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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무개 Nov 10. 2023

오래된 것을 놓아줄 때의 슬픔

오랜 벗을 놓아주며

  나이가 찰수록 텅 빈 머리에 나름의 지혜가 쌓임과 동시에 쉬어터진 마음에 밥알 굳듯 고집 또한 덕지덕지 자리했다. 내 아집과 친구의 아집이 격돌할 때에는 꺾이기도, 꺾어보기도 하며 배배 꼰 팔짱에 더 큰 힘을 주며 꼭 붙어 감정소모를 했다. 제 마음이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우리의 관계가 무르익고 있구나 단단하고 알찬 열매를 맺는 과정이겠거니 자위를 했더랬다. 무엇이 되었든 오래된 것은 긴 세월 동안 거친 풍파에도 굳건한 줄 알았다. 개미새끼 얼씬도 못할 만큼 견고할 것이며 주변에서 흔들어대도 쉬이 떨어질 수 없는 강직함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오만이었고 착각이었다. 내가 팔을 슬며시 뺐을 때에 인생의 절반이나 되는 긴 시간 꼬았던 팔짱은 힘없이 풀렸다. 나만 한 발 물러난 줄 알았는데, 벗은 진작에 멀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래된 것은 그 자체로 낡고 약한데 잦은 마찰이 더해지니 수명만 다했다. 두드릴수록 단단해지는 것은 쇠뿐이었다. 영원불멸한 것은 없다는 걸 미역국에 밥을 서른 번 말고 서른 번째 떡국을 입에 댔을 때 깨달았다.

  여성인권이라든가 사회문제라든가 제 발등에 떨어진 불에는 흐린 눈을 한 채 삼라만상에 관심을 두는 염세적이면서 이상주의적인 나와 달리 나의 벗은 좀 더 현실적으로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사회와 잘 융화되어 살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의 경계가 모호하지도 엉켜있지도 않음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가장 가까웠던 둘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이 되어 대척점에 서 서로를 등지고 있을 따름이었다.

  우리의 우정은 소멸했고 나는 내 오랜 벗을 보내주었다. 더 이상 내가 그 애에게 그 애가 내게 제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람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었다. 훈련되지 않은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많이 앓았고 못내 괴로웠다. 이제 영혼을 나눴다거나 운명이라거나 전생에 대단한 관계였다거나 하는 말들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오랜 벗을 향한 순수했던 나의 마음은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이 짓도 여러 번 해 버릇하면 자연스러워지겠지만, 당장은 허한감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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