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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04. 2021

2차를 가는 사유

절제의 미덕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오면 오랜 친구와 함께 나누는 소주 한잔이 생각난다.

해가 짧아져서 퇴근길에 어둠이 내리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식당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특히 많은 업무를 마치고 난 후에는 술 생각이 간절하고 출출할 때 목 넘김이 좋은 술 한 잔의 마력은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다.

술이란 긴장을 풀어주고 경직된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해주는 고된 하루의 보상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축배를 드는 습관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이 동일하고 좋은 음식과 함께 하는 술은 음식의 맛을 상승시키기도 하지만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도 한다.

한국 사람은 술과 함께 먹는 음식이 중요하고 음식에 따라 어울리는 술이 있다. 뜨거운 불판 위에 잘 익은 삼겹살은 소주가 없으면 허전하고 싱싱한 생선회에도 소주가 최고이다. 한국인의 치킨 사랑은 세계에서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까닭에 치맥으로 불리는 맥주와 치킨은 그야말로 환상궁합이라 할 수 있고 주말 저녁 TV를 보다 불러먹는 치킨과 족발이 가장 좋은 야식 메뉴이며 새우젓에 찍어 먹는 족발에는 시원한 맥주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돼지고기에는 소주가 어울린다. 소주는 고기의 기름기를 중화시켜 주는 기능과 함께 느끼한 맛을 잡아주기 때문에  몇 잔의 소주와 고기를 먹으면 쉽게 과식을 하게 된다.

매콤 달콤한 춘천 닭갈비, 머리끝에서 땀이 나는 새 빨간 아귀찜에도 소주는 잘 어울리고 추운 날씨에 생각나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얼큰한 대구탕에도 소주가 생각난다. 요즘에는 자주 볼 수 없지만 골목마다 자리를 잡았던 포장마차의 어묵 국물과 석쇠에 구운 곰장어, 닭똥집은 아버지들의 옛맛을 불러오는 추억의 안주이기도 하다.

한국인에게 소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국민의 술이다.

인생의 희로애락과 함께한  한민족의 반려주이며 근대화와 더불어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서민의 술이고 전통과 습관이 된 공통적인 취향도 있지만 특별한 맛과 향이 없는 소주는 음식의 맛을 살리는 알코올의 특별한 작용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음식에 잘 어울리는 술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랜 기간 숙성된  귀한 술은 많지만 깊은 향과 입 안에 도는 독특한 맛이 매력인 귀한 술은 음식과 함께 마시면 오히려 술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중국에는 지역마다 역사가 깊은 명주가 있고 유럽의 수천 가지가 넘는 와인은 생산되는 지역의 환경과 숙성과정에 따라 값비싼 명품으로 탄생한다. 10년 이상 숙성이 되어야 상품으로 출시되는 12년 산 위스키도 이제는 대중화되었고 러시아에 보드카가 있다면 멕시코의 전통주 데킬라는 저렴하면서도 강한 특징으로 라임과 함께 마시는 세계적인 술이 되었다.

어느 나라이던 귀한 전통주가 있고 술을 위한 음식이 있는 반면 음식을 위한 술이 나라마다 존재한다.

대부분 대중적인 술은 모든 음식에 잘 어울리고 가격 부담 없이 마시기 좋은 술이다. 술에 대한 전문적 견해와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면 고가의 유명한 술 보다 부담 없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술과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즐기는 것만큼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기름진 중국요리에 고량주 한 잔도 좋고 셰프가 금방 만들어준 정갈한 일식에 따뜻한 사케 한 잔도 추운 계절에 어울리는 저녁식사이며 잘 삭힌 홍어회에 막걸리 또한 훌륭한 궁합이지만 드라이한 맛의 레드 와인도 고기의 맛을 상승시키는데 빠질 수 없는 최고의 조화를 이룬다.  

술이란 공감할 수 있는 대화의 깊이를 더해주고 때로는 체면을 버리고 유치한 주제에도 대화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 기쁨을 상승시키는 묘약이기도 하지만 기분이 상할 때나 슬픈 일이 있을 때 마시는 술은 건강은 물론 기분을 더욱 상하게 하는 양면의 작용을 하는 것이 술의 실체이기도 하다. 누구나 기분이 나쁠 때 술을 찾게 되지만 처음에는 가라앉은 기분이 조금은 상승하는 것 같아도 더 취하게 되면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게 되고 좋지 않았던 일이 감정적으로 증폭되기도 한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울한 감정이 고조되면 비이성적인 폭언을 하게 되고  감정이 격해지면 폭력적 행동이 나오기도 한다.

탈무드에서 술은 한 잔을 마시면 양처럼 온순하고 두 잔을 마시면 사자처럼 포악해지며 석 잔을 마시면 노래하고 춤추면서 원숭이처럼 되다가 넉 잔을 마시면 토하고 뒹굴면서 아무데서나 자는 돼지처럼 된다는 격언이 있다. 미국 속담에 ‘술은 남자를 강하게 하고 여자를 느슨하게 한다.’  (Drink makes man brave, makes women loose.)는 말이 있고 ‘술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Bacchus kills more than Mars.)

라는 유명한 영국 속담이 있다.  

