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까?
17년째 급여를 받고 일하는 직장인이다.
같은 직종에서 17년이면 산전수전은 아닐지라도 몇 번의 굴곡은 경험했을 연차라 조심스레 글을 쓴다. 몇 십 년을 근무하시고 퇴직하신 선배 직장인들이 주변에 많아 부끄럽지만,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직장에서 이런저런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직장 분위기도 좋지 않다. 누군가의 작은 부주의도 있었겠지만 악의는 없었다. 그러함에도 일이 커져, 당사자와 관리자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당연히 직장의 모든 구성원 또한 힘들겠지만 이 분들 만큼은 아닐 것이다.)
하루 중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무려 10시간. 공무원 신분이라 이 정도지, 야근이 많은 사기업에서는 하루 중 절반이 넘는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이도 흔할 것이다. 그만큼 삶에서 직장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삶의 주요 부분이자 연장선이라 생각했을 때, 삶에서 그런 것처럼 직장에서의 "변수"들을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만 한다. 지금 일어나지 않아도 크던 작던 위기는 언젠가 찾아올 것이고, 우리는 그것으로 굴곡을 만들어 갈 것이다.
위기는 대부분 이 "변수"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다. 늘 삶이 내 뜻과 의지대로 되지 않음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우리는 연약하여 늘 삶이 내 뜻과 의지대로 될 것이라 생각한다. 생각지 못한 순간에,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생각지 못한 이유로 위기를 맞으면 당황하게 되고, 그때서야 완벽하지 못한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조금이라도 이 위기를 자연스레 맞이하며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 늘 위기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한 철학자는 '행복한 순간은 감사하게 즐기면 되고, 어려운 순간은 버티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곱씹어 보면, '주어진 하루를 살아라'로 나는 요약했다. 내 통제를 벗어난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일들은 천하의 누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발생했을 것이다. 위기를 대비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은 지혜롭다. 다만, 불확실한 미래의 일에 오늘 하루가 지장을 받는다면 문제가 있다. 내가 살아온 하루하루가 모여서 삶이 완성된다고 한다면, 걱정의 삶을 살 것인가, 행복의 삶을 살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2. 내가 의도치 않았다면 자책하지 말자.
야심 차게 립스틱 사업을 준비하던 회사가 코로나로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다닐지 어떻게 알았겠나. 수백 명이 움직이는 수학여행을 분 단위로 완벽하게 계획을 세웠던들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기약없이 취소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두 케이스 모두 주변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사자는 몹시 괴로워했고, 위로도 힘이 되지 못했다. 나 또한 당사자였다면 비슷했을 것이다. 언제나 인간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데, 말은 쉽지만 잘 되지 않는다. 다음날 날씨도 맞추기 어려운 게 세상의 일이다. 놓을 것은 놓아야 한다.
3. 사람과 관계된 위기는 마음이 먼저다.
(내 자랑 같지만) 내 주특기는 사과다. 성격이 모나지 않고, 겸손하게 살고자 노력했던 터라 잘못을 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잘못했던, 잘못하지 않았던 관계없이 사과를 많이 하며 살았다. 중재자의 역할에서 대신 사과를 했던 경우도 많았다. 사과의 기본은 어떠한 상황 설명이나 논리를 따지는 일을 멀리하는 것이다. 오로지 나의 잘못에만 초점을 맞추어 진심을 다해 미안함을 전달해야 한다. 처음에는 쉽지 않다. 억울하다. 이런저런 피치 못할 상황이 있었는데, 그것을 빼려 하니 자존심이 상한다. 하지만 사과는 상대에 위해 하는 것이지 내 분함을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가벼운 자동차 접촉사고에서 피해자가 되었을 때, 상대가 우물쭈물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여기저기 전화하며 상황 분석에 들어가는 경우. 차에서 바로 내려서 상대를 걱정하고 진심으로 죄송함을 전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 후의 결과는 누가 예상한들 같을 것이다.
직장에서 또한 사람(고객이나 동료 등)이 상처받는 일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 올바른 사과 한 번으로 다양한 민원이 제기되지 않을 수 있고, 복잡한 수습 절차를 간소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4. 위기는 함께 극복해야 한다. 위기는 끝내 더 좋은 것으로 바뀔 수 있다.
작년 3월, 1년 중 가장 바쁜 한 달을 보내고 있는 내게 교장선생님 호출이 있었다. 입시에 쓸 수 있는 실기 시험 문제 40개를 1학기 동안 만들라는 것이다.(실제 입시에는 4문제 정도를 출제하는데, 많은 문제를 확보하고 그중에서 뽑아서 쓰고자 했던 의도, 즉 문제은행을 만들고자 하셨던 것이다.) 학교 생활의 위기였다. 한 문항을 출제하는데 온 힘을 쏟아도 며칠은 걸리는 것을 40문항을 만들라니. 부장교사로서 나의 첫 1학기는 학교에 묻혀 지내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지인들의 해를 보지 못하는 출퇴근을 몇 개월간 나도 경험하겠구나. 내가 부장으로 있는 과정의 교사들은 모두 18명이다. 이 일을 모두가 알고 특별히 사정이 있었던 1명을 제외하고 17명의 교사들이 각자 2문항씩, 어떤 분은 3~4문항을 만들어 40문항을 채워주었다. 아주 짧은 기간에 과제를 완료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던 일이었고, 다른 보상이 주어지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감동이 매우 컸다. 이 일은 우리 과정을 1년 내내 화기애애하고 가족처럼 단단히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위기의 이면의 모습을 그때 나는 보았다.
이렇듯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위기라도 혼자인 것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은 다르다. 해결은 가능하겠지만 그것을 거쳐가는 시간이 외로울 수도, 감동적일 수도 있다. 다른 측면으로 생각하면 누군가 위기를 맞이한다면 내가 옆에 있어주는 것은 어떨까? 꼭 그가 내가 어려울 때 돕지 않는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멋진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17년을 사람과 더불어 살아왔다. 행복하고 감사한 직장생활을 지금도 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18명이 소속된 과정의 부장을 맡고 있다. 언제라도 18명 중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일처럼 함께할(혹은 대신할) 생각을 3월의 시작과 함께 가졌다. 그들에게 가족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언제 닥칠 위기도 두렵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 속에서 행복, 감사, 창의성, 배려가 더욱 쏟아질 것이다. 조직은 그렇게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사람과 관계된 위기는 사람으로 극복하고, 사람과 관계되지 않은 위기도 사람으로 극복한다. 결국 직장 생활은 관계라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