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라고 한다면 고통이나 위기와 다른 말이다.
고통이나 위기는 깊은 웅덩이에 빠진 것처럼 짧은 순간을 내포한다.
고난은 다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무서운 긴 터널을 걸어가는 것이다.
고난의 시작은 두렵다. 그것이 삶에서 처음 마주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돌아갈 길은 없고 저 터널을 지나야 만 한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게 된다.
그럼 어쩔 수 없다. 지나가야 한다.
주저앉아 울거나 원망하며 시간을 지체할 수 있겠지만, 지나가야 한다.
계산이 빠른 머리로 이것저것 생각해 보아도 피할 길이 없다. 힘만 빠질 뿐이고 원망만 커질 뿐이다.
고난이 삶의 큰 경험이나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당장 온 정신을 모아 발걸음을 떼는 결단을 해야 한다.
하나만 선택하자.
저 긴 터널을 들어갈 것인가? 여기서 주저앉아 끝낼 것인가?
2014년 5월. 터널 앞에 난 서있었다.
결과적으로 터널을 나오는데 6년의 시간이 걸렸다.
입구에서는 6년짜리 이어진 긴 터널인 줄 알았는데 지나면서 알았다.
길고 짧은 터널들이 모여서 6년짜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한 터널이 끝나는 곳에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가 다시 절망했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느 순간에는 터널이 이어져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상처가 아물어져 가는 곳에 또 상처는 매우 아팠다.
나의 가장 깊은 곳을 보았던 시기였다.
세상적인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내게
남아 있던 연약함
남아 있던 사람들
남아 있던 마음
감히, 무례하게 말하지만 병을 선고받고 삶을 돌아보는 겸허한 시간을 경험했다.
고난은 축복이라 한다.
고난 속에서 단단해지고 그 후의 삶에 감사가 넘치게 되며 나를 위한 삶이 아닌 나눔과 배려의 삶이 시작될 거라 말한다.
당시에는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을 찔렀지만 그 말을 붙잡고도 싶었다.
터널을 나간 후의 일이니까.
고난의 길을 가는 어떤 이에게 말하고 싶다.
마치 산 정상에서 내려오며 올라가는 이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무슨 위로가 있으랴.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세요. 빨리 가시는 게 낫습니다. 끝은 무조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