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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Jan 20. 2019

대한민국의 900만 관객대 영화들

  <보헤미안 랩소디>의 천만 관객 돌파가 살짝 불투명해졌습니다.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까지 누적 978만 관객을 돌파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1월 16일 기점으로 스크린도 많이 빠지고 일일 관객수도 1만 아래로 빠지면서 힘을 크게 잃었습니다. 애초에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흥행이지만 한국 영화에서 일종의 상징성을 갖는 천만의 문턱을 넘는 건 많이 힘들어보입니다. 이로써 <보헤미안 랩소디>는 대한민국의 다섯번째 900만 관객대 영화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아해 하실 분들이 계실겁니다. 900만 관객대의 영화가 단 다섯편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천만영화는 2003년 말 개봉한 <실미도> 이후 무려 스물 두 편이나 개봉했지만 그 바로 밑, 900만 관객대의 영화는 단 다섯편 뿐입니다. 아무래도 천만이 갖는 상징성이 강하고 이슈가 된 영화에 몰리는 성향이 강한 한국 시장이다 보니 '모두가 본 영화'라는 이름 하에 관객들이 몰리는 경향이 강했으며 배급사에서도 상영 막바지에 예매권, 1+1 할인 등의 이벤트로 밀어주며 천만을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그 천만의 대열에 아쉽게 들지 못한, 900만 관객대의 영화 다섯 편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과연 어떤 작품들이 최종 성적 900만 관객대에 머물렀을까요?


※모든 통계는 KOFIC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or.kr)의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1. 아이언맨 3


2013년 4월 25일 개봉


최종 관객 9,001,309명





  첫 번째로 소개할 영화는 정말 턱걸이로 900만 관객대에 진입한 역대 첫 번째 900만 관객대의 영화, 셰인 블랙 감독의 <아이언맨 3>입니다. 한국 영화계와 관객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천만에 굉장히 민감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인데요, 첫 번째로 900만 관객대를 돌파한 작품입니다만 불과 6년밖에 되지 않은 작품입니다. 그 이전까지 한국에는 무려 9편의 천만 영화(<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아바타>,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900만 관객대 영화는 처음이었던 것이죠.




  <아이언맨 3> 위에 있던 영화들이 시즌(여름, 명절, 연말 등)의 힘을 빌거나 전 세대층을 노리기 좋은 작품들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이언맨 3>의 900만 관객 스코어는 사실 천만이 아니어도 대단한 성적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아이언맨 3> 역시 여름 시즌의 포문을 여는 작품으로서 성수기에 임박해 개봉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마블이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던 페이즈 2의 첫 작품이며 그렇기에 많은 관객층을 확보하기 어려운 히어로 영화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약점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마블 세계관 내에서도 독보적인 인지도를 가진 '아이언맨'인 만큼 한국에서도 <아이언맨> 시리즈가 꾸준히 흥행했고 <어벤져스>의 흥행을 통해 다져놓은 한국 시장에서의 입지 덕을 제대로 보며 <아이언맨 3>는 9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2. 관상


2013년 9월 11일 개봉


최종 관객 9,134,586명





  두 번째는 2013년 추석을 노리고 나온 사극이자 역학 3부작의 첫 번째 작품, 한재림 감독의 <관상>입니다. 이번 글의 주제에 맞춰 봤을 때 2013 박스오피스가 재미있는 점은 처음으로 900만 관객대의 영화가 나온 해이자 동시에 세 편의 900만 관객대의 작품이 나온 해입니다. 가장 처음 등장한 영화가 앞서 소개한 <아이언맨 3>, 그 다음 등장한 영화는 이후 소개해드릴 영화이고요, 마지막으로 등장한 작품이 바로 <관상>입니다. <관상>은 전형적으로 명절을 노린 텐트폴 영화의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김혜수, 김의성, 조정석, 이종석 등 넓은 세대를 포괄하는 초호화 캐스팅과 어마어마한 흥행작은 없지만 <연애의 목적>과 <우아한 세계>로 실력을 인정받은 한재림 감독, 거기에 큰 세대폭의 관객을 아우를 수 있는 사극이란 장르까지. 한 해 전에 개봉한 <광해>를 연상시키며 많은 기대를 받았습니다.



  추석을 한 주 앞둔 9월 11일 개봉한 <관상>은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개봉 첫 주 주말에만 189만 관객을 돌파하고 누적 259만 관객을 돌파하며 빠르게 성적을 올렸습니다. 한 주 앞서 개봉해 관객들에게 입지를 다져놓은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어 추석이 낀 둘째주에는 주말 관객수가 상승하며 주말 220만 관객, 누적 687만 관객을 돌파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천만 영화의 흥행 기록이지만 여기서 변수가 발생합니다. 추석이 지나면서 주말 관객수가 무려 71%가 빠져버리며 흥행에 급제동이 걸려버립니다. 추석 시즌,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고 난 후 급하게 식어버린 시장의 분위기를 감당하지 못하며 이후에도 -54.7%, -58.7%, -78%의 주말관객 증감률을 기록하며 빠르게 관객을 잃었습니다. 덕분에 폭발적인 초반 흥행으로 천만을 예견했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영화는 913만 관객에 머무르며 상영을 마무리합니다.



