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얘기만 들으면 우는 여자가 있다. 지구에 발 디디고 처음 접한 인류다.
술을 좋아하는 그는 자기가 닭이라도 되는지 새벽 6시만 되면 혼자 일어나 종종종 새 걸음을 하며 위스키병을 손에 든다. 그리고 구석에서 가 핸드폰 속 이상한 글을 키득키득 읽으며 홀로 2차를 달린다. 잠들기 전에 한참 남아있던 양주가 아침만 되면 빈병이 되고 만다. 참 괴이하면서도 귀여운 행위다. 근데 그 짓을 매일 한다.
나 역시도 술을 즐기는 편이라 그에게 "술을 먹으면 마음이 유연해져 좋다." 말하니 더러 공감을 한다. 그는 내가 쓴 글을 읽고 애처롭다는 듯 운다. 술 먹고 내 글을 읽지 말라 당부했다. 사실 그가 울면 나도 슬프다. 괜히 청승이네 어쩌네 놀리지만, 나도 내심 울고 있다. 누군가 나로 인해 마음 쓰는 일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미안하기 때문이다. 미안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밖에 못 살아 죄스러울 지경이다.
다시 돌아가 내 얘기에 우는 그는 입도 거칠고 삶도 거칠다. 그는 우리 또래치고는 일찍 결혼을 했고, 이혼까지 맛봤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간이고 쓸개고 다 빼다 주는 스타일이라 이용해 먹기 딱 좋다. 그가 지은 마음의 집에는 잠금쇠도 허물 벽조차도 없어 순간 들이닥쳐 다 앗아가도 괜찮다 하는 사람이다.- 이 외에도 가정불화, 폭력, 정신적 학대 등에 어린 시절부터 노출되어 왔다.
집이 아닌 찜질방에서의 생활, 퇴근한 아버지의 자동차 엔진소리, 잠을 안 재우고 피우게 한 담배, 피가 낭자한 벽지, 주차장에서의 데이트폭력, 위로 대신 돌아온 질책, 깨진 소주병으로 그은 손목 등 말도 안 되는 문장들을 초연하게 내뱉을 때의 모습을 보면 내가 다 쓸쓸하다.
태어나 겪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을 모조리 겪은 그는 일찍이 경험치가 많이 쌓여 마냥 슬픈 일만은 아니라고 여긴다. 똥인지 된장인지 남보다 일찍 찍어 먹어봤으므로 젊어한 고생은 지혜가 되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아왔음에도 자신의 삶을 꾸미거나 거짓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으레 속내를 숨기고 거짓말도 습관처럼 하며 살아온 내게 큰 울림을 준다. 그가 가진 삶의 굴곡이 그를 더 빛나게 한다.
하지만 나는 솔로 영숙이 급발진하는 그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음에도 타인의 작은 상처에 무너지는 사람이다. 남의 얘기에 울면 위선이라는 사람이 내 이야기에는 그렇게 착즙을 한다. 마음은 제 사람이 아닌 자에겐 무미건조하나, 자기가 마음 쓰는 자에게는 선택적으로 야들하다. 그는 나를 오래 알고 지낸 내 친구들보다 더없는 애정으로 대한다. 아낌없이 주는 조금 꺼끌꺼끌한 나무다.
나는 말수가 무척이나 적은 사람인데, 그는 말이 적잖이 있는 편이다. 내 앞에서 조잘거리는 얘기는 늘 재밌다. 종종 공감 안 되는 이야기마저도 재밌다. 그는 우리를 하찮으면서도 귀여운 사람이라 정의 내렸다. 귀엽다니? 무슨 자의식인가 싶겠지만, 너무 같잖아서 귀여운 구석이 있다. 둘 다 mbti F인 주제에 어쩌다 T스러운(?) 말을 하면 "야, 우리 찐 T다. 미쳤다. 겁나 이성적이야." 라며 진짜 T가 들으면 혀를 끌끌 찰 대화를 자주 한다.
유럽보다 제주도가 좋다는 그는 나중에 제주에 내려가 강아지와 고양이를 키우며 같이 히피처럼 살자 제안해 왔다. 인간에 대한 갈망과 혐오가 함께 뒤섞인 나는 사람과 허물없이 가까워지는 것에 목말라하면서도 늘 경계한다. 그래서 제주에는 지네가 많고 심지어는 그 크기가 손바닥만 하니 지네를 무서워하는 나는 그곳에서 사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 버렸다. 그러다 술에 취해 쭈그려 자는 그를 보고 짠한 마음이 들었는지 언젠가 서로의 삶이 안정될 때 손 붙잡고 함께 가보자는 마음이 한구석에서 피었다.
그를 알면 알수록 인간이 전에 없던 신인류를 만났을 때 느끼는 흥미로움과 모종의 두려움이 공존한다. 한없이 가까운 존재이고 싶으면서도 한 발 물러나게 되는, 자못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림 - 김찬송 <Nu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