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리뷰

영화<대부>리뷰

거절할 수 없는 제안

by 대상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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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가 재개봉했습니다. 마땅히 극장을 다녀왔습니다.


아리에스터의 <유전>을 보고 나왔을 때와 비슷한 감상이 듭니다.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인간의 죄는, 악행은 가족단위에서, 문화단위에서 세습되어 내려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단연 마이클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주인공이 비토처럼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시점은 어느순간부터 마이클의 시점에서 조망됩니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구도적으로나 심도적으로나 마땅히 주인공이랄게 없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결혼식 장면에서 카메라는 멀찍이 물러나 인파를 스케치하고, 이야기는 여기저기 산개됩니다.


하지만 사건이 쌓이고 위기가 닥치면서 카메라는 점차 그의 얼굴, 그의 눈빛으로 다가갑니다.


병원 장면, 식당 총격 장면을 지나며 숏의 초점은 배경에서 이탈해 마이클에게 집중되는식이지요.


마침내 영화의 후반부에서 내러티브와 카메라, 권력의 중심이 모두 그에게 귀속됩니다.


카메라의 시선 이동은 곧 마이클이 패밀리 구조에 함입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함입은 인간이 구조속으로 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세계의 규율이 인간에게로 흡수되어지는 과정을 그리는듯 싶습니다.


영화의 압권인 세례의 장면에서

아기는 예수도 모르고 종교도 모르는 채. 성수에 적셔지며 세례를 받듯.

세계의 관습은 우리에게 내면화됩니다.


그러한 내면화는 그 시작점에서부터 폭력적입니다. 세계는 아기를 공동체에 편입시키는 규율적 장치이자, 동시에 마이클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생산적 권력의 순간입니다.


어떤 가족, 어떤 종교, 어떤 국가, 어떤 문화에 적셔질지 우리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습니다.




해당 교차편집은 마치 성스러움과 폭력의 대비처럼 보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종교적 의례나 도덕은 과연 성스럽고 따뜻하기만 할까요.


미국이. 그리고 이제는 세계의 전반이 봉신하는 자본주의와 국가체계는 과연 선량한 제도인걸까요.


마이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It’s not personal, it’s strictly business.”


영화내에 벌어지는 대개의 악행은 감정이 아니라 비지니스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자본과 권력은 폭력이라는 측면에서 동일시됩니다.


영화의 명대사로 흔히 알려진 "I'll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라는 대사가 떠오릅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는 내용이 주는 폭력성이. 참으로 은밀하면서도 강력합니다.


언어가 주는 폭력성이 그러합니다.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강제하고 인간은 언어에 종속되기도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인간애에 대한 우려와 연민의 태도를 버리지 않습니다.


마이클의 타락의 과정을 아버지의 피습이나, 아내의 죽음, 그리고 형의 피살등으로 설득을하려 시도합니다.


영화속에서 계략과 악행과 폭력은 철저히 조직화된(어쩌면 business적인) 구도와 조명, 세트안에서 촬영됩니다.


(비토의 딸, 그러니까 코니의 결혼식이 이루어지는동안 모든 계략과 거래는 성채같은 저택의 내밀한 공간에서

얼굴의 절반을 검게 가려버리는 짙은 어둠속에서 촬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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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가족애와 연회와 축제와 연대의 장면들은 비교적 자유로운(personal) 초점과 카메라, 그리고 자연광속에서 촬영되지요.


(당장 같은 시간선에서, 코니의 결혼식이 진행되는 파티의 장면이 그렇습니다. 이 두 대비는 촬영방식에서부터 완전히 대비되며, 심지어는 교차편집으로 그 대비를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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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떤 단일한 가치관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마치 빛과 어둠의 대비처럼 세상의 양상을 두가지씩 제시하며 관객들에게 생각을 촉구합니다.



이러한 대비의 장면은 세계에대한 해석임과 동시에 영화를 이분할하는 두 시선과도 맞물립니다.


미국 장면은 빠른 컷 전환, 인공 조명, 할리우드적 리듬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폭력은 산업화된 비즈니스, 자본주의의 속도와 효율성 속에서 작동합니다.


반대로 시칠리아 장면은 롱테이크와 자연 채광을 사용합니다.


이는 누벨바그와 네오리얼리즘을 연상시키는 유럽적 촬영법으로, 전통과 운명, 시간의 느림을 보여주지요.


결국 이 영화는 폭력의 이중 구조(가문/자본)와 동시에 영화문화의 이중 구조(유럽/헐리우드)를 함께 드러내게됩니다.



<대부>는 마피아의 가족주의 폭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문화적 제도(가족, 종교, 법, 자본)가 욕망을 조직하고,

그 욕망이 다시 권력을 재생산하는 폭력의 순환 구조를 드러내는 알레고리입니다.


그리고 이 알레고리는 영화 형식 그 자체로 체험됩니다.


마이클의 이야기는 “착한 아들의 타락”이 아니라, 문화라는 폭력 구조와 영화문화의 이중 구조 속에서 이미 대부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필연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는 마이클과 그의 아내를 공간적으로 분리시키며 마무리를 짓습니다.


아내와, 마이클은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있습니다.


마이클은, 아내를 자신의 세계에서 분리해냈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스스로를 가문과 권력속으로 유폐시킨 범죄자의 외로움일지도 모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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