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맨 땅에 헤딩하기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by 질풍검객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고 나서 홀로 남게 되었다. '아버지 믿고 사업하면서 자랑하고 다니더니 꼴좋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네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사실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런 시선들을 느끼면서 더욱 작아져만 갔다. 30년간 부모님께서 유지해 온 가업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벌을 받자. 무작정 길거리로 차를 몰고 나가서 거리에서 옷을 팔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써 붙이고 행거와 매대에 상품을 전시했다. 하지만 막상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바닥으로 꺼져버리고 싶을 만큼 창피했고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 옷 어디서 훔친 거야?" 어느 건물 앞에서 판매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건물 경비아저씨가 내게 물어온 첫마디였다. "아니요, 제가 피땀 흘려서 만든 옷입니다." "그래? 그런데 뭐가 그렇게 죄를 진 얼굴이야? 나는 젊은 청년이 이렇게 도전하는 모습이 자랑스럽기만 한데" 길거리에서 현명한 스승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제껏 옥죄고 있던 내 몸에 감긴 쇠사슬이 한 번에 벗겨지는 것 같았다. 그래 뭐가 부끄러운가. 이제 그만 나를 미워하고 용서하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 보자.


집 앞에 아파트 상가에 조그만 매장을 하나 얻었다. 상가는 생각보다 어두컴컴해서 장사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대출 만기는 다가오고 이자 연체료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자의 압박이 나를 짓누르는 기분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두운 상가에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가면서 장사를 시작했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처럼 가정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판매가 발생한 덕에 대출도 많이 갚아나갈 수 있었다. 사업에 실패한 이유를 분석하며 많은 책들을 읽기도 했지만 갈증을 해소하는데 부족함이 있었다.


마침 사촌 동생의 권유로 서울시 중부기술교육원에서 운영하는 패션디자인과 6개월 야간과정에 입학했다. 옷을 만드는 원리가 궁금했고 패턴부터 봉제까지 스스로 옷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종이로 옷의 모형을 만드는 패턴을 만든 다음 원단을 실로 이어 붙이는 패션디자인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미싱이 그렇게 재밌는 지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옷을 직접 만들어보니 봉제공장을 운영할 때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도 후회했다. 그리고 봉제업에 종사하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날 정도였다. 패션디자인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다는 서울시장 표창까지 받게 되었다.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경험했으니 이제는 패션 마케팅의 세계도 공부하고 싶어졌다. 치열한 패션 브랜드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길을 대학원에서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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