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5
새벽 4시, 천둥소리에 눈이 떠졌다. 황급히 겉옷을 챙겨 입고 어제 걷지 못했던 빨래를 걷으러 나갔다. 다행히 비는 이제 내리기 시작한 건지 옷이 많이 젖지는 않았다. 서둘러 빨래를 걷어 방으로 들어오자 이 옷을 어쩌면 좋을지 난감했다.
아, 다시 이 옷을 입고 걸으면 되겠구나. 2벌의 옷을 격일로 갈아입을 작정이었다. 전날 저녁 잠옷이 다음날 외출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첫날부터 나의 계획은 어긋났다. 전날에 입었던 외출복이 다시 오늘의 외출복이 되었다. 와중에 마르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양말. 제일 두꺼워서일까. 가방에 걸고, 걸으며 말리기로 했다. 그렇게 첫째 날이 시작되었다.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피레네 산맥을 지나며 밝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고 싶었다. 푸른 들판에는 밝은 색의 옷이 잘 나오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내가 다시 입은 옷은 검은색 바지에 물 빠진 민트색 상의. 더군다나 비가 오면서 우비를 입고이동해야 했는데 우비색은 회색이었다. 망했다. 그래도 어쩌랴. 걷기 시작했다. 와중에 처음 맛보는 피레네산맥의 일출은 참 예뻤다.
해가 올라오고 30분 뒤. 새벽의 천둥이 무색할 만큼 맑은 하늘이 반겨주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내리쬤다. 그러나 피레네 산맥은 장장 20km 넘게 해발 1,400m까지 올라갔다가 가파르게 내려가는 코스이다. 중간중간 나무그늘 아래에 걸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땡볕아래를 지나게 된다. 맑은 하늘이 감사함과 동시에 나의 살이 탈까 걱정되었다.
사실 나는 살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선스틱은 항상 가지고 다니며, 햇빛에 노출되기 직전이면 거울이 없어도 얼굴이 문댔다. 그런데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이라니. 그러니 보이는 것이 있었다. 지금 입고 있던 나의 옷들은 나의 모든 살을 감싸주고 있었다. 입고 걸었던 옷은 긴바지 긴팔이었던 것이다. 아, 그래. 멋 부릴 것 하나 없다. 사진 찍기 위해 순례길에 온건 아니니까. 그리고 결심했다. 오늘처럼 계속 입기로.
나는 이제 단벌신사로 살아야겠다.
<오늘의 기록>
이동도시 생장 5:04 -> 론세스바에스 13:30
거리 26.9 km
걸음 45.230
내일도 부엔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