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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Feb 10. 2019

[박스오피스] <극한직업> 천만 돌파 흐름 읽기

  <극한직업>이 개봉 15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명량>의 12일, <신과 함께 - 인과 연>의 14일에 뒤이어 역대 세 번째로 빠른 천만 돌파이며 속도 관계없이 순서로만 따지면 스물세 번째로 천만을 돌파한 것이 됐습니다. 사실 <극한직업>이 천만을 갈 거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많이 없을 것입니다. 속도 비교에서 언급된 <명량>이나 <신과 함께>의 경우에는 영화의 규모나 이슈(각각 이순신과 원작 웹툰), 그리고 시즌의 힘(각각 여름과 연말 성수기 시즌)을 받은 부분이 있지만 그에 반해 <극한직업>은 소규모의 코미디 영화인데다 성수기의 힘을 받긴 하지만 비교적 다른 성수기 시즌에 비해 뒷심이 크게 빠지는 명절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천만 영화들을 봤을 때 명절을 끼고 개봉해서 명절의 힘을 받았다고 봐도 될 영화들은 단 세 편(<7번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 <겨울왕국>) 뿐입니다.

  물론 영화가 재미있어서 입소문 타고 흥행을 한 건 당연히 맞습니다만 단순히 그렇게만 해석을 하기에는 15일이라는 속도가 말이 안 됩니다. 비슷하게 입소문 타고 흥행한 의외의 천만 영화, <7번방의 선물>도 천만 돌파까지 5주가 걸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흥행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비록 이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통계를 통해 이에 접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니

재미로 감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밑에 짧게 요약이 되어있으니 읽기 귀찮으시면 아래 세 문단은 스킵하셔도 됩니다.

  우선 연초의 한국 박스오피스 시장의 양상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 이후로 신작 유입이 거의 단절되고 급격하게 시장이 얼어붙는 미국과는 다르게 한국은 비교적 신작 유입도 활발한 편이고 시장도 그렇게까지 얼어붙는 편도 아닙니다. 연말에 개봉해 천만을 돌파한 영화만 <변호인>, <국제시장>, <신과 함께 - 죄와 벌>, <아바타> 등의 작품들 역시 연초까지 주말 100만 관객을 넘기는 등 활발하게 관객몰이를 했습니다. 굳이 천만을 돌파한 영화가 아니라도 <1987>, <히말라야>, <전우치> 등등 새해를 넘겨서도 주말 1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하는 작품들이 꽤 있으며 <과속스캔들>, <미션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마스터>, <용의자>, <헬로우 고스트> 등 주말 50만 이상을 동원하는 작품은 수두룩합니다. 시장 자체가 활발한 편이다 보니 연초에 개봉해 의외의 흥행을 기록하는 작품들도 종종 등장합니다. 2013년에는 <박수건달>이 380만 관객을 돌파했고 뒤이어 개봉한 <7번방의 선물>은 천만을 넘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품 유입도 기본적으로 활발한 편입니다.

