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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전히 Mar 07. 2024

모순

 나의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인서울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높지 못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의 학창 시절은 대학교를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였고 나는 나의 성적에 맞춰 갈 수 있는 대학교엔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교를 가려면 인서울 4년제는 가야 하지 않나? 그렇다면 수능을 보면 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음, 나는 공부에는 취미가 없는 학생이었다. 집중력도 부족하거니와 재미없다고 느끼는 무언가를 인내하면서 하는 성격이 되질 못했다. 한마디로 엉덩이가 무척이나 가벼웠다. 

 음악을 해볼까 했는데 노래를 못했다. 심지어 박치다. 미술을 해볼까 했는데 졸라맨이 전부다. 그러다 어렸을 적부터 책을 읽던 나를 깨달았다. 아! 글을 써볼까. 그렇게 문창과 입시학원에 들어갔고 18살, 19살을 전국 대회를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나에겐 소질이 있었다. 상당한 수상실적으로 특기자 전형에 지원해 인서울 4년제에 합격했다. 그래. 여기서부터 잘못됐다. 

 물론 대학교 합격 전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노심초사하긴 했지만, 3년을 공부한 같은 학교 학우보다는 훨씬 수월히 대학교에 들어간 것 같다. 그리고 같이 입시를 준비한 학원 동료보다도 훨씬 수월히 대학교에 들어간 것 같다. 그래서 계속해서 수월히 무언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당연히 아니었지. 

 1학년때는 1학년이라고 헬렐레. 2학년때는 연애한다고 헬렐레. 그렇게 휴학 1년 하고 나니 20대 초반이 끝났다. 그때까지도 선배 누구가 어디 들어갔다더라는 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아직 놀기 바빴으니까. 복학해서 제대로 공부해 보자 했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재미없는 것을 억지로 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수업은 A+이 나왔지만 싫은 수업은 잘 들어가지도 않아서 D를 받기 일쑤였다. 그러니 평균 성적이 어찌 되겠나. 

 열심히 놀다 보니 30이 넘어서 졸업을 했다. 그리고 아직도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 모양인가. 나는 왜 아직도 이 꼬락서니인가. 그래도 나름 알아주는 대학교 나와서 변변찮은 벌이도 못하는가. 이 생각이 시작되면 내가 썼던 첫 문장으로 돌아간다. 나의 고등학교는 어땠나. 대학교는 어땠나. 그러다 깨닫는다. 아 자업자득이구나. 그리고 어쩌면 아직까지도 나는 내가 재미없는 어떤 것을 하지 않으며 살고 있구나. 지금이 이 신세한탄 또한 하나의 모순이구나. 진정 삶이 모순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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