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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방법

미술관에 가다

by 하이브라운

고난의 긴 터널을 막 진입했던 때였다.

처음 접하는 순간들.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들. 정리되지 않는 마음. 그리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의 삶.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두려웠던 때다.

그 시절 가장 편했던 순간은 잘 지냈던 못 지냈던, 일과를 마감하고 잠들기 위해 누운 순간이었다.


주말에 갑작스레 강원도 양구를 가게 되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의 은인에게 내 의사와 관계없이 끌려가다시피. 네비의 여러 길을 탐색하더니 국도를 따라 양구로 향한다. 경기 북부를 지나니 대학시절 수십 번은 다녔던 MT장소들이 나온다. 한적한 강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여유가 낯설다.

먼저 도착한 곳은 강원도 정식을 파는 식당. 화려하지는 않아도 맛이 담백하고 정갈했다. 식사를 마치고 조금 더 달려 도착한 곳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한적한 곳에 위치한 미술관은 주말인데도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그때는 사람이 많은 곳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었다. 미술에 조예가 없었어도 일상을 담담하게 표현한 박수근 작가님의 작품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내려오니 어느덧 밤이다. 오전에 시작된 일정이 하루가 다 지나고야 마쳤다. 지인에게 머리 식힐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감사를 전하고 헤어졌다.


그때를 생각하면 은인이라고 생각하는 내 지인은 오가는 동안 자기 일, 강원도 이야기, 음식, 박수근 화백 이야기 말고는 내 일과 관련하여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누구보다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잘 아는 사람이었는데.. 아직도 그 위로가 내게 남아있다. 긴 마라톤 중의 한 모금의 물이었다.

말로 하는 위로는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 온전히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묵묵히 바라봐주는 것. 그게 위로인 것을 그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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