알코올이 뇌에 흡수되면 뇌의 보상중추의 신경세포(neurons)를 자극해 도파민(dopamine)을 분출하게 하는데 도파민은 보상을 담당하는 기쁨의 화학물질로 음주를 계속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기분이 좋아서 2차, 3차로 이어지는 원인은 도파민(dopamine)과 연결이 되는 것으로 기분이 좋아서 마시는 술도 절제가 힘든 이유는 호르몬 작용과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분이 나쁠 때는 스트레스를 촉진하는 호르몬인  코티솔(cortisol)이 분비되는데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알코올이 흡수되면 코티솔(cortisol)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평소에 얌전한 사람이 술을 마시고 과격한 행동을 하는 이유 또한 호르몬 작용과 관련이 깊다.

술과 음식이 다른 이유는 최상의 요리가 눈앞에 있어도 배가 부른 상태에서는 식욕이 생기지 않는 반면 술은 취할수록 절제가 힘들고 1차로 고기와 냉면, 불판에 볶은밥을 여러 병의 소주와 배 터져라 먹은 후에도 2차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 애주가의 특성이다.

한국인이 술에 대한 사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연간 음주 소비량 또한 세계적 탑 순위를 이어오고 있지만 술 먹는 전통과 음주를 부르는 대중적 관행이 과음을 하게 만드는 영향이 있다. 회식도 근무의 연장이라는 전근대적인 개념도 예전에는 팽배했고 접대문화 역시 현존하고 있다. ‘주도’라는 음주문화가 정서적으로 깊은 까닭에 상사나 윗사람이 권하는 술을 사양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음주문화는 변하고 있으며 술이 술을 부르는 과음과 폭음이 예전에 비해 감소한 것은 사실이고 술 권하는 문화가 점차 사라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술로 인한 건강 질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술로 인한 폐해 또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도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는 빈번하고 술 마신 후 사고에 대한 법원의 선처 관행도 없어졌지만 음주로 인한 사건, 사고는 뉴스의 단골 메뉴이다. 문제는 과음을 부추기는 문화가  아직까지 존재하고 술을 마시고 실수를 해도 관대한 사회적 정서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1차에서 끝내려고 해도 눈에 보이는 시원한 생맥주집을 가자는 친구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고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노래방 네온사인의 유혹을 물리치기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자신의 음주습관을 남의 탓, 환경 탓으로 돌린다는 것은 어설픈 합리화이며 애주가의 핑계일지 모른다. 절제의 범주를 벗어난 음주는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독을 마시는 것이며 알코올 중독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술을 마실 때 절제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로 증상을 체크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술을 1~2잔 정도의 소량으로 마시면 혈액순환과 심혈관에 도움이 된다는 잘못된 상식은 하루에 커피 4~5잔은 건강에 해가 없다는 다국적 커피 회사의 광고 같은 말일뿐 소량이라도 자주 마시는 술은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술을 자주 마시면 뇌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기억과 학습을 하는 뇌의 해마가 급속하게 줄어들어 인지 과정에 영향을 주며 자제력에 관여하는 전전두피질의 변화가 생기고 심하면 신경세포의 연결 부분을 차단해 뇌가 사멸하는 위험한 상태를 초래할 수도 있으며 해마의 작동이 중단돼서 생기는 블랙아웃 증상, 필름이 끊기는 현상이 생긴다. 간이나 위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이지만 술을 자주 마시면 우울증이 발생하기도 하며 불안증상이나 공격성 스트레스 유발 등의 정신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평상시에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 사람이 술에 취하면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카드로 결제하고 다음날 후회하면서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뇌의 해마 기능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특히 나홀로 가정의 증가로 혼술 문화가 확대되는 추세이지만 혼자 마시는 술이 습관이 되면 알코올 중독으로 진행될 확률이 가장 높다는 의학적 통계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상 모든 게 마찬가지이지만 과유불급은 음주문화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4차 산업의 물결은 한국에도 자리를 잡았지만 지나치지 않은 서양의 음주문화가 4차 산업혁명과 함께 한국에 상륙하지 않은 현실이 애석할 따름이다.

하루 일과를 마감하며 동료와 친구와 함께 하는 술자리를 부정적으로 볼 사람은 없고 기쁘거나 슬프거나 지인과 나누는 술 자체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며 정성 들여 마련한 음식을 가족과 함께 나누는 자리에 술이 없으면 서운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지나친 음주는 언제나 피해와 후유증이 동반하기 마련이며 잘못된 음주습관은 점차 진행되는 악마의 유혹과도 같은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술 소비량이 증가한다는 통계가 있고 스트레스가 많을수록 술 생각이 나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오랜 기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사회활동이 차단되었고 경제는 경색되었으며 그로 인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는 사유로 극심한 스트레스도 극에 달한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음주는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법이고 억눌렸던 감성이 방종으로 분출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위드 코로나와 영업시간 제한 해제는 먹방과 트로트가 대세인 현실 속에 억압되었던 감성을 먹고 마시며 노는데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절제의 미덕은 삶의 가치를 높이고 시대에 어울리는 세련된 자신을 만드는 최선의 방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술은 신이 내린 음료란 말도 있지만 악마가 만든 음료란 말도 있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 천사가 되거나 악마가 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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