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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Sep 19. 2017

[영화 리뷰] - 더 테이블

공간의 제한이 이야기와 화면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재작년, 독립 영화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들은 <최악의 하루>를 쉽게 잊지는 못할 것이다. 하루의 시간동안 남산이라는 비교적 제한된 공간에서 두 남녀가 겪는 기상천외한(!) 사건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두고서도 굉장히 아기자기하게 다양한 사건들을 배치한 좋은 영화였다. <최악의 하루>를 감독한 김종관 감독의 신작 <더 테이블>은 전작에 있었던 시공간적 제한을 강화하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많은 방법들을 사용해보고자 하는 작품 같았다. 이야기는 분절적으로 변했고 각 에피소드마다 갖는 영상적인 테마도 얼추 비슷해보이지만 엄연히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마치 공간이 제한된다고 해서 이야기와 화면이 제한될 필요는 없다는 듯한 선언과도 같았다.

  우선 네 에피소드를 이루는 기본적인 화면의 원칙은 얼추 비슷하다. 서로의 얼굴을 잡는 샷과 둘을 잡는 마스터 샷, 그 사이의 대화. 하지만 앞서 말했듯 매 에피소드마다 분명한 차별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창 밖에서 바라보는 숏, 그리고 창문에 붙어있는 막대를 통해 그 둘을 갈라놓는 것이 핵심적이라면 두 번째는 그 둘을 타이트하게 잡은 클로즈 업이 영화의 이야기를 깊이있게 만들어준다. 세 번째는 팽팽하게 두 배우를 수평으로 움직이다 부드러운 연결의 클로즈 업으로 돌아와 가짜에서 진심까지 도달하는 순간을 잡아낸다면(비록 완전히 도달하진 못하지만), 네 번째는 첫 번째와 같이 창문 밖에서 바라봐 둘의 거리감을 두지만 그 둘을 쉽사리 갈라놓지 않아 묘한 밀고 당기기를 선보인다. 이렇듯 영화는 미세하게 각 이야기들마다 차별점을 두고 있고 이 차별점을 눈여겨 보면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이러한 차이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살려주고 있다.

  이야기의 구성도 마찬가지. 완전히 분절적인 이야기로 보이고 그게 맞지만 영화는 최소한의 구조를 갖춰 이야기를 배치한다. 첫 번째와 네 번째가 헤어지는 이야기라면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만나는 이야기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첫 번째와 네 번째는 기존에 큰 거부감이 없던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이야기라면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사이에게 가까워지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화의 구조는 대칭을 이루며 각 이야기마다 배정받은 시간에 따라서도 그 분위기에 맞춰 이야기가 배치된다.(특히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가 갖는 시간적 유사성과 비슷한 분위기 속에서 갖는 미세한 차이,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를 감도는 햇살은 이야기와 너무 잘 어울린다.)

  구조도 구조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좋은 배우들의 연기를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4쌍의 배우들 모두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고 매 에피소드마다 다채로운 연기가 보이기에 단조로울 수 있는 영화를 훨씬 입체감있게 만들어준다.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의 정은채 배우와 세 번째 에피소드의 김혜옥 배우, 그 중에서도 상황을 연습해보는 대사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전작보다 낫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분명 <최악의 하루>가 더 아기자기한 면이 있었고 부드러운 흐름이 있었다. 그에 비한다면 <더 테이블>은 꽤나 목적이 분명해보였고 영화적인 통제가 보는 사람에게도 너무 크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한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보여주는 결과물은 분명 인상적이다. 애초부터 예고를 한 것과도 같지만 김종관 감독은 공간적 제한 속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다양한 영화적 조합을 선보였고 그 시도는 분명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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