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기존 제품을 가지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전략으로 승부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가업을 잇기로 마음먹었을 때 국내보다는 회외로의 수출이 목표였다. 그러려면 우선 국내 시장에서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 경영의 정석이다. 기존 동대문 시장의 거래처를 중심으로 새로운 유통 판로의 개척이 필요했다. 소규모의 마트를 겨냥해서 저가 상품을 판매했고 절실한 마음으로 판매한 결과 작지만 소중한 성과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조금씩 빚을 갚아나갔고 홈쇼핑 카탈로그 판매까지 유통망을 다변화했다. 운이 좋게도 주문량이 갑자기 늘어났고 새로운 상품들도 기획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경험했다. 그즈음 공장과 사무실을 운영하며 제법 조그만 회사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이러다가 대기업 되는 거 아니냐?'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홈쇼핑에 출고할 상품을 정리하는 직원들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으셨다. 하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도 아주 잠시였을 뿐, 중국에서 제조한 저가 상품들과 경쟁에서 밀려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것은 더 이상 무리였다. 재빨리 국내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해외 수출을 위한 방법으로 벤처기업으로 인증받았다. 해외수출 판로를 위한 정부지원사업에 참가해서 일본, 중국, 미국, 유럽까지 진출하면서 수출을 위한 바이어를 찾고자 했다. 한편 '이탈리아에서 한 달 살기 프로젝트'라는 무모한 도전을 통해 밀라노의 니트 생산기지를 확보했고 국내로 수입할 준비도 진행했다. 수출과 수입의 병행을 통해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수출을 통해 넉넉한 자본을 마련하고자 했다.
일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유니클로에 니트를 납품하고자 야마구치현 본사에 샘플을 보내기까지 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수출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받은 덕에 한 줄기 빛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유니클로 본사에 납품을 하려면 백만 장이라는 수량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겁이 덜컥 났다. 한 번 잘못 납품하게 돼서 본사에 컴플레인을 받는 날에는 끝장이라는 두려움이 압도했다. 생산시설 또한 유니클로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입으로만 해외 진출을 꿈꿨지만 막상 그 정도의 배짱은 없었다. 진퇴양난. 국내는 중국저가 상품에 밀려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고, 수출을 위한 자본에 대한 해결책과 노하우 부족으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던 것이다. 불투명한 미래, 불안한 오늘이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웠다.
3년 간의 혹독한 MBA 경영 수업 과정을 통해 자아는 고갈되었고, 나약해 빠진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다. 가업을 이어서 100년 기업을 만들겠다는 포부는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되었다. 직원들은 모두 해고하고 공장은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막막했고, 절망했고, 내 안의 무엇인가가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