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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무개 Oct 17. 2023

덤으로 얻은 삶(2)

나는 죽었다.

  광명에서 구포로 가는 ktx를 탔다. 생애 처음 타는 ktx가 죽으러 가는 길이라니. 참.   

  모텔서 한숨 자고 죽을 생각으로 숙박을 끊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염라대왕이 살아서는 재울 생각이 없는 갑다 싶었다. 그래 저승에서 양껏 자자.

  멍하니 뜬 눈으로 시간을 보내다 미리 사둔 소주 한 병을 털어마셨다. 새벽 세 시쯤 남은 소주 한 병을 가방에 넣고 터덜터덜 밖으로 나왔다. 퇴실시간이 한참 남은 새벽에 갑자기 방키를 반납하니 사장으로 보이는 직원이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했다. 무시하고 그냥 나왔다. 새벽바람은 찼다. 겨울도 아닌데 이가 달달 떨리도록 추웠다.
  인터넷으로 수백 번 봤던 대교에 도착했다. 헤드라이트를 켠 차들이 쌩쌩 내달렸다. 눈이 부셨다. 나는 가방에서 꺼낸 소주를 목구멍에 꽐꽐 때려 붓고 대교 한가운데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적당한 위치에서 걸음을 멈췄다. 겁이 났지만 지체하는 순간 누군가의 신고로 계획이 실패할 것 같았다. 짊어진 가방을 먼저 내던지고 난간에 손을 짚었다. 숨 고를 새 없이 다리 한 짝을 올려 그대로 떨어졌다. 높이가 10미터쯤 되는 대교였는데, 체감상 물에 닿기까지 5초 가까이 걸린 듯싶었다. 떨어지는 느낌이 너무 무서워 소리를 빼액- 질렀다.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내 인생에 번지점프는 절대 없다.


  물을 미친 듯이 먹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춥다고 부랴부랴 입은 집업점퍼의 부력 덕을 보지 않았나 싶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강에서 둥둥 떠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새벽이라 조깅하는 사람도 없었다. 죽으려고 다시 물속으로 기어들어가면 어김없이 떠올랐다. 더러운 강물만 알차게 마셨다. 교량 다리라도 붙잡을 심산으로 있는 힘껏 팔을 내젓고 다리를 움직여봤지만, 유속은 빨랐고 나는 수영을 못했다. 심지어는 장딴지에 쥐까지 났다. 쥐가 난 다리를 부여잡고 또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죽으러 간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대교 위 차들은 바삐 지나갔고 말 귀 알아먹을 생명체라곤 뉴트리아도 안 보였다. 죽이든 살리든 제발 뭐든 해달라고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 4시간을 강물에 떠있었다. 체온이 떨어지고 기운도 없어 점점 정신이 혼미해졌다.  드디어 죽나 보다 싶었다.

    

  머리까지 물에 잠긴 채로 손만 간신히 허우적 댈 때, 저 멀리서 모터보트 소리가 들렸다. 낚싯배가 이쪽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물에 뜬 사람 손을 보고 급히 달려온 것이다. 민물낚시를 나온 아저씨는 생선 대신 사람을 건졌다. 아버지 뻘인 아저씨는 내게 젊은 사람이 어쩌려고 그랬냐 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사투리 가득한 말투에 다 담겨있었다. 생면부지 아저씨의 걱정 어린 말에 울음이 터졌다.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살아서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아빠 얼굴을 대면했다. 안 본 새에 많이 늙어있었다. 마음 약해지는 내가 싫었다. 정신병동에 들어가 한 달을 보내다 나왔다.

  

  연을 끊고 집을 나가 살았다. 그리고 죽으려 했다. 죽지 못해 병원에 입원했고 돈은 돈대로 깨졌다. 내 돈도 아니고 아빠 돈이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퇴원 후 인근 지역에 사는 외삼촌 댁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했다. 병원에서 처방한 수면제를 먹고 밤 9시면 잠들어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또 오전 내내 잠에 취해 살았다. 또다시 죽을 생각도 못하게끔 독한 수면제로 재우느라 종일 잠에 취해있었던 것인데, 그걸 모르는 외삼촌은 자꾸 누워 자기만 한다며 내심 불편한 속을 내비쳤다. 내가 활동적이지 못한 것을 꽤나 못마땅해했다.

  그런 마음을 알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당시 나는 오후가 되어 제법 사고가 가능한 정신상태가 되면 왜 죽지 못했을까 염불을 외웠다. 그러다 수면제를 먹고 다시 잠에 들기를 반복했다.

  

  누군 덤으로 얻은 인생이니 잘 살라고 한다. 엄마가 날 도운 거란다. 진짜일까. 나는 여전히 지옥 같은 곳에서 산다. 생각하기 나름이긴 한데, 지옥은 맞다. 어찌 됐든 죽는 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지옥에 뿌리내리기로 했다. 씨앗 뿌리고 거름 주고 물 흥건히 적시면 변변찮은 꽃 한 송이 정도는 피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아 참, 죽을 용기로 살아내라는 아주 멍청한 말이 있다. 근데 그보다 더 멍청한 소릴 하자면 강이나 바다에 투신할 용기로 다른 죽음을 모색하라. 경험자로서 당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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