이 수반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법적인 책임이 발생하기도 한다.
크고 대단한 비즈니스나 공적인 업무에서의 실패는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결과를 승복하고 인정하는 모습이 사회가 요구하는 성숙한 자세이며 새로운 기회를 준비하는 시작이 되는 것이다.
주위에서 보게 되는 합리화는 대부분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하는 것으로 공연히 설레발을 치는 경우도 한 예가 된다. 그러나 아무리 사례를 들어 설명하더라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합리화는 이미 자신이 행한 일이나 행동에 대한 변명을 이해시키려 강조하는 것이므로 논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대기업의 총수처럼 영향력이 막강한 사람이 합리화를 하는 경우에는 대형 피해가 발생한다. 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은 곧바로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고 CEO의 오판이 기업을 위기로 만들 수 있으며 공식적인 자리는 모든 내용이 기록이 되기 때문에 정책결정권자가 합리화를 한다는 것은 거짓 증언을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기업인은 부당한 이익이 발생하거나 비윤리적인 경영, 공익에 방해가 되는 행위 또는 환경문제를 도외시한 경우 헌법에 위배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론의 뭇매와 불매운동 등을 피할 수 없다. 직접 사과를 하고 개선이 시행되지 않으면 기업 이미지 추락과 주가 하락이 이어지지만 법적 소송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언론을 통해 과학적 근거와 선진국 사례라는 공식적인 합리화로 여론을 달래려는 노력만 보여준 채 법원의 판결이 날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는 게 대기업의 전형적인 합리화이다.
그리고 선진국일수록 정치인의 잘못된 발언이나 정책의 실패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응당한 책임을 지는 게 관례이지만 괜히 어설프게 핑계 대고 합리화하다 정치생명 마감하는 경우는 언론을 통해 보게 되는 뉴스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이나 독재국가는 정치인의 사죄도 변명도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총수권자의 사과나 해명이 없는 국가가 사회주의와 독재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한국이 독자기술로 만든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발사 실패를 절반의 성공이라 표현하는 것은 결코 합리화일 수조차 없는 명백한 거짓말일 뿐 어설픈 핑계도 되지 않는다.
사노라면 예기치 못한 불합리적인 상황도 겪게 되는 법이고 그로 인해 정상적인 행로에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의 사유는 절대 합리화가 아니며 결과로 평가되는 냉정한 사회가 우리의 현실이라 해도 관용과 배려가 사라진 세상은 아니고 법의 허용범위도 때에 따라 정상참작이 가능한 것이다. 경제가 경색된 상황에서 정상적인 상거래는 불가능하고 열약한 환경에서 기회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보다 더 어렵고 참담한 시대에도 사회는 발전했고 경제는 성장했다. 교육이 부재되었던 과거였지만 윤리와 도덕은 살아 있었고 작은 것의 소중한 가치가 모여 오늘의 한국을 만든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언제부터 금수저, 흑수저란 말이 유행했다. 부모를 잘 만나서 좋은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금수저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흑수저라 한다. 그러나 부모는 만나는 것이 아니고 선택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며 부모에게서 유전자를 물려받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남들보다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해서 특혜를 타고난 것도 아니고 좋은 환경이 좋은 DNA를 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금수저, 흑수저의 이분법적 구분은 남의 탓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양극화의 표면적인 상징이며 사회적 모순의 책임을 특정 대상에게 전가시키려는 선동된 정치적 용어이다. 경제가 나빠서 장사가 안 되고 입시제도 때문에 대학을 못 가고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을 수 없이 듣는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 활동이 오랫동안 차단되었고 크나큰 여파로 인해 침체된 경제상황이 회복되려면 많은 기간이 필요하며 각계각층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황이 세계를 덮치고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과거에도 상거래는 유지되었고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인류는 성장했다. 어려운 상황은 모든 사람이 함께 겪는 것이며 글로벌 시대의 연동된 경제는 세계가 같은 기류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작은 물이 모여 큰 강을 이루듯 부정적 상황도 긍정적인 영향도 확대되어 범람하는 성격은 양쪽 모두 동일한 것이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마다 남의 탓하며 책임전가 하다 보면 개인도 사회도 성장이란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