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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Dec 11. 2018

[영화 리뷰] - <스탠바이, 웬디>

소소한 일탈의 힘있는 확장

  여행 중 기내에서 본 올 해 개봉작 두 번째다. 국내에 올 5월 개봉했으니 역시 개봉하고 반년만에 본 셈. <스탠바이, 웬디>는 만드는 이 입장에서는 쉽다면 쉬운 드라마고 그렇기에 어려운 영화였을 것이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한 소녀가 일종의 일탈을 감행한다는 드라마는 익숙한 구조의 이야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공감을 살 수 있으며 긍정적인 이야기의 방향 덕분에 큰 거부감이 없는 이야기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만큼 관객들에게는 숱하게 접한 이야기이고 이 영화만의 강점을 제시하지 않으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영화라는 뜻도 된다. <스탠바이, 웬디>는 캐릭터에 대해 깊이 파고듦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비록 서사적으로는 아쉬운 감이 없지 않지만 웬디[다코타 패닝 분]를 공감시키는 데는 성공시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는 자폐성 소녀 웬디가 [스타 트렉] 공모전 각본을 제출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여행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로드 무비이다. 그 과정을 논리의 이야기로 살펴보면 구멍이 은근히 많다. 우연히 만난 노인의 도움으로 일정 거리를 이동하는 것, 그 노인의 도움으로 탄 차의 운전자가 졸음 운전을 해 병원 신세를 지는 것, 병원에서 탈출해 대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다 인쇄/복사소를 발견한 것 등 우연에 기대어 전개되는 양상이 있으며 여행 과정을 그리는 데 있어서도 디테일하게 그려내지는 않는다. 하나의 로드 무비로만 본다면 분명 아쉽게 다가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공백을 웬디의 세계로 관객과 주변 인물들을 끌어들이며 메꿔낸다. 일종의 거리감을 두고 관리 대상으로만 웬디를 바라보던 주변 인물들에게 웬디의 노력이 담긴 [스타 트렉] 공모전 대본이 조금씩 읽혀가며 이해할 수 없는 웬디를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주변 인물들에게 주어지는 이입의 과정이라면 관객들에게는 웬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작은 세상에 갇혀 누군가에겐 일상적인 개념과 행동을 거대하게 확장하고 그 벽을 넘어서는 데 있어서 느껴지는 소소한 쾌감을 관객들에게 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후반부, 목적지까지 도움을 받아 이동하면서도 웬디를 혼자 들어가게 하는 시퀀스는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을 모두 보여준 장면이라 생각된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면에 대한 강조에서부터 목적지 내부를 돌아다니는 모습과 그 이후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까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기발한 방법을 떠올릴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웬디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용기를 보여주고 웬디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는 웬디를 압박하기보단 이해해주길 바라고 있다. 후자의 대목은 조연으로 등장한 경찰관만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는 대다수의 컷들이 웬디에게 근접해서 촬영됐으며 원경으로 촬영된 컷이 있다면 웬디를 작게 만드는 컷들이 많았다. 거대한 세상을 탐험하는, 어쩌면 작고 힘없는 존재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는 것을 인물에 집중함으로써 보여주었다. 리뷰 내내 언급하진 않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를 혼자서 이끌어갈 만큼 다코타 패닝의 연기도 아주 좋은 편이었다. 비록 앞서 적은대로 단점이 없는 영화라고 하긴 어렵지만 영화가 우선적으로 정한 목표를 성공적으로 전달했다는 점에서는 아주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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