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이 아까워 그가 결혼 생각이 없다면 이쯤에서 그만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솔직하게 그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한낮, 우리는 흑돼지집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삼겹살 2인분을 주문하고 자연스레 진로까지 달라는 그였다. 우리는 항상 진로를 마셨다. 그것은 나의 취향이었다. 그리고 낮술 또한 나의 취향이었다.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지는 그는 밤에도 술 마시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소주를 첫 잔 마시며 몇 년 만의 낮술이라 말하는 그였다. 할 말이 있다며 만든 점심 약속이었지만 할 말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몇 잔 마실 때까지 나는 분위기를 띄우려 애써 밝은 얘기들을 꺼냈다.
그러나 반 병쯤 마시자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얘기를 하다 내가 울컥할까 걱정되었고, 나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봐 염려되었다. 옆테이블의 식사 손님들은 다 빠져나간 뒤였다. 몸이 살짝 떨렸지만 애써 담담한 척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성인이 된 시점부터 언제나 결혼을 생각해 왔어. 연애를 시작하며 상대를 알아가고, 알아가다 보니 연애로만 끝나기를 반복했지. 그 과정이 이제는 조금 지쳐. 물론 우리가 결혼을 전제로 만나자는 건 아니야. 다만, 우리의 끝이 연애로만 단정 지어진다면 나는 더 이상 만나기 힘들 것 같아.
그는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