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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무개 Nov 08. 2023

외톨박이

지난 삼복더위에 지친 것은 몸뚱이뿐만이 아니었다. 형태 모호한 마음마저 작열하는 태양에 녹아내렸다가 눌어붙었다가 다시 흘러내렸다. 흡사 한여름의 탕후루였다. 푹 퍼져버려 주워 담기도 영 찝찝하거니와 그걸 주워와 당최 뭘 어찌할 수 있을까 싶어 못 본 척 덮어두었다.


꿉꿉한 여름 가고 쌀쌀한 온도에 코 훌찌럭 소리가 군데군데 울려 퍼지는 계절이 왔다. 온몸에 감돌던 습기가 싹 마른 게 여간 마음에 찼는지 쩍쩍 눌어붙은 것을 뒤로하고, 신발끈 고쳐 매 걸음을 내디뎠다. 근데 나 원 참, 걷는 족족 누루죽죽한 이파리들이 흐느적흐느적 나부끼질 않나. 알알이 고얀내 나는 은행이 발 디딜 틈 없이 나뒹굴지를 않나. 날밤 새도록 토악질 나는 먹이만 찾는 날개 달린 짐승까지 발치 앞에서 알짱대고 길을 틀어막지를 않나. 마음 심란한 이유는 백가지도 더 댈 수 있다며 얼마 안 가 눈 질끈 감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돌아오는 길, 밑두방치에 잔뜩 녹이 낀 버스정류장을 마주했다.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것처럼 기운 것을 보고 너도 나와 같이 골반 전방경사더냐 하는 멍청한 말을 주절댔다. 그래도 저것은 세금으로 고쳐줄 텐데, 흘러내린 내 마음은 내 부모가 고쳐주기는 할까. a/s는 기기결함임을 증명해 내야 무상수리를 받을 수 있다. 나는 기기결함인 것도 같고, 우발적 손상인 것도 같은데 무상수리가 가능할까. 아 보증기간이 있지. 그럼 나는 기간이 이미 다 지난 건가.


이런 허무맹랑한 망상에서 헤어 나오는 데에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갓진 오후, 익어가는 계절을 감상하겠다고 산책을 나온 사무실 직원들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갑자기 굽은 어깨와 모가지에 빳빳이 힘이 들어갔다. 삼삼오오 죄 무리 지어 까르륵거리는 사이를 뚫을 때에는 문득 외딴섬의 기분을 헤아리게 된다. 퀴퀴하고 추레한 차림새에 버석버석 건조한 표정으로 나만 왜 혼자일까 하는 심오한 생각에 휘감긴다.


지난여름의 문턱에서 옆 사무실 과장님이 내게 왜 늘 혼자냐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었다. 제가 너무 혼자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죠?라는 자조 섞인 대답과 함께 웃고 말았는데, 그의 물음은 나로 하여금 조금 수치스럽기도 감상적이기도 하였다. 알게 모르게 내가 어울리는 동료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을 신경 쓰고 있는 건가 싶었다. 떼 지어 다니는 사람들을 지나칠 때 혹시나 나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아닐지, 내가 퍽 초라해 보이는 것은 아닐지 조금씩 의식이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그 말이 정말 맞나 의구심을 품기도 하였다.


언제나 혈혈단신인 것에 스스로가 불편을 느끼는지 골몰했다. 외롭네, 쓸쓸하네를 습관처럼 생각했을 뿐 처절하게 외로웠던 적은 없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 가장 나다울 수 있고 입 다물고 공상할 수 있음이 좋았다. 그러다가도 때때로 적적하다는 생각이 떠오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종종 드는 적적하다든가 쓸쓸하다든가 하는 생각이 거짓된 외로움은 아닐까 가설을 세워보았다. 저들 모두 눈이 멀어버렸다거나 내가 투명망토를 걸치고 다닌다거나 하는 상태에서도 혼자된 기분에 울적해할까? 답은 ‘아니다’였다. 나는 비로소 완벽해질 수 있다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무리 지어 있어도 더 적극적으로 독자적인 움직임을 택할 것이었다.


결국 나는 혼자여서 불편한 게 아니라 의식되는 시선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 의식 속에는 여름날 엘리베이터에서 과장님이 던진 몇 마디가 있었고, “박아무개는 맨날 혼자 다니잖아. 쟤 왕따 같아.”라며 전세버스 뒷좌석에서 찐따 박아무개에 대한 단상을 늘어놓던 남학생들의 앞담화가 있었고, 나가서 친구 좀 사귀라는 엄마의 성화가 있었고, 매일 김밥천국에서 혼자 점심을 해결한다는 말에 질겁한 친구의 시선이 있었고, 3명의 무리에서 나름의 배려로 매번 혼자를 자청한 내게 따라붙은 ‘외톨이’라는 수식어가 있었다.


이 세상에서 혼자서는 완벽할 수 없다고, 꼭 옆에 짝하나쯤은 붙어있어야 한다고 온 세상이 소리치는 듯했지만, 나는 항상 혼자였다. 혼자여도 괜찮다는 것을, 혼자일 수도 있다는 것을, 혼자를 선호하는 인간도 있음을 증명해 낼 필요 없이 혼자가 기본값인 세계를 꿈꾸기도 했다. 이런 생각들로 멀리 떠나 있는 동안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 눌어붙어 있었고, 멋쩍음에 괜히 마른기침 내뱉으며 오늘도 한 무리 또 한 무리 그리고 또 다른 무리를 지나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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