  유입되는 작품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만합니다. 첫 번째는 밀린 외화가 개봉하는 경우입니다. 방학을 노리고 1월에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나 국내 인지도가 낮은 외화 영화들이 연초에 개봉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겨울왕국>, <코코>, <모아나>같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메가마인드>, <장화신은 고양이> 등 드림웍스 애니메이션도 단골이고 <너의 이름은.>은 2017년 새해 첫 개봉작 중 하나였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작품들 중에서는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일주일 늦었지만 크리스마스 시장을 피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등의 작품이 있습니다. 물론 <테이큰 3>나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와 같이 성수기 경쟁을 피해 미국 본토에 맞춰 1월에 동시개봉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주로 한국 영화에 해당하는 요인인데, 바로 설날입니다. 보통 1월 말에서 2월 중순 사이로 설 연휴가 잡히는데, 이 시즌을 노리고 개봉하는 텐트폴 영화가 반드시 등장합니다. 2018년에는 <조선명탐정 3>와 <골든 슬럼버>, <흥부>, <염력> 등의 작품이 있었고 2017년엔 <더 킹>과 <공조>, 2016년엔 <검사외전>, 2015년엔 <조선명탐정 2>와 <쎄시봉> 등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텐트폴 영화뿐만 아니라 텐트폴 영화를 피하려는 중소규모의 영화들이 연휴보다 훨씬 이르게 개봉해서 1월 초에도 작품 유입이 꽤 있는 편입니다. 올해도 <말모이>와 <내안의 그놈>이 있었고 작년엔 <그것만이 내 세상>, 2017년엔 <사랑하기 때문에>, 2016년엔 <그날의 분위기>, 2015년 <오늘의 연애>, <강남 1970>, 2014년 <플랜맨>, 2013년 <박수건달>, <7번방의 선물> 등 돌아보면 작품 자체의 규모가 크지 않은 작품도 종종 보였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연말 흥행작이 기본적으로 끌고 가고

2. 틈새시장 노린 중소규모 영화들 / 개봉 밀린 외화들이 뒤이어 개봉하며

3. 설날 노린 텐트폴 영화가 받는다.

이 양상에 맞춰 올해 초 박스오피스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주말입니다. 우선 미국에서 11월에 개봉한 <주먹왕 랄프 2>가 무난한 오프닝으로 데뷔합니다. 개봉이 밀린 애니메이션이니 딱 들어맞는 조건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주말 관객수 50만 이상을 동원하는 연말 개봉작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작년 연말에는 <스윙 키즈>, <마약왕>, <PMC: 더 벙커>를 비롯한 연말 텐트폴 영화들이 싸그리 망하면서 <아쿠아맨>과 <보헤미안 랩소디>가 수혜를 본 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장을 이끌어가는 연말 흥행작이 다 죽어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번째 주말, 중소규모 작품 두 개가 크게 수혜를 받습니다. <말모이>와 <내안의 그놈>인데요, 두 작품 각각 78만과 56만이라는, 준수한 오프닝 성적을 기록합니다. 따로도 아니고 두 작품이 같이 개봉해서 저렇게 성적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세 번째 주말은 <글래스>가 유입된 것만 제외하면 상위권 변동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말모이>와 <내안의 그놈>이 전주에 비해 각각 21.4%, 15.4%의 관객만 빠져나가면서 무난하게 성적을 올립니다. 여전히 관객은 꽤 많은데 신작 유입이 없습니다.

  그리고 설 연휴를 한 주 앞둔 네 번째 주말, <극한직업>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주목하실 부분은 <극한직업>을 제외한 작품들의 관객수와 관객수 증감률입니다. 비교적 고르게 흥행하던 지난 세 번의 주말과는 다르게 기존에 흥행하던 <말모이>, <내안의 그놈>의 관객수가 급감(각각의 관객수 증감률은 -69.6%, -81.7%)하고 <극한직업>에 관객이 다 몰려버립니다.

  앞서 정리한 양상에 대입하면 설 연휴를 노린 <극한직업>이 <말모이>와 <내안의 그놈>이 예열해놓은 시장 분위기를 그대로 받은 셈입니다.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흥행작 없이 적당히 예열된 시장에 관객 수용 범위가 넓은 영화가 하나 등장했고 심지어 그 영화가 관객 평가까지 좋으니 오프닝 성적은 기대했던 것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으로 나와버렸습니다.

  설 연휴로 이어지는 다섯 번째 주말에서는 오히려 주말 관객수가 소폭 증가합니다. <뺑반>보다 먼저 개봉해 입소문을 탄 것이 부른 효과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뺑반>을 배급한 쇼박스는 왜 <극한직업>보다 늦게 개봉하는 전략을 선택했을까요?

