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빠는 장자의 장손으로 태어나 온 집안의 예쁨을 받고 아빠의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고 한다. 나의 할머니는 어렸을적 '저 얘를 제대로 안아본 적이 없다'며 가끔 한탄을 하셨다. 사랑을 받은 만큼 아빠의 주머니 사정 또한 넉넉한했는데 덕분에 아빠의 어렸을적 용돈은 하루에 천원이었다. 67년생인 아빠의 성장기를 고려해봤을 때, 70년도에 짜장면이 100원 이었다고 하니 지금으로 따지자면 오만원정도 되려나.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나로서는 체감이 어려웠는데, 엄마의 말로는 체감상 지금의 십만원은 거뜬히 넘을거라며 말씀해주시니 얼마나 풍요롭게 자랐는지 짐작이 되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집안이 잘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나의 자라온 환경을 봐도 그렇거니와 다른 친척어른들의 말을 듣자면 아빠 혼자 부족함없이 유복하게 자란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세남매를 낳았다. 본인이 쓰고싶은 만큼 벌어놓고 쓰면 좋았으련만 아빠는 그렇지 못했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지만 수입보다 더한 지출이 있었다. 이미 나간 돈을 메꾸기 위해 혹은 당장의 돈을 더 쓰기 위해 빌려쓴 돈이 몇백에 몇천 몇억까지 가기를 한번, 두번, 세번.
정말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처음은 그럴 수 있다고 자라온 환경이 그렇다고 실수 한번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반복이 되니 아, 나란 아빠가 이런 사람이구나. 왜? 결혼을 하고서도 이럴 수가 있나? 자식이 있는데도 이럴 수가 있나? 아빠는 안닮아야지.
원망의 시간 속에서 아빠의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몇년이 지나고 가만히 아빠를 들여다보기를 또 몇년이 흐른 지금.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만났던 X들과 아빠가 닮았다는 것.
바로 자기중심적인 성격.
딸은 아빠와 닮은 사람과 결혼한다는 말이 있다지 않은가. 생김새와 성격과 자라온 환경이 모두 다른 친구들이었지만 그들의 공통점을 꼽자면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내가 만난 남자들은 순한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물에 물타듯 술에 술타듯 하지 않았다. 본인이 기름이고싶을 때는 물과 절대 어울리지 않았다.
본인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것보다 분명한 의사를 밝히는 사람이 더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주장을 계속 펼치는 모습에 신념이 확실하다 생각했다. 뒤를 보지 않고 지금 당장 저지르는 모습들에 확신이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 모습들은 내가 아빠의 모습을 보며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이해시키던 행동들이었다.
결국 내가 가장 싫어한 아빠의 성격과 닮은 X들을 만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