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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Feb 10. 2018

아카데미의 이중잣대, 혹은 변화의 조짐

제임스 프랭코 후보 누락에 대하여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가 공개된 지 거의 3주가 다 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난 1월 23일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가 공개되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수상을 예상하거나 '이 작품/배우/스태프가 들지 않아서 아쉽다', 혹은 반대로 '왜 이 영화가 후보에 들었을까'를 논하는 등 갑론을박이 많은 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화제가 되었던 부분은 아마 남우주연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더 디재스터 아티스트>로 큰 호평을 받으며 골든 글로브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제임스 프랭코는 아카데미에서도 강력한 수상 후보로 점쳐졌습니다만 후보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임스 프랭코가 최근 5명의 여성을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폭로를 시작으로 할리우드에서는 여성 영화인이 당해왔던 성추행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벌어졌고 많은 영화인들의 좋지 않은 뒷모습을 고발했습니다. 아카데미는 이 운동의 여파로 제임스 프랭코를 후보에서 제외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임스 프랭코가 연출, 출연한 <더 디재스터 아티스트>. 제임스 프랭코는 이 작품으로 골든 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물론 제임스 프랭코가 누락된 것이 꼭 이 이유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의 선택이 언제나 일치했던 것도 아니니까요. 당장 골든글로브는 배우 부문 수상에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로 장르를 나누어 각 5명씩 총 10명의 후보를 두지만 아카데미는 5명에 불과하니 말이죠. 당장 숫자로만 봐도 골든 글로브에서 지목된 후보가 모두 아카데미 후보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프랭코는 수상자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분명 배제된 이유를 작품 내에서 찾기는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최근 '미투'운동의 여파라고 생각하고 아카데미의 행보를 생각한다면 두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일종의 눈치 보기입니다. 바로 직전의 시상식이었던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제임스 프랭코와 비슷하게 성희롱 및 성추행을 한 케이시 애플렉이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통해 수상을 했습니다. 두 시상식 간의 시간 차가 큰 것도 아니고 단 1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었는데 비슷한 죄를 저지른 케이시 애플렉은 상을 거머쥐었고 제임스 프랭코는 후보조차 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카데미가 '미투'운동을 전후로 평가의 잣대를 달리하고 있다고 느낄 여지가 있습니다. 단지 시상식 뿐만 아니라 영화를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 생각해보는 주제, 예술가는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하냐 혹은 예술가의 도덕성까지 평가받아야 하냐는 주제에 있어서 아카데미는 지금까지 '작품으로 평가하는' 방향에 조금 더 비중이 있어 보였으니 말이죠. 가장 쉬운 예로 오래전부터 문제를 달고 삼던 우디 앨런도 꾸준하게 아카데미 후보 및 수상자로 얼굴을 비춰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보는 변화의 조짐일 수도 있습니다. '미투'운동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된 이유는 이렇게까지 여성 영화인들이 목소리를 내어 지금의 상황에 대해 고발한 적이 없었고 할리우드가 어쩌면 처음으로 여성 영화인들의 상황에 집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투'운동은 일부 인물들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할리우드 전반에 대한 고발이다 싶을 정도로 그 규모와 범위가 넓은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도 이에 경각심을 느끼고 지금의 상황을 고쳐보고자 수상의 잣대까지 바꾼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아카데미의 후보 선정은 이 두 가지 해석의 가운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러한 변화가 보인 지 처음인 만큼 어느 쪽으로든 섣부르게 해석하는 것은 이르겠죠.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의 향후 행보가 더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미투'운동에 눈치를 보고 단발적으로 끝날 일종의 이벤트가 될지, 아니면 할리우드 내 윤리적 잣대를 강화할 변화의 노력일지는 내년, 내후년, 그리고 그 앞으로의 시상식들의 후보가 어떻게 선정되느냐에서 그 결과가 보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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