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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Aug 05. 2019

<나랏말싸미>, 대중적 공감을 얻기 어려운 이유

이야기 구조를 중심으로 (스포일러有)

  7월 24일 개봉한 <나랏말싸미>는 2019년 여름 시장 강자로 예측되었던 텐트폴 영화였다. 송강호와 박해일, 국내 정상급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얻는 신뢰감과 마케팅 효과와 더불어 한국인이 꼽는 조선시대 최고의 왕 세종과 그의 최고 업적 한글 창제를 소재로 삼기 때문이다. 이미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이 한글 창제를 다룬 창작물이 있긴 했지만 그 빈도수는 상당히 낮았고 언급한 [뿌리 깊은 나무] 역시 팩션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다. 여러모로 흥행하기 좋은 조건들을 많이 갖춘 영화였다. 영화 자체도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은, 꽤나 괜찮은 완성도의 영화라 생각한다. 이게 한글 창제의 이야기만 아니라면.


※본 포스팅은 영화 <나랏말싸미>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역사 학계에서는 한글 창제를 세종대왕의 단독 업적이거나 집현전 학자들과의 단체 업적 둘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어쨌든 세종대왕의 업적임을 중심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 국민들에게까지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가 주장하는, 신미의 한글 창제 개입 설은 한때 실제로 주장되었던 설이지만 해당 가설의 주요 근거인 불교 서적 [원각선종석보]가 위서로 밝혀지면서 반박된 가설이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에서는 허구가 용인된다. 비록 <나랏말싸미>가 내세운 가설은 용인되기 어려운 허구이긴 하지만 분명 영화 내적으로 고민한다면 영화 안에서의 허구로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나랏말싸미>가 가져가는 이야기의 구조는 자칫 잘못하면 보는 이로 하여금 오해를 유발하기 좋은 구조였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결과는? 100만 관객도 넘기지 못한 채 상영 종료를 앞두고 있다. 그럼 <나랏말싸미>의 오해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우선 <나랏말싸미>의 이야기를 한 번 살펴보자. 영화는 세종[송강호 분]이 신미[박해일 분]를 만나 한글을 창제하는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다룬다. 이 이야기를 영화 시나리오 작법의 일반적 방법인 '3막 8장'으로 나눠보자. 우선 3막 8장은 '시작 - 중간 - 결말'의 3막으로 구성하며 세부적으로는 시작에 1, 2장을, 중간에 3~6장을, 결말에 7, 8장을 배치하는 것이다. 각 장의 역할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1장 - 인물과 배경 설명

2장 - 사건 제시

3장 - 주인공의 노력 시작

4장 - 큰 시련의 등장

5장 - 시련으로 인한 좌절, 목표 재설정

6장 - 2차 시련, 주인공의 각성

7장 - 갈등에 직접 맞섬

8장 - 갈등 해소


  물론 이 3막 8장의 구조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일 뿐이고 이를 깬 서사 구조를 만들어 걸작으로 평가받는 영화들도 많기 때문이다.(<라쇼몽>, <메멘토> 등) 하지만 시간 순의 선형적인 서사를 취하는 <나랏말싸미>와 같은 경우라면 이 구조에 한 번 대입을 하면서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1장 - 인물과 배경 설명

이도와 신미, 당시 조선의 상황


2장 - 사건 제시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야 한다


3장 - 주인공의 노력 시작

이도와 신미가 협력


4장 - 큰 시련의 등장

문자 제작 자체의 어려움


5장 - 시련으로 인한 좌절, 목표 재설정

이를 둔 이도와 신미의 갈등, 그 갈등의 해결(문자 완성)


6장 - 2차 시련, 주인공의 각성

반포에 대한 정치적 갈등


7장 - 갈등에 직접 맞섬

반포에 대한 합의


8장 - 갈등 해소

훈민정음 반포


  이 구조에서 보이듯이 영화는 후반부에 다다를 때까지 글자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이끌어간다. 분명 글자 제작 자체에서 나오는 어려움도 하나의 갈등이긴 하지만 후반부 등장하는 정치적 갈등에 비하면 원동력이 약하다. 그렇다면 보는 입장에서는 이 갈등을 단순히 영화적, 극적 갈등이 아니라 정보로 오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 위주의 이야기로 영화의 약 75%를 채워 넣은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마치 이 영화가 허구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이 아니라 실제 사실을 정보로서 전달하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가 좋다. 물론 영화에서 보이는 문제 제작의 과학적 어려움은 실제로 겪었을 법한 고민이라 보인다. 그만큼 문자 자체에 집중하기 좋은 이야기 구조이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왜곡된 인물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도 좋은 구조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왜곡된 사실 자체도 보편적인 상식 수준인데 이야기 구조마저 이를 사실인 듯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허구가 허구로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정말 상식적인 수준의 지식을 허구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 파급력은 더더욱 크다. 분명히 이를 피해 갈 방법은 충분히 있다. 당장 세종대왕만큼이나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조선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서도 고증 오류는 빈번하게 일어나니까. <천군>은 이순신 장군[박중훈 분]이 원래는 망나니(?)였다는 설정을 가지고 가고 <명량: 회오리 바다>(이하 <명량>)는 명량 해전을 다루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역사적 고증의 오류가 일어났다. 두 영화 모두 완성도에 대한 아쉬운 평가는 많지만 적어도 고증 오류로 인한 논란, 그로 인한 전 국민적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진 않았다. 두 영화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왜곡하지는 않았고(<명량> : 명량해전 승리) 허구를 충분히 허구로 묘사하였다(<천군> : 시간 여행으로 인한 허구성). 하지만 <나랏말싸미>는 가장 중요한 사실(한글의 창제자)을 사실처럼 묘사하는 구조를 보였고 그렇기 때문에 '한글 창제의 여러 가설 중 하나를 채택했다'는 자막으로 영화를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허구를 설득하지 못한, 대중적으로 공감을 얻기 어려운 영화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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