3. 설국열차


2013년 8월 1일 개봉


최종 관객 9,349,991명





  세 번째는 2013년에 등장한 900만 관객대 작품 중 하나이자 봉준호 감독의 첫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입니다. 이 영화도 천만을 넘지 못한 것이 의외인 영화 중 하나입니다. 데뷔작이 큰 인상을 남기진 못했더라도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로 이어지는 2000년대 필모그래피는 한국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들로 남았으며 세 작품 순서대로 각각 525만 명, 1300만 명, 301만 명의 관객을 기록하는 등 대중과도 굉장히 친밀한 감독이었습니다. 그런 봉준호 감독이 수 년 동안 준비한 첫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인 만큼 관객들의 기대 역시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었습니다.



  <관상>과 마찬가지로 <설국열차>의 초반 흥행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오히려 <관상>을 상회하는 흥행을 보여주었는데요, 전야 개봉으로만 41만 관객을 모은 <설국열차>는 개봉 첫 날 관객수 당시 1위(약 60만 관객)를 기록했으며 첫 주 주말 관객만 226만 관객에 개봉 첫 주에 330만 관객을 기록하는 등 말도안되는 흥행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여름 시즌의 피크에 개봉한만큼 2주차에는 관객증감률 -29.5%로 선방하며 누적 645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덜미를 잡힌 것은 다크호스로 등장한 몇몇 장르 영화들이었습니다. 우선 <설국열차>와 동시에 개봉했고 <설국열차>보단 항상 저조했지만 호평을 기반으로 꾸준히 관객을 모은 <더 테러 라이브>가 있었습니다. 또한 여름 시즌이라는 점과 독특한 소재로 관객들에게 어필한 <숨바꼭질>과 <감기>가 <설국열차> 개봉 3주차에 등장해 상당수의 관객을 빼앗아 갔으며 이후 <나우 유 씨 미>까지 가세해 <설국열차>는 선두권 경쟁에서 멀어지는 것은 물론 주말 관객수가 30만 관객대까지 빠르게 떨어집니다. 개봉 4주차에 880만 관객을 넘기며 천만 가능성을 계산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짧게는 여름 시즌의 경쟁작들, 길게는 추석 대목을 노린 <스파이>, <관상> 등의 영화가 있어 천만의 꿈은 어두워진 상태였습니다.



  뒷심이 부족했던 이유는 관객들의 만족도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설국열차> 이전 봉준호 감독의 필모 중 가장 큰 흥행을 기록한 두 작품, <괴물>과 <살인의 추억>은 기존에 알던 장르를 비틀며(각각 스릴러와 괴수물) 그 사이사이에 한국 사회를 짚어내는 디테일, 그리고 그 지점에서 코미디와 패이소스를 오가는 탁월한 연출력으로 영화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일반 관객들에게도 어필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반면 <설국열차>는 사회에 대한 담론이 오가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배경이 배경인 만큼 주제 자체와 분위기가 어둡고 보편적인 편이며 그에 따라 '한국' 관객들에게 어필할 깨알같은 요소들이 전작에 비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단에게 극찬을 받는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만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4. 검사외전


2016년 2월 3일 개봉


최종 관객 9,707,158명






  네 번째 작품은 2016년 설날을 노리고 나온 코믹 범죄 영화, 이일형 감독의 <검사외전>입니다. 이 영화 역시 명절을 노린 영화라는 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신세계>로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 남기더니 <국제시장>, <베테랑>으로 두 편의 천만영화를 거느린데다 <히말라야>로 연이어 대박 터뜨려 한창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는 황정민을 필두로 군 전역 후 <군도>, <검은 사제들> 등으로 탄탄하게 필모를 쌓고 있던 슈퍼스타 강동원과 박성웅, 김홍파, 김병옥, 김응수, 주진모 등의 조연과 악역으론 당시 드라마 [미생]으로 눈도장 제대로 찍은 이성민까지. 튼튼한 배우진과 더불어 비록 데뷔작이지만 윤종빈(<비스티 보이즈>, <군도>), 강제규(<마이웨이>)의 밑에서 연출부, 조연출을 지내며 나름대로 업계의 검증을 받은 이일형 감독에 한국 관객에게 쉽게 어필할 수 있는 경/검찰과 범죄자를 다루는 코믹 범죄 영화였습니다. 무난하게 겉모습을 단장한 이 영화의 앞길은 탄탄대로였습니다. 관객들에게 무난하게 어필하는 영화라는 점도 있지만 당시 설날에 큰 경쟁작이 없었습니다.



