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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r 20. 2019

왜 넷플릭스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할까?

  며칠 전에 넷플릭스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집에서 영화보면 집중을 잘 하지 못해서 봤던 영화만 반복해서 보곤 했던지라 넷플릭스, 왓챠플레이 등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용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발을 디뎌보았습니다. 방대한 컨텐츠에 굳이 영화가 아니라도 드라마부터 예능까지, 장르적으로도 폭이 넓어 다양하게 보기 좋아 일단은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넷플릭스가 기성 영화계에서는 꽤 크게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최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넷플릭스 영화들은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에 덧붙여 "그들은 영화의 시상식인 아카데미가 아닌, TV를 대상으로 하는 에미나 그래미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뒤이어 넷플릭스는 올 5월 개최되는 제 72화 칸 국제 영화제에 출품을 거부하면서 2년 전부터 이어져오단 칸 영화제와의 갈등이 진행형임을 알렸습니다.


  넷플릭스가 영화만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만든 영화는 분명 영화입니다. 그러나 기성 영화계에 넷플릭스의 영화들은 100%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죠. 이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바라보면 기성 영화계의 밥그릇 지키기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에 대한 반대를 조금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볼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1940년대, 미국에서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TV로 인해 영화가 망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크게 휘청였던 영화는 영화만의 장점을 부각시키며 살아남았습니다. 영화 외적으로는 극장들이 더 뛰어난 시설을 들이며 TV로는 경험하기 어려운 관람 환경을 만들어냈으며, 영화 내적으로는 TV가 따라올 수 없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연구했습니다. 물론 상업적인 경쟁으로 번졌기에 결과적으로는 블록버스터 열풍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영화 내적인 연구는 향후 뉴 아메리칸 시네마로 이어지는 등 새로운 사조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상업적인 대결에서 시작됐지만 미국에서는 TV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화는 독자적인 길을 개척했습니다. 할리우드에서의 영화는 '극장 관람'을 중심으로 TV와 차별화를 두게 된 것이죠.


  그에 반해 유럽,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는 일찍이 영화가 예술로 자리잡았습니다. 최초의 영화가 탄생한 곳으로 1910년대, 자본을 바탕으로 유입된 미국 영화에 밀리자 영화를 예술로 바라보는 포토제니론을 시작으로 다양한 실험을 겪어가며 예술로서 영화가 자리잡게 됩니다. 그 이후 시적 리얼리즘이나 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조로 불리는 누벨바그까지, 프랑스에서는 영화의 예술적인 연구와 사조가 이어졌으며 이러한 영화적인 연구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다양한 사조를 낳게 됩니다. 유럽 역시 영화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게 된 셈입니다.


  과거 영화의 거대한 두 흐름인 미국과 유럽은 이렇게 영화만의 정체성을 확립해왔으며 그 바탕은 극장 상영을 전제로 함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부터 최근 화제가 되었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까지, 예술적인 가치로는 충분히 인정받는 영화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넷플릭스임에도 기성 영화계의 반발이 있는 이유는 바로 '극장 상영'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의 유통 방식은 인터넷 스트리밍이고 이 환경은 굳이 비교하자면 극장보단 TV에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만의 영역을 구축해온 과정을 중요시 하는 기성 영화인들에겐 넷플릭스는 영화가 아닌 셈이 되는 것이죠. 특히 영화를 예술로 일찍이 키워온 프랑스이기에 칸 영화제가 저런 반응을 내놓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영화를 산업으로 시작한 할리우드는 비교적 수용 속도가 빨라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는 이미 넷플릭스 영화를 수용하고 있죠. 칸 영화제가 넷플릭스 영화를 처음으로 배제하게 된 2018년의 경우를 봐도 칸 영화제는 넷플릭스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프랑스 내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을 칸 영화제의 대상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이 선언에서도 넷플릭스는 극장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넷플릭스에 대한 거부반응은 언젠가는 사그라들 것으로 보이며 그 시기는 생각보다 이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넷플릭스는 실력있는 감독들을 포섭해 그들에게 자유로운 활동 기반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에 많은 거장들이 이미 넷플릭스의 편이 되었고 그 결과물 역시 뛰어난 편입니다. 당장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그 예시죠. 그리고 미국의 골든 글로브나 아카데미 뿐만 아니라 베니스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논란은 있지만 넷플릭스 영화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 칸 영화제에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 맨> 초청을 두고 넷플릭스에 협상을 시도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극장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영화의 그 정통성은 절대로 무시받아선 안됩니다. 하지만 변화하는 관람 형식 앞에서 정통성만을 유일한 정체성으로 해석하는 닫힌 태도 역시 언젠가는 무너지리라고 생각합니다. 플랫폼과 관계 없이, 영화 감독들은 여전히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영화 팬들 역시 좋은 영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영화를 내느냐가 아닌, 얼마나 좋은 영화를 내느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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