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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Dec 15. 2018

[영화 리뷰] - <국가부도의 날>

중요한 주제를 다룬다고 꼭 좋은 영화인 건 아니니

  IMF로 지칭되는 90년대 후반 경제 위기. 한국 현대사를 논하는 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시기이다. 하지만 여타 다른 사건과 시기들과는 다르게 영화 안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진 적이 없는 시기이기도 하다. 일단 발단이 철저히 경제적인 개념으로 인한 것이라 대중 문화로서의 접근성이 그리 뛰어나지 못하고 이를 극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부도의 날>은 이 소재에 발을 디딘것만으로도 큰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그 의의에만 만족하기에는 하나의 영화로 봤을 때 아쉬움이 묻어난다.

  영화는 분리된 세 이야기로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당시의 상황에 가장 먼저 부딪치는 한시현[김혜수 분], 실제 생활로서 부딪치는 갑수[허준호 분],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윤정학[유아인 분]. 이 세 그룹을 통해 영화는 직관적이되 나름대로 다양한 시선으로 당시 상황에 접근하려고 한다. 나름대로 이 세 시선을 잘 활용하는 장면들도 있는데 영화 초반, 지금 상황의 원인이 되는 어음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해 설명할 때 벌어지는 교차편집이 그 예시다.

  하지만 이러한 활용과 별개로 영화는 설명보다는 감정에 과하게 집중한다. 초반의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영화에서 등장하는 경제적인 개념들은 충돌적인 요소로서 등장한다. 차관[조우진 분]을 비롯한 윗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리에 대해 시현이 반대를 하고 이에 대해 부딪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차관을 명백한 악인으로 캐릭터라이징을 해놓았기 때문에 극적인 충돌 장치로서만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 관객들에게는 당연히, 악역의 주장에 반대하는 시현에게 이입을 하게 되고 그것이 실패하면서 오는 분노에 더 집중하게 된다. 물론 그게 실제 사건에서도 맞을 수도 있다. IMF 사태 자체가 정부의 실수가 연속되어 벌어진 사태이니. 하지만 이 영화는 이 요소를 감정에 우선하여 처리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또한 이야기를 3등분해 전개하는 세 구조에도 아쉬운 점이 보인다. 갑수의 이야기는 이론으로서 벌어지는 시현의 이야기를 현실화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주고 받는 상관관계가 있다면 윤정학의 이야기는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전자의 둘이 시스템 안에서의 문제 해결(갑수의 경우 순응)을 논하지만 정학은 유일하게 시스템을 역이용하는 이야기하게 된다. 내용 자체가 갖는 다른 이야기들과의 간극은 그럭저럭 넘어갈만하다 쳐도 영화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튀어버린다. 한 쪽은 생사를 건 이야기인 반면 이쪽은 비교적 여유가 있다. 영화도 이를 의식하는 지 꾸준히 연결고리를 이어보려 하거나(정 사장[정규수 분]의 죽음 등) 정학에게 일종의 죄책감을 심어주려 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을 보면 결국 정학의 핵심 태도는 속지 않고 역이용하는 태도이다. 그렇다보니 개인의 캐릭터 서사로 보면 괜찮은 요소들이 하나의 영화로 묶었을 때 튀는 부분이 되어버린다. 영화를 보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더 궁금한 쪽은 정학의 이야기인데 영화의 중심 서사는 그 반대쪽이 있으니 어느 한 쪽의 이야기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이야기의 균형이 어그러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정학의 캐릭터가 이미 시도되지 않은 캐릭터인 것은 아니다. 이미 정학같은 캐릭터로만 꽉 채워서 똑같이 경제 위기를 다룬 애덤 맥케이 감독의 <빅 쇼트>가 있다. 큰 차이점이 있다면 <빅 쇼트>는 이 상황을 역이용하는 캐릭터 넷을 통해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시종일관 유쾌하다가도 결국 이 인물들이 마지막에 직면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꽤 씁쓸해 보인다. 똑같이 다양한 캐릭터로 다양한 그림을 그려내지만 영화 하나로서 갖는 완결성을 지켜낸 것이다. 하지만 <국가부도의 날>에서는 이야기간에 일종의 일관성이나 완결성이 조금은 부족하지 않나 싶다.

  한 마디 더 하자면 엔딩도 사족이 너무 붙은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도 영화는 나름대로 그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로서 잘 마무리한다. 시현과 갑수가 조우하는 장면에서 이론은 현실이 되었고 나름대로 상황을 잘 정리한 자막으로 큰 막을 내렸다. 하지만 현대 시퀀스들은 내용적으로 필요할지라도 영화적으로 가장 튀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감정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베어있던 영화는 마지막에 들어서 관객을 가르치려 한다. 영화의 일관성이 가장 크게 깨지는 부분이다. 만약 엔딩처럼 냉철하게 상황을 보고 싶었다면 영화의 본편을 감정적으로 몰아가선 안 되었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현재를 끌어들이는 순간 계몽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긴 하지만 영화는 그 거리를 두는 데 있어서 조금은 실패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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