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신익 Jan 20. 2019

[영화 리뷰] - <언니>

이야기적으로는 선을 넘고 장르적으론 미치지 못한

  한국은 비교적 장르 영화가 약한 국가이다. 상대적으로 좁은 타겟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저예산으로 제작된다 하더라도 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한국에서는 이 또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할리우드에서는 양산되다싶이 나오는 공포 영화나 과거의 제이슨 스타뎀, 드웨인 존슨을 떠올리면 쉽게 연상되는 중소규모 액션 영화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장르 영화가 나오면 꼭 관람을 하려는 편이다. <언니>는 특히 마동석이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는 중소규모 액션/스릴러 영화판에 등장한 여성 영화라는 점에서 더더욱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의의에서 그친다. 오히려 영화 내용적으로 파고들면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을 남용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언급할 첫 번째 문제점은 영화의 이야기 전달 방식에 있다. 영화의 줄거리는 발달 장애가 있는 은혜[박세완 분]가 납치되자 전직 경호원인 언니 인애[이시영 분]가 이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애는 동생과 연관된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게 되는데 그 때마다 영화는 플래시 백으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플래시 백은 과거를 직접 보여주기에 쉽고 간단하며 분명한 설명 방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남용한다면 극의 템포를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그 늪에 빠져있다. 새로운 인물을 만날 때마다 플래시 백을 사용하고 심지어 같은 장면이 플래시 백으로 반복되기까지 한다. 인애의 분노에 맞춰 빠르게 템포를 올려도 모자랄 판에 영화는 스스로 브레이크를 계속해서 걸어댄다. 또한 플래시 백도 플래시 백이지만 인물을 거쳐가는 과정이 과도하게 반복적이다. 구조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인물 발견 - 무력으로 제압/고문 - 플래시 백 - 새로운 단서 발견 - 이동'인데 이 구조 역시 과도하게 반복된다.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인물들에게도 착실하게 이 법칙을 적용하니 영화는 짧은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느리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준다.

  더 큰 문제는 이야기 자체에도 있다. 인애의 격한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납치범들을 완전한 악인으로 캐릭터라이징한데. 은혜를 성폭행하는 건 물론이요 성매매 업소에 팔아넘기기까지 한다. 그 대상은 또래 학생부터 나이가 있는 주민들, 그리고 정치인까지 뻗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영화의 이야기가 갖는 가장 큰 문제가 드러난다.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은혜에 대한 캐릭터라이징이 크게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영화는 지속적으로 은혜를 폭력의 굴레 속으로 밀어 넣는다. 영화가 이미 은혜를 하나의 인물보다는 인애의 분노가 당위성을 갖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덕분에 반복되는 성적인 학대 속에서도 보는 입장에선 인애의 분노에 이입하기 보다는 그저 보기 불편한 영상으로밖에 느껴지지를 않는다. 또한 굳이 정치인 캐릭터를 대입한 것이나 경찰, 교사의 대처를 과하게 처리한 것 역시 의도적으로 이들에 대한 혐오감과 분노를 일으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나 마찬가지로 속 빈 강정의 느낌을 준다. 애초에 영화가 꽤나 자극적으로 내용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이 모두를 그저 액션을 위한 판으로밖에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 완전히 장르적으로 올인한 액션 영화의 경우 그런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래도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는 것이다. 당장 <존 윅>과 <레이드>, 한국의 경우 <짝패>나 마동석의 영화들에서 내용 자체가 불쾌감을 주는 영화는 없다. 이 영화는 그 선을 넘어버렸다.

  백 번 양보해서, 아니 천 번 양보해서 이야기는 그렇다 치자. 선을 넘어버린 이야기와는 다르게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작품이다. 단지 액션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그렇다. 일단 색보정을 무슨 생각으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화면의 중하단부분 전체가 누렇게 떠 있다. 날 것의 느낌을 주기 위해 연출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냥 화면의 아랫쪽 40%정도가 그렇게 보정이 되어 있으니 보기가 편하지만은 않았다. 촬영과 편집, 그리고 연출까지 연동된 문제도 상당히 많은데 일부 장면에서 필요 이상으로 컷을 쪼개놓은 점, 심지어 쪼개놓은 컷이 비슷한 앵글이라는 점, 차량 촬영 등에서 배속을 주어 편집한 장면들이 굉장히 어색하다는 점, 액션에서 배우들이 벌이는 합을 가리는 식으로 연출, 촬영된 구도 등. 총체적 난국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액션에 있어서도 아쉬운 점이 많이 보인다. 특히 합을 진행하는 방식을 보면 배우들이 상당히 고생했음이 눈에 보이는 액션 시퀀스이다. 일부 롱 테이크로 찍힌 시퀀스를 보면 여러 합을 이어나가는 배우들을 보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노력한 티가 역력히 난다. 하지만 이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이러한 느낌이 상당 부분 깎여나간 느낌이다.

  이런 영화가 뻔하다는 것은 더 이상의 비판거리나 변명이 되지 않는다. 약자를 구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대중 및 평단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 많다. <테이큰>은 직진하는 액션의 쾌감으로 리암 니슨을 액션 스타로 만들었고 <아저씨>는 한국 액션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 됐다. 단지 오락적으로 뿐만 아니라 작년 개봉한 <너는 여기에 없었다>는 캐릭터에 집중함으로써 평단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작품이 됐다. 풀어나가는 방식에 따라 분명 차별점이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어떤 차별점이나 극적인 원동력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저 기계적으로만 장면을 배치할 뿐인, 그러면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넘어버린 기이한 영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리뷰] - <아쿠아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