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역전 만루홈런
9회 역전 만루홈런.
많은 곳에 인용되어 어디서든 한번쯤은 들어봤던 말.
짧은 표현 안에 인내와 환희가 가득한 말.
많은 이가 늘 꿈꾸며 살아가는 목표가 되는 말.
이 일이 실제 일어난 현장에 있었다. 아들과 함께.
지난주 목요일(6/27). 잠실에서 베어스와 라이온스의 야구 경기가 있었다. 라이온즈의 열혈팬인 아들이 한 달 전부터 기다린 경기다.
대구에는 연고도 없고, 가족 중 누구 하나 라이온즈를 응원하는 사람이 없는데, 지난해 포스트 시즌부터 라이온즈의 열성팬이 되었다.
실시간 선착순 티켓 예매는 자신이 없었고, 성실하게 며칠을 새로고침하여 좋은 좌석의 취소표 두 장을 예매했다. 티켓 예매에도 성격이 나온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는 나의 집요함을 보았다.
경기는 평일 저녁이라 직장인에게는 매우 피곤한 일정이다. 학교에 근무하고 있어 학기말이라 더욱 바쁜 요즘이다. 서둘러 업무를 마무리하고 귀가하여 짐을 챙겨 대중교통으로 잠실 야구장으로 향했다. 잠시도 쉴 시간이 없다. 조금이라도 일찍 야구장에 도착해야 한다. 굿즈와 응원도구를 사야 한다. 간식도 준비해야 한다. 바쁘다. 야구장이 집과 가까워 다행이다.
입장하여 라이온즈 사람들의 물결 속에 합류했다. 난 라이온즈 팬은 아니지만 오늘만은 아들을 위해서 함께 사자를 응원하기로 한다. 사실 지난 특정 몇 시즌 동안 왕조를 구축하며 독주를 했던 라이온즈를 좋아하지 않았다. 공공의 적이라고 할까?? 오히려 매 시즌 꼴등을 맡아서 하는 이글스의 팬이 되었다. 야구 응원도 측은지심으로.(라이온즈 팬과 이글스 팬들께 죄송합니다.)
오늘 경기는 8회까지 1:3으로 라이온즈가 베어스에 끌려가며 패배가 예상되었다. 라이온즈의 팬 일부는 경기 종료 후의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귀가를 시작했고, 아들은 식음을 전폐하며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치킨도 잘 먹지 못했다. 응원 타월과 방망이를 사용하여 간절하게 응원할 뿐이다. 주변 어른들도 다 포기하고 조용한데 혼자 응원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쓰럽다.
9회 마지막 공격에서 라이온즈는 이상한 흐름을 타더니 만루를 만들었고,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재현 선수가 만루 홈런으로 단숨에 역전을 시켰다. 아이 눈에는 금세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주변의 사람들과 기쁨을 나눈다. 최종 6-4로 라이온즈가 승리하였고, 늦은 시간이라 피곤했지만 행복하게 귀가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야구는 삶의 축소판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번 경기를 통해 아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유리하다고 자만하지 않는 것(실제 만루 홈런 후 아웃카운트를 착각한 주루사가 있었음)을 말없이 느끼게 해 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감사했던 것은 살면서 느끼는 많은 감정들을 짧은 시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대, 실망, 초조, 불안, 포기, 희망, 환희, 행복. 그것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세 시간 동안 아이의 표정 변화를 보는 것이 참 재밌었다. 이 세 시간이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어떤 힘이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상황에 따른 감정에 휘둘려서 좋거나 좋지 않은 감정이 오랫동안 아이에게 머물러있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돈 주고도 못하는 OOO"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번 경기는 돈주고도 못 보는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