  쇼박스의 입장에서는 2016년 설날을 생각하며 그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대형 배급사별로 내놓은 설 연휴 텐트폴 영화들을 살펴보면 CJ는 <쿵푸팬더 3>를 수입해 상영하는 전략으로 직접 경쟁을 피했고 NEW가 <오빠 생각>을 연휴 두 주 전에, 롯데가 <로봇 소리>를 한 주 전에 개봉하고 쇼박스는 <검사외전>을 연휴 주말에 개봉을 시켰습니다. <오빠 생각>과 <로봇 소리>가 아쉬운 평가를 바탕으로 빠르게 퇴장하자 관객은 <검사외전>으로 몰렸습니다. 덕분에 <검사외전>은 당시 설날 시장을 독점하듯이 하며 폭발적인 흥행몰이에 성공합니다. 연휴가 시작되는 주말과 그 이후 주말까지 무려 800만 관객을 모은 <검사외전>은 관객 평가가 아쉬워 뒷심이 부족해 비교적 빠르게 퇴장하긴 합니다만 쇼박스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설날 공략이었습니다.

  쇼박스에게 <뺑반>은 2019년 버전의 <검사외전>이었을 것입니다. 2016년과 상황을 비교했을 때, 2019년 설에는 롯데가 <드래곤 길들이기 3>를 수입하며 직접 경쟁을 피했고, NEW는 이 경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CJ만 <극한직업>을 연휴 한 주 전에 개봉했습니다. 쇼박스는 <극한직업>이 <로봇 소리> 포지션(두 영화의 제작비도 거의 유사합니다), <드래곤 길들이기 3>가 <쿵푸팬더 3> 포지션, 그리고 <뺑반>이 <검사외전> 포지션을 맡으면서 2019년 설날을 공략할 의도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계획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니 바로 관객 평가입니다. <극한직업>이 관객 평가에서 뛰어난 반응을 얻어낸 반면 <뺑반>은 <검사외전>때보다 좋지 못한 관객 평가를 받아냅니다. 설상가상으로 <극한직업>이 한 주 먼저 개봉해 입소문을 퍼뜨린 후라 평가에 대한 비교는 더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뺑반>의 평가가 이렇게까지 나쁘지만 않았더라면 <더 킹>과 <공조>가 그랬던 것처럼 관객을 어느 정도 양분하는 구도까지는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실패했고 2019년 다섯 번째 주말 박스오피스에서는 <극한직업>이 <뺑반>의 주말 관객수의 약 5배가량을 동원하며 설 연휴 경쟁을 압도적으로 승리해버립니다.

  덕분에 설 연휴를 독점하는 작품은 <극한직업>이 되어버렸습니다. 연휴 중간에 <알리타: 배틀 앤젤>이 개봉하긴 했습니다만 이미 시장을 선점한 <극한직업>을 밀어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슬프게도 <뺑반>은 밀렸습니다.) 덕분에 <극한직업>은 2월 2일 토요일부터 2월 6일 수요일까지 이어지는 연휴 기간 동안 월요일의 97만 5,716명을 제외하면 모두 일일 관객수 100만을 넘기면서 연휴 마지막 날 천만 관객을 넘기게 됩니다.


세 줄 요약

1. 연말 얼어붙은 시장을 중소규모 영화들이 적당히 예열

2. 예열된 시장 분위기에 좋은 평가가 더해져 폭발적인 시작

3. <뺑반>과의 경쟁에서 압승

결과는 설 연휴 독식

  입소문으로 천만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영화들이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속도는 입소문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상 영화의 초반 흥행세는 입소문보다 마케팅과 이슈의 싸움이기에 <극한직업>의 천만이 단순하게 입소문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 생각해 이렇게 글을 써봤습니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가 나오기까지는 본문에도 언급했지만 기본적으로 영화가 재미있어야, 관객의 선택을 받을 만큼의 완성도를 갖춰야 가능합니다. 또한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라 이것이 꼭 정답이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이것 이외에 다른 요인들이 있을 수 있고 제가 쓴 요인이 생각보다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적당히 재미로만 봐주세요 재미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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