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가업 승계

어느 날 빚을 지게 된 남자

by 질풍검객

어느 날 빚을 지게 된 남자


패션 브랜드에서 세일즈 경력 4년 차 대리로 근무하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 달라는 말씀을 들었다. 언젠가는 가업을 경영하게 되리라고 막역한 생각은 했지만 현실로 다가오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회사에 급하게 일주일 간의 연차를 요청했으나 영업부에서는 휴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매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겨울 시즌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과장님께 회사를 계속 다닐지 말지 고민을 위한 휴가를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호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결정할 수 있을까? 내가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아 잘 해낼 수 있을까? 수많은 고민과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일주일의 여행 결정은 적절한 판단이었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3일간은 머리가 너무 아파서 여행을 즐길 수 없었다. 그냥 멍하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 4일이 되던 때 시드니를 벗어나 도시 외곽의 사막을 여행했을 때 비로소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막에 홀로 누워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누워있을 때 비로소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게 되었다. 어린아이 와도 같은 순수한 사고는 뭐든지 할 수 있고 누구든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처럼 되고 싶었던 꿈이 되살아 났다. 그래 해 보는 거다. 인생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호주의 대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귀국한 후 사표를 제출했다. 가업 승계를 위해 퇴사를 결심했다는 소식을 들은 회사 사람들은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을 전했다. 3일간의 인수인계를 마치고 공장으로 출근했을 때 놀랄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공장은 문 닫은 지 오래된 상태였고 회사의 재정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던 공장에 기업에서 사용하는 체계적인 자료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버지의 경영지식은 피부에 축적되어 있었지만 글로 표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 회사에서 혹독한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일 처리를 해나기로 맘먹었다. 야구로 비유하면, 9회 말 2 아웃 만루의 상황에서 팀의 위기를 구할 투수로서 마운드에 등판한 셈이었다고나 할까? 뭐든 할 수 있다고 다짐한 나는 의기양양했으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순진한 생각과 어설픈 직장 경력으로 사업이라는 험난한 항해를 시작했으니 결과는 뻔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받을 돈이 있다고 찾아오는 거래처들과 만났을 때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아버지는 알아서 해결하라며 첫 번째 미션만 남겨주셨다. 직장 생활에서 모아 두었던 돈으로 거래처들을 설득하며 잃었던 신뢰를 찾고자 노력했다. 순풍에 돛 단 듯이 앞으로만 신나게 뻗어나갈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는 폭풍우를 만나서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머지않아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낮에는 공장에 남겨진 재고 파악 및 자료 정리를 위주로 일했고, 밤에는 동대문시장에 나가서 주요 거래처를 확보하는 업무를 중심으로 바쁘게 지냈다. '이런 상품들이 팔릴까?'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회사의 제품과 이전 회사의 브랜드 상품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느껴졌다. 조바심이 났고 빠른 시간 내에 빚을 갚고 공장을 정상적인 괘도로 올려놓고 싶었다. '걷지도 못하면서 날려고 한다'며 아버지는 그런 나를 걱정했다. 30년 사업을 해 오시면서 숱한 위기를 극복해 내신 아버지. 이제는 내가 그 무게를 짊어지고 넘어져도 앞으로만 나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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