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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Jul 03. 2017

[영화 리뷰] - <박열>

극단으로 뻗어나가 차분히 가라앉는다

  NBA의 마이클 조던, 복싱의 매니 파퀴아오처럼 은퇴를 번복하는 일이 영화계에서도 없지는 않은 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마찬가지고 영국의 거장 켄 로치 감독도 작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칸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도 꽤 유명했던 감독이 은퇴를 번복한 케이스가 있다. 바로 이번에 소개할 <박열>의 이준익 감독이다. <왕의 남자>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에 들어서 연출한 작품들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자 2011년 개봉작 <평양성>이 개봉할 당시에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면 은퇴를 하겠다고 했다가 진짜로 은퇴를 했다.(...) 그러나 2013년, <소원>이라는 작품으로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왔고 <사도>, <동주>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차이점이 생겼다. 기존에는 사람냄새나는 이야기를 다뤘지만 이제는 극단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포용해내는 이상한 힘이 생겼다. 이번 <박열>도 마찬가지. 굉장히 튀어보이지만 결국은 그 진정성에 이끌린다.

  겉 테두리로만 보면 굉장히 극단적이고 튀는 영화다. 포스터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사람이 많아 알겠지만 박열[이제훈 분]은 단순히 일본으로부터의 조선 독립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나키스트라는 독특한 사상을 지녔으며 암묵적으로 형성된 갑을관계에서 을의 입장임에도 과감하게 대들며(오프닝의 인력거, 감옥에서의 취조) 상식 밖의 행동을 취하곤 한다. 단순히 박열 뿐만 아니라 영화를 함께 이끌어가는 후미코[최희서 분]도 마찬가지. 그래서 영화는 사실상 코미디에 가까운 요소로 흘러가고 그 코미디의 방향 역시 튀는 편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보면 끊임없이 박열과 후미코, 그리고 불령사 사람들에게 설득을 당한다. 그 과정에는 반복적인 취조 에피소드들이 있고 그 공간은 굉장히 제한적인 감옥에서 일어난다. 박열과 후미코가 있는 대다수의 공간들이 비좁은 독방, 오로지 질의응답만이 허용되는 취조실임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영화가 정적인 느낌, 제한적인 상황에 있음을 알기 쉽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 초반의 역동성을 잃지 않고 단지 튀는 것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악에 대한 완전한 처벌, 원하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성취는 없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슴 한켠이 뻥 뚫리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먹먹해진다. 이는 이 극단적인 인물들을 관객들이 차분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연스레 끌어내린 이준익 감독 연출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배우를 보는 시선이다. 이번에도 이준익 감독은 젊은 배우로부터 새로운 느낌을 끌어내고 새로운 발견을 해낸다. 은퇴 번복 이후 작품들 중 <소원>에서 대배우 설경구에게 조금은 묻힌 감이 있지만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이레, 전작 <베테랑>에 조금은 묻힌 감이 있지만 <사도>의 유아인에게서는 설경구, 송강호라는 중견 배우들과의 호흡으로 이를 뽑아냈다면 <동주>의 강하늘과 박정민, <박열>의 이제훈과 최희서는 젊은 배우들만의 에너지로 만들어낸 영화다. 언급한 모든 인물들은 꽤나 극단적인 상황에 놓은 캐릭터들이다. 이를 표현하기에 최적인 배우들을 매번 탁월하게 캐스팅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배우들은 이를 정말 잘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은 매번 놀랍다. 만약 한두번에 그쳤다면 단지 배우의 힘이라고 봐야 하겠지만 매 작품이 이러하니 이쯤되면 이 부분까지도 이준익 감독의 실력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백번 양보해서 이제훈이야 원래 연기를 잘했다고 치더라도 최희서의 발견은 더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주>를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원>과 <사도>에 이어 이런 작품을 연출해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분명 제 2의 전성기가 왔다고. 그리고 <박열>을 보고서는 그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인 진행형이다. 끔찍한 사건을 당하고도 복수가 아닌 치유의 길을 걸어가고(<소원>) 왕가의 이야기를 최악의 부자관계로 압축해 풀어내는가 하면(<사도>) 고요함에서 뜨거운 감정을 이끌어냈으며(<동주>) 이번에는 왁자지껄하고 튀는 것들 속에 있는 큰 뜻을 보여주었다.(<박열>) 과연 다음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기분좋은 혼란을 일으킬까. 정말로 궁금해지는 이준익 감독이다.

p.s. 쓰고 보니 은퇴 번복 후의 영화 제목들이 모두 두 글자다.
(비결이 거기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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