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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Nov 12. 2021

신용은 약속이다

약속은 습관

"언제 식사나 같이 합시다." "나중에 술이나 한잔 하지요." 못 지키는 약속이 인사가 되었다.

부탁할 게 있는 경우라면 지켜지는 약속이지만 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그냥 인사로 그치는 말이라는 건 다 안다.

약속은 사람, 사람과의 언약이기 때문에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할 부담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은 경우와 날짜를 정하지 않은 약속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바쁘다 보면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본인은 별일이 아니다 싶은 약속이라도 상대는 그 약속을 기대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고 생각지도 않았는데 전화가 와서 언제가 좋겠냐고 날짜를 물어보면 다시 변명을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어린아이와 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는 어린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며 어른들은 거짓말도 하는 것이라는 부정적 사고를 배양시킬 수 있다.

연인 관계에서는 약속을 많이 하고 처음에는 잘 지켜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언제?" "이젠 안 그래도 되잖아."로 바뀌게 된다.

연인 간의 불화는 성격상의 이유가 많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유 또한 결별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문제는 못 지킬 약속을 생각 없이 하게 되는 이유는 의미 없는 인사가 대다수의 습관이 된 환경과 전통적으로 내려온 민족적 정서와도 연관이 있다. '안녕하세요'는 밤새 아무 일 없었느냐는 뜻으로 전쟁이 많았고 전염병이 창궐하던 한민족의 역사에서 비롯된 인사이고 "식사는 하셨어요?" "밥 먹었어?"라는 인사도 가난했던 옛날부터 내려온 인사말이다.

이런 정서로 인해 헤어질 때 "안녕히 가세요."로 인사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습관이 된 보조사가 따라붙은 것이 "언제 식사나 같이 합시다."로 변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에도 비슷한 경우에 "Rain check."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식사나 술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흔히 쓰는 말로 제안을 연기하거나 기약 없는 약속이 되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정중한 거절의 의미이기도 하다. Rain Check 은 원래 야구경기장에 비가 와서 경기가 취소되면 다음 열리는 경기의 입장권을 날짜 없이 나눠 주던 티켓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모든 것이 명확해야 하고 사소한 오해가 큰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도 있으며 잘못된 언어 습관은 사람의 인격을 비하시키기도 한다.

특히  비즈니스 관계의 약속은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법이며 법적으로 구두 계약도 증거나 증인이 있는 경우에는 계약서와 같은 효력이 발생하므로 공적인 자리에서 말로 하는 약속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중요한 약속은 계약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책임이 따르는 것이며 사소한 일이여도 약속을 못 지키는 사람은 진중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신뢰가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신용사회란  경제적으로 현금 없이 빚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며 개인도 기업도 나라의 신용 역시 신용평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으로 규모만 다를 뿐 세상이 요구하는 신용은 동일한 맥락이다.

신용은 금융기관과 거래한 기록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므로 과거에 약속을 잘 지켜졌다는 기록이며 앞으로 약속을 잘 이행할 사람을 가리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신용카드는 돈 대신 사용되는 약속어음과 같은 것이고 대출은 이자가 포함된 당연한 빚이며 제 날짜에 갚지 못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이 급할 때는 지푸라기라도 잡듯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돈을 빌리게 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고 빌리는 돈의 액수는 그 사람의 신용상태로 결정이 된다.

돈 걱정 때문에 잠 못 드는 사람이 깊은 밤, TV에서 대출광고를 보게 되면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것은 사실이고 선뜻 대출신청을 못하는 이유는 대출금 상환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며 다시 말하면 대출회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음을 돌리려 애써 보아도 유튜브는 물론이고 인터넷에서 정보 하나 찾으려 해도 눈에 띄는 대출광고를 접하면 급한 마음에 전화를 걸게 된다. 그러나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순간부터 계약은 효력을 발휘하고 계약서 내용대로 약속된 기간에 약속된 이자, 원금 상황을 하지 않으면 추심 과정의 고통을 받게 되고 법적인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

돈이 오가는 거래의 계약은 위험한 약속이며 사업 간의 관계에서 작성되는 계약 또한 비즈니스의 성패와 직결이 되는 것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약속을 못 지켜서 인생을 망치는 계약은 돈과 관계되는 약속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금전적인 계약을 떠나 정상적인 사회는 약속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도덕과 규범, 헌법은 모두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에서 신뢰는 가장 중요한 근본이며 한 번 실추된 신용은 회복하기가 힘들다.

인류 최초의 약속을 저버린 사건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이브의 행동이었고 그로 인해 인간은 수치심이란 감정을 느끼게 되었으며 남자는 평생 일을 해야 하는 의무를 져야 하고 여성은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게 되었다.

공자(孔子)는 믿음과 의리가 없으면 개인이나 국가도 존립할 수 없다는 뜻으로 신의를 내세워 무신불입(無信不立)을 강조했다.

대기업의 총수가 구속되는 사유는 경영인으로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며 정치인이 구속되는 비리와 범법행위 또한 모두 약속을 저버린 행동의 결과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부득이하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가까운 친구나 지인이라면 사전에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면 되지만 비즈니스나 공적인 약속은 관용이나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나 투명한 인터넷 시대의 정보사회는 수많은 여론이 사람을 매장시킬 수 있으며 지키지 못한 약속에 대한 책임은 피하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책임을 다하는 덕목으로 신의를 쌓는 의미이며 어려서부터 배양된 책임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격언이 있듯 사소한 약속을 가볍게 생각하는 습관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합리화라는 변명만 키우게 되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제자 증자(曾子)에게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는데 그 아들이 같이 가겠다고 보채며 울자 증자의 아내는

“시장에서 돌아오면 너에게 돼지를 잡아 삶아 줄 것이니 울지 말고 기다려라.”라고 어린 아들을 달래고 시장으로 갔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 증자가 돼지를 잡으려고 칼을 들었다.

아내는 만류하며 “아이를 달래려고 한 말인데 돼지를 잡을 필요는 없지요.”라고 말하자 증자는 “아이는 부모에게 배우고 부모의 가르침을 깨달으며 자라는 것인데 지금 아이를 속이면 이것은 아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치는 것과 꼭 같은 것이요. 부모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은 부모를 믿지 않을 것이며 부모를 믿지 못하는 자식은 다른 사람들도 믿지 못하는 법이요.”라고 아내에게 말하고 서슴없이 돼지를 잡고 솥에 넣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할 수밖에 없고 자신이 자라는 환경에서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의미 없는 인사말이 습관이라 해도 흔히 쓰는 말에는 그 사람의 인품이 묻어나는 것이고 사소한 일이어도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치열한 경쟁 사회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보면 사소한 일과 중요한 일에 대한 생각과 행동의 차이는 엄청나고 이득이 없는 일은 쉽게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모든 사람들에게 만연해진 것은 사실이다.

‘약속은 천천히, 실행은 빠르게 하라.’(Be slow to promise, but quick to perform)는 미국의 속담이 있고 신용사회란 말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경제용어로만 이해하기 이전에 크던 작던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사회가 세상을 밝게 한다는 단순한 순리를 되새겨야 한다.

이제 곧 연말연시가 다가온다.

한 해를 마감하며 자신이 지키지 못한 약속은 얼마나 되는지 반추하는 마음가짐도 필요한 시기이다.

새해가 오기 전 많은 사람들은 계획을 세울 것이다. 적금을 들고 담배를 끊고 운동을 시작하고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가장 지키기 힘든 약속은 다름 아닌 자신과의 약속이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신뢰를 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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