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ifornia Dreamin'
5월 30일(금) 오후.
오전 수업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행정 업무를 시작하려 책상에 앉았을 때.
사무실 한쪽에 있는 스피커에서 The Mamas &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이 흘러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누군가의 선곡으로 듣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눈과 손의 기능이 멈추고 언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중경삼림의 이미지들이 머리에 하나 둘 꽂힌다.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시간이다. 커피를 들고 의자를 돌려 책상 뒤쪽, 창 밖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본다.
내 자리의 뒤쪽은 대형 통 창을 통해 바깥을 보면 학교 숲과 텃밭, 운동장 등 학교의 모든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숲에 난 길을 선생님과 함께 일렬로 걸으며 나무를 보는 아이들. 정자에 앉아 웃으며 과자를 먹는 아이들. 자기 반 텃밭의 상추를 수확하는 아이들. 흔들 나무 그네를 해먹 삼아 누워서 쉬는 아이. 모두 각자의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 모든 장면이 창이 프레임이 되어 모지스의 미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 많은 화가를 알지 못하지만 '그랜마 모지스'의 작품들을 매우 좋아한다.
2년 전 이사한 집의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에 모지스의 작품을 걸어놓았다.
그저 소박하고 밝으며, 보통의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그녀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오늘 직장에서의 풍경을 생각하고 모지스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작품들을 다시 감상하니 등장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각자의 계절을 누리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각자의 노력하는 삶들이 모여 발전하는 사회가 되고, 각자의 즐거움들이 모여 공동체가 큰 행복을 갖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 단체 생활
- 나보다는 우리
- 개인주의
- 공동의 목표를 위한 인내와 희생
어린 시절부터 강요받고, 각인되었던 이러한 가치들을 다시 생각하고 내 삶에서 생각 없이 적용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생각이 다른 이를 비판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6월부터 직장인이 되는 학생의 학부모님께서 학교에 서류 작성을 위해 방문하셨다.
좋은 기업에 취직하였고, 그간 자녀가 학교 생활을 행복하게 하여 울먹이면서까지 감사를 전하셨다.
잘된 케이스로 학교를 그만 다니게 되었지만 아이들과의 이별 순간에는 늘 같은 마음이 든다.
’후회와 미안함‘
더 좋은 것들을 더 많이 알려주고 싶었고,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부족한 것들만 생각난다.
무엇에 초점을 맞출지, 비중을 어떻게 조절할지, 얼마나 개입할지 등.
같은 일을 15년 이상 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점점 어려워지는 부분도 있다.
오늘 신문 칼럼에 20년 이상 출판업에 종사하고 있는 디렉터가 후배와 책 출간의 어려움에 대한 대화가 실려있었다.
"나도 매번 모르겠어. 늘 너무 어려워. 늘 헤매고, 매번 실수해." 조금의 위안을 얻는다.
내가 하는 일 또한 어려움이 없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확신을 잘 안 하는 성격이지만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려우니 노력할 것이고, 노력에는 열정이 있어야 하겠고, 나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말해야 하니 겸손이 필요한 이 직업.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모르겠다.
한 여름의 따사로운 햇살 아래 쉼을 즐기는 이들.
학생의 신분에서 직장인으로 새로운 출발점에 선 학생.
언제나 부족하지만 걱정보다는 감사가 많은 나.
우리 모두는 각자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잘.
우리들의 삶에 캘리포니아의 따뜻함이 늘 함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