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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Dec 15. 2018

[영화 리뷰] - <성난 황소>

예열한 시간에 비하면 심심한 쾌감

  우스개소리로 한국에도 MCU가 있다고 한다.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준말로 최근 여러 편의 영화에서 비슷한 캐릭터(주로 근육질 액션스타와 적당히 코믹한 캐릭터, 혹은 둘 다)로 활약한 모습을 보고 붙인 농담 아닌 농담이다. 3~4년에 걸쳐서 여러 작품을 촬영했다고 하지만 개봉 시기가 근접하게 겹치면서 급속도로 이미지 소모를 하게 됐고 거기에 영화의 만듦새 역시 괜찮지 못한 악재가 겹치면서 마동석에 대한 대중의 호감에 조금의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점에서 <성난 황소>는 꽤 기대가 많이 됐던 영화였다. 전형적인 근육질 액션 히어로로서 마동석이 등장할 것이 뻔했지만 <범죄도시>가 그랬던 것처럼 아예 장르적으로 정면돌파를 감행할 영화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도시>와는 다르게 이 영화가 선사하는 쾌감은 미지근한 편이었다.

  우선 예열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정통적인 액션 영화를 표방하는 작품들은 주로 메인 스토리라인을 간략하게 만들어 둔다. 복잡한 서브 플롯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직관적인 메인 플롯을 세우고 이를 물리적 갈등으로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존 윅>에서 암살자의 세계는 복잡하고 넓지만 관객들은 가족의 흔적을 잃은 주인공의 복수를 보고 <레이드> 역시 경찰과 범죄 조직간의 이해 관계가 개입하고 형제 관계가 변수로 제공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관객들은 살아남으려는 주인공의 직진을 본다. <성난 황소>도 컨셉 면에서는 이에 따라가긴 한다. 물질만능주의에 대해 악역을 통해 슬쩍 질문을 건내지만 결국 이 영화는 아내를 납치당한 힘 좋은 남자의 구출기이다.

  그런데 그 구조가 확립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영화 내에서 너무나도 오래 걸린다. 동철[마동석 분]의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건 지수[송지효 분]의 납치 이후인데 그 이전까지 이 캐릭터를 짐작할만한 단서조차 없고 이 영화의 톤앤매너를 짐작할만한 흔덕도 없다.(그저 마동석이기 때문에 괜찮은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엑셀 꾹 밟고 전력질주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엑셀을 밟기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오해 걸렸다고 느껴졌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전하는 쾌감이 그렇게까지 크지도 않은 편이다. 일단 합의 구성 자체는 분명 박력이 넘친다. 주먹을 휘두르거나 누군가를 잡아 던지는 단순한 액션에 비해 리액션은 한 방에 기절하거나 날아가 캐비넷 문을 그대로 부숴버리고 철 펜스를 그대로 무너뜨리는 등 상당히 과장돼있다. 분명 비현실적이지만 마동석의 힘을 잘 살린, 좋은 과장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시퀀스의 구성까지 단순화해버린다. 잘 만든 액션 영화들을 보면 액션 씬 안에서도 나름대로의 기승전결을 만들고 액션 자체를 하나의 이야기처럼 다룬다. 그러나 <성난 황소>는 단순한 합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초반부의 사무실이나 불법도박장에서으ㅡ 액션이야 동철의 힘을 과시하는 시퀀스이니 그래야 하고 그것이 효과적인 연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으로 달할수록 액션 안에서도 동철에게 브레이크를 서는 큰 적이 나타나야 하고 실제로 두 명이나 나온다. 하지만 영화 안에서 그 강력한 적들이 제압당하는 과정은 상당히 단조롭다. 단순히 몇 합으로 동철을 밀어붙이다 제압당한다. 그들이 과하는 물리적인 타격에 비해 영화 내적으로는 굉장히 간단하게 제압당하는 느낌을 줘 액션 시퀀스의 긴장감이 상당히 떨어진다.

  또 하나, 이 영화에선 공간의 활용이 많이 아쉽다. 이 역시 초반부 액션 씬들에서는 주변 기물이나 구조 등 공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반면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단순한 타격, 그리고 그 후 쓰러지는 리액션으로 반복된다. 특히 마지막 액션의 무대가 되는 폐 모텔은 실험해볼만한 여지가 많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넓은 방 하나와 복도(오직 복도)에서 단순한 액션과 리액션으로만 채운 건 많이 아쉽지 않나 싶다.

  이야기적으로 부실하거나 말이 과하게 많더라도 액션만 잘 나왔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였다. 실제로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액션이 나오기 시작하는 중반까진 그랬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액션에서 실패했다. 장르적인 재미를 잃어버린 장르 영화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다고 봐고 무방하다. 그렇기에 액션에서의 실패는 곧 이 영화의 실패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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