  CJ는 한국 영화 없이 <쿵푸팬더3>만 배급해 가족 관객만을 노렸으며 롯데의 <로봇, 소리>는 <검사외전>보다 한 주 일찍 개봉했지만 미지근한 반응과 함께 빠르게 퇴장했습니다. 덕분에 경쟁작 없이 스크린을 몰아받은 <검사외전>은 개봉 첫 주 주말에 무려 73.8%의 매출액 점유율을 기록하며 주말 233만 관객, 누적 333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분좋은 출발을 알렸습니다. 그 다음 주, 월~수로 이어진 설 연휴와 무난하게 방어한 주말 성적으로 <검사외전>은 단 2주만에 808만 관객을 돌파합니다. 하지만 비슷하게 명절을 노린 <관상>과 마찬가지로 <검사외전>은 3주차부터 빠른 성적 하락을 겪게 됩니다. 한국 관객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형식을 바탕으로 한 <데드풀>이 매니아층 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어필하며 주말 100만 관객이 넘는 오프닝을 기록했고 그 다음주에는 위안부를 소재로 해 화제가 되었던 <귀향>이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설상가상으로 3주차에 개봉한 <주토피아>와 <동주>가 뛰어난 입소문을 바탕으로 4주차에 <검사외전>을 앞지르며 <검사외전>은 빠른 속도로 관객과 스크린 숫자를 빼앗깁니다. <검사외전>이 얼마나 시즌 덕을 봤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 바로 관객 증감률과 스크린 숫자인데요, 2주차까지만 해도 관객 증감률 -41.4%, 1649개의 스크린을 확보하던 이 영화가 3주차에는 각각 -66.8%의 증감률, 741개의 스크린, 4주차에는 -58.6%의 증감률, 485개의 스크린 숫자를 기록했습니다.



  <검사외전>은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영화들 중 평단의 반응이 가장 차가운 영화입니다. 대중의 반응도 킬링 타임 영화로서는 재미있다 정도인지라 관객이 몰리는 시즌이 지나자 열기가 빠르게 식었습니다. 특히 <관상>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점이 <관상>은 이후 시장이 전체적으로 푹 식었다면 <검사외전>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입니다. 신선함과 호평을 감안하더라도 청소년 관람불가인 <데드풀>이 오프닝으로 100만이 넘는 관객을 기록한 것이 그 증거죠. <귀향>도 개봉 주차에 주말 80만 관객을 넘겼습니다. 이로 미루어볼 때 <검사외전>은 시즌의 힘이 빠진 것과 더불어서 경쟁작과의 경쟁에서 밀렸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특히 <검사외전>이후 개봉한 <주토피아>, <동주>, <데드풀>은 각 작품의 강점을 인정받으며 흥행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작품들의 선전으로 인해 <검사외전>은 3~4주차에 빠르게 관객과 극장을 잃었고 그에 따라 천만의 문턱에서 상영을 종료하게 됩니다.


5. 보헤미안 랩소디


2018년 10월 31일 개봉


최종 관객 9,852,341명 (2019년 1월 19일 기준)






  다섯 번째는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이도 한 작품이자 장기 흥행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작품, <보헤미안 랩소디>입니다. 개봉 전 시사회에서 미적지근한 평가를 받았고 매니아틱할 것 같다는 전망 하에 <보헤미안 랩소디>는 당최 이렇게까지 큰 흥행을 할 것으로 예상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예상에는 퀸이 가진 문화적 파급력이 계산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퀸의 노래를 한 번도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광고나 타 문화 작품에서 꾸준히 등장한 퀸의 음악이기에 퀸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이질적인 매력을 한 번에 가진 영화였습니다. 덕분에 젊은 층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퀸의 세대였던 4~50대 이상의 관객층에게까지 효과적으로 어필하며 <보헤미안 랩소디>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작품들과는 다르게 <보헤미안 랩소디>는 첫 주 주말 관객이 고작 약 52만 관객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관객 반응을 바탕으로 개봉 4주차까지 주말 관객수를 늘려가는 기현상을 보여왔고 관객 증감률 역시 8주차에 이르러서야 -40%를 넘기는 등 흥행세를 길게 유지했습니다. 특히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바탕으로 흥행세를 이어온만큼, 어느 정도 성적 이후로는 천만의 가능성 역시 충분히 보였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연말 이후 개봉작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새해 들어 큰 폭으로 관객수가 감소하면서 그 가능성이 점차 옅어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부분은 하단의 포스팅 참고)


https://blog.naver.com/c2h1o4/221442217676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은 큰 의의를 갖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네 작품이 각각 명절과 여름 시장 등 시즌의 힘을 빌어 폭발적인 초반 흥행으로 치고 나가다 뒷심 부족으로 박스오피스 차트에서 빠르게 퇴장한 작품들이라면 <보헤미안 랩소디>는 10주차가 되도록 상위권 경쟁을 했던 작품입니다. 기본적인 흥행 양상과는 반대되는 방식으로 지금 이 성적을 기록한만큼 굳이 천만이라는 숫자에 얽메이지 않아도 충분히 큰 의미를 갖는 성적을 기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만을 돌파하지 못하더라도 크게 아쉬워할 필요가 없는 작품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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