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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Jul 28. 2019

[스포일러有] 가장 우울한 봉준호 영화의 엔딩

<기생충>의 결말에 대하여

  어느덧 개봉한지 두 달을 향해 가고 있는 <기생충>의 이야기를 이제서야 하는 것은 게으름 때문도 있지만 더 많이 생각해보고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도 있다. 사회의 어떤 현상을 영화로 압축하여 웃기면서도 씁쓸하게 풀어내는 방식은 봉준호 감독의 전형적인 특징이고 <기생충>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의외로 <기생충>은 가장 봉준호스럽지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관통하는 거대한 플롯(범인을 잡는 <살인의 추억>, 괴물을 잡는 <괴물>, 아들의 무죄를 증명하는 <마더> 등)이 사라지고 영화 중반 이후부터 해프닝으로 엮어가면서 플롯이 잘게 쪼개어진 느낌을 주는 것도,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시공간적으로, 특히 공간적으로 제한되어있다는 점도, 그리고 폭력을 노골적으로 전시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고 싶은 변화는 결말이다. 그래도 미래를 지향하던 봉준호 감독 영화의 엔딩들과는 다르게 <기생충>의 엔딩은 봉준호 감독 영화 사상 가장 우울한 엔딩이었다.



※본 포스팅은 봉준호 감독의 전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교를 위해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에서는 영화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를 살펴보자.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윤주[이성재 분]는 어쨌든 원하던 교수직을 얻었고 현남[배두나 분]은 해고당했지만 친구와 산을 오르며 희망적인 모습을 보이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살인의 추억>은 과거의 타임라인에 있던 사건을 현재로 끌어와 진행형으로 남겨두며 마무리한다. <괴물>은 현서[고아성 분]를 구하진 못했지만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며 <마더>의 엄마[김혜자 분]는 일종의 죄책감과 함께, 어쨌든 세상으로 나아간다. <설국열차>는 결국 열차 밖으로 나갔으며 <옥자>의 미자[안서현 분] 역시 모두를 구하진 못했지만 옥자와 또 다른 새끼 돼지를 구출해낸다. 특히 <옥자>의 경우 쿠키 영상을 활용하면서까지 이 사태에 맞설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 방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봉준호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앞으로의 삶을 향해 나아갔다. 그것이 봉준호 감독의 엔딩이었고 일종의 소소한 안도감을 주기도, 관객들에게 지금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어쨌든 인물들은 이 일련의 사건을 겪었고 달라진 모습이지만 그들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미래 지향적으로 항상 영화를 마무리했다.


  <기생충>은 다르다. 얼핏 보기엔 <괴물>이나 <옥자>의 엔딩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많은 것들이 변화하지만 영화 초반과 유사한 형태로 마무리가 되는, 결국 그들의 일상으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지만 영화가 마무리되기 직전에 보이는 것에서 아주 큰 차이가 있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 영화에서 드물게 인물의 상상이 영상화되어 극에 개입한다. 기우[최우식 분]가 큰돈을 벌어 박 사장[이선균 분]의 집을 사들여 기택[송강호 분]을 기생충 신세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편지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영화는 이내 현실로 회귀한다. 상상을 깨고 돌아온 현실에서 그 상상을 곱씹어 보자. '돈을 많이 벌겠다'라는 근본적인 계획은 과연 실현 가능한 계획인가. 그 계획으로 인해 기우의 삶이 풍요로워질 가능성이 기우가 기택의 삶을 답습할 가능성보다 더 클까. 애초에 이 상상이 담긴 편지는 기택에게 전달조차 할 수가 없는 편지, 그러니까 애초에 실현 가능성이 없음을 형식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결국 <기생충>의 결말은 굳이 기분 좋은 상상까지 넣고 깨가며 현실로 돌아와버리는 영화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앞으로의 삶보다는 지금에 충실하다. 아주 부정적인 의미로.

  <기생충>의 결말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건 당연히 결말의 구조 자체 때문이지만 조금 더 확장하여 영화 전체의 구조와도 연결 지어서도 생각해볼 만하다. 전작들은 주인공에게 큰 시련을 먼저 던져놓고 이 상황을 수습해나가는 과정이 그려지는 구조였다. 강아지 실종사건(<플란다스의 개>), 살인사건(<살인의 추억>), 괴물에게 납치된 딸(<괴물>), 살인 용의자가 된 아들(<마더>), 혁명(<설국열차>), 서울로 떠난 옥자(<옥자>)는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먼저 감정적으로 급격한 하강을 준 후 서서히 회복해나가는 영화였다. 보통 영화 막판에 급격한 하강을 한 번 더 겪지만 어떻게든 다시 상승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기생충>은 상승이 먼저 제시된다. 그리고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본격적으로 하강이 시작되고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기우의 상상으로나마 조금의 상승이 이뤄지지만 그 상상이 깨지면서 하강하게 된다. 기존의 작품들과 정 반대의 구조를 가진 영화인만큼 영화의 마무리가 주는 느낌 역시 반대가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기생충>은 지난 10년간의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일종의 결론 같은 모습을 보인다. <설국열차>가 보편적인 계급의 갈등을 보여주었다면 <옥자>는 그 계급을 발생시킨 자본주의를 경험하게 해준다. 미자는 거래를 했고 시스템에 눈을 떴다. 그렇게 두 작품을 통해 계급에 대해 탐구한 봉준호 감독이 내린 결론은 <기생충>에서 보인, 계급의 불가항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생충>은, 어쩌면 처음부터 결말이 긍정적으로 나올 수가 없는 영화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봉준호 감독이 이 주제에 대해 조금 더 탐구한다면 아마 <기생충>보다 더 암울한 엔딩을 선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아닐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 영화에서 큰 변곡점이 되는 영화이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가장 우울하게 결말을 지은 영화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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