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리 소설집
독서의 스승으로 모시는 후배 교사에게 소설책 추천을 부탁했더니 아래의 추천 이유와 함께 책을 빌려주었다.
브로콜리 펀치 - 젊은 작가의 독특하고 기발한 느낌의 단편집
사랑의 생애 - 문체가 독특하고 철학서 같은 장편 소설
이런 직장 생활 해보신 분? (이것은 진정한 자랑입니다.^^)
'사랑의 생애'는 내용이 조금 무거울 것 같아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브로콜리 펀치를 먼저 읽었다.
추천인의 말대로 독특하고 기발한 느낌을 8개의 단편 모두에서 받았다.
바로 전에 읽은 소설이 백수린 작가의 매우 차분하고 고요했던 소설이라 더욱 독특하다 생각되었고 흥미로웠다. 책 끝 부분에 실린 문학평론가의 감상평처럼 각 이야기에 펼쳐지는 기이한 사건들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현실과 매우 밀착된 느낌을 받아서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환상들이 작가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준으로 8편의 소설을 묶었는지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마음 한 편으로는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공통적으로 사람을 통한 위로와 사랑, 배려, 이해, 긍휼. 사람 냄새가 나는 단편 소설들이었다. 기이하고 환상적인 사건들과 따뜻한 인간애가 더해지니 읽는 내내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벚꽃 만개한 봄날에 독서의 즐거움을 가득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각 단편별 짧은 감상
1. 빨간 열매 :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무척이나 정겹다. 평온하고 보는 이로 흐뭇하게 한다. 열매가 태몽이 되었듯, 사랑은 늘 어디론가 전해져 흘러간다.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은 사랑이 아니리.
2. 둥둥 :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할 사랑은, 한정된 사랑은 언제나 슬프다. 당사자는 사랑했기에 괜찮다고 하지만 실은 가장 슬픈 사람이다. 추억은 그 슬픔을 지속시킨다. 지나간 사랑에 좋은 추억이라는 말은 성립되는가? '목은탁'의 기억 삭제는 최고의 소원이었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신촌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받는 사랑이 있길.
3. 브로콜리 펀치 : 아픔과 좋지 못한 기억들은 '시간'이라는 치료제가 지속 투여됨으로 잊혀지고 끝내 사라진다. 가슴속 아픔들로 한쪽 팔이 푸른 브로콜리로 변했다. 그 브로콜리에 꽃이 피었다.
아픔과 괴로움의 색이 원래 푸른색이었구나!
아픔이 해소되면 꽃이 피는구나!
그때가 비로소 꽃이 필 시기였구나!
좋은 사람이 옆에 있다면 내 어떤 것도 꽃이 될 수 있겠구나!
4. 손톱 그림자 : 지난 사랑의 기억은 흐려져 간다. 조금씩 조금씩 그러다 완전히. 불완전한 이별이라면 한쪽의 흐려짐은 한쪽의 미련을 가중시킨다. 마치 시소처럼. 이별도 힘든데 좋은 이별이 필요하구나. 함께 흐려질 수 있는 좋은 이별.
5. 왜가리 클럽 : 먹이를 잡기 위해서 집중하며 부리를 내리꽂는 왜가리. 성공해서 기쁜 기색 없고, 실패해도 담담하다. 성공과 실패를 같은 무게로 여긴다. 주인공인 양양미는 그런 왜가리의 모습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실패해서 실컷 슬퍼하고 우는 것이, 성공해서 환호하는 것이 난 왜 더 좋을까?
망한 반찬 가게의 재료들을 잔뜩 안고 돌아가는 회원들의 모습을 보니, 한 사람의 슬픔을 나눠가지면 "준"사람에겐 위로로 "받은"사람에겐 기쁨으로 변하는 아이러니.
6. 치즈 달과 비스코티 : 망상병이 있어 돌과 대화하는 남자, 보름달이 뜨면 치즈를 먹으러 달에 가는 남자.
비정상의 마음을 여는 것은 결국 비정상이 가진 진심. 그 진심에서 나오는 이해가 굳은 마음을 녹인다.
7. 평평한 세계 : 지난날의 아픔과 상처의 흔적들이 세상을 요철로 느끼게 했다. 먼지 같은 작은 틈 하나로 빛이 들어올 때, 세상의 평평함을 보게 된다. 그리고 몸소 느낀다. 그 작은 빛 하나로 나를 향해 변함없이 쏟아붓는 어둠들은 더 이상 힘이 없다.
인간 내면 저 깊은 곳에 있는 "긍휼". 그것은 누군가를 다시 살게 하는 힘이고, 회복의 시작점이며, 사랑을 피어나게 하는 씨앗임이 분명하다.
8. 이구아나와 나 : 외로움은 어느 순간, 또는 천천히 삶의 의미를 감춘다. 이구아나, 처음에는 외로움을 잊을 친구가 되더니 끝은 살아갈 이유를 깨닫게 한다. 이 이구아나가.
옆에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뭔가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연약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