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원동력을 가졌지만 방향이 아쉬운
7월 24일 <나랏말싸미>를 시작으로 여름 성수기를 노린 텐트폴 영화들이 하나 둘씩 공개되기 시작했다. 논란과 함께 빠르게 퇴장한 <나랏말싸미>와는 다르게 같은 날 동시에 공개된 <엑시트>와 <사자>는 안정적으로 차트에 자리하며 관객몰이를 시작했다. 구마의식과 이종격투기를 결합한 <사자>는 장르적으로도 공포와 액션이 합쳐진 독특한 모습을 한 영화다. 박서준, 우도환을 내세운데다 공포 영화 자체의 공급이 적어 젊은 관객층의 관심을 끌면서도 액션과 드라마에도 비중을 두어 어느 정도의 관객층 확장까지 한, 기획의 측면에서는 괜찮은 영화다. 영화 자체적으로도 꽤나 인상적인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매력적인 설정으로 쌓아올린 세계관이 눈에 띄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가 잡은 방향은 조금 아쉬움이 느껴진다.
<사자>의 재미는 앞서 언급했듯 구마 의식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있다.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소재이기 때문도 있지만 과하게 파고들지 않으면서도 보는 입장에서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적당한 깊이감을 가지고 쌓아 올린다. 그러면서도 구마 의식이란 소재를 정통적으로 다룬 <검은 사제들>과는 다르게 적당히 판타지스러운 요소들(검은 주교[우도환 분]라는 영화의 악역부터)을 넣어 세계관을 확장할 여지도 남겨놓는다.(그리고 영화가 끝나고서는 확장할 의지까지 보여준다.) 주인공이 격투기 선수라는 설정 역시 설정 자체로는 장점이다. 깊이감을 포기한 대신 액션으로 시각적인 쾌감을 선사할 수 있기에 여름 텐트폴 영화로서는 괜찮은 기획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기획적인 측면으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액션 씬들이 액션 자체로서도 그렇지만 CG와의 결합도 자연스러워 보는 맛인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용후[박서준 분]라는 캐릭터가 갖는 딜레마에서 영화의 이야기가 갖는 원동력이 상당히 강하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에 대한, 이 뻔하디 뻔한 질문에 종교적인 색채와 폭력이 정당하게 인정되는 주인공의 직업,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주인공의 전사와 맞물려 괜찮은 딜레마를 형성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 좋은 동력을 가지고 풀어나가는 방식에서 아쉬움을 보인다. 우선 설명적인 장면은 과하게 설명적인 데 반해 나머지 부분들은 생략된 지점이 많다. 설명적인 부분은 영화의 초반부, 용후의 전사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영화 초반 대부분의 시간을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데, 평이한 드라마로 그저 이야기를 말해주기 급급하다. 이 부분은 그래도 캐릭터를 설명하는 시퀀스이니 나름대로 필요가 있다고 치자. 그 이후의 서사는 급한 감이 없지 않다. 구조 자체도 굉장히 단순한데('구마 의식 - 해결 - 새로운 구마 의식 - 해결'의 반복) 그 사이사이의 인과를 크게 설명하지 않는다. 구마 의식에 대한 매력적인 시각적 연출이 보는 재미는 충분히 보장하지만 하나의 이야기로서 이 영화에 대한 설득력이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은 용후의 딜레마가 많이 희석된다는 점이다. 용후라는 캐릭터가 하는 고민과 의심, 심지어 안 신부[안성기 분]에게까지 의심이 향하는 등 괜찮은 고민거리를 제시하지만 이 부분을 아주 쉽게 넘어가버린다. 결국 이 영화는 구마 의식을 행하는 세계관은 납득시키지만 구마 의식으로 향하는 과정을 납득시키지 못한다. 마지막 대결에서도 충분히 그 부분을 강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액션으로 넘어가기에 급급하다. 물론 전적으로 이 영화는 오락 영화고 만드는 입장에서도 그 부분에 집중을 하려는 의도겠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설득은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세계관과 캐릭터라는, 좋은 동력을 가진 영화이지만 이 영화가 잡은 방향은 그 동력을 상당 부분 죽이는 방향이 아니었나 싶다.
<신과 함께> 시리즈의 성공 등, 언제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시도는 환영한다. 이런 영화들이 성공해야 한국 영화도 프랜차이즈화가 더 자연스러워지고 다른 도전들에도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 점에서 <사자>는 의미 있는 포인트가 꽤 많은 영화다. 구마 의식을 오락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시도와 이 영화의 기획 방향, 그리고 기본적으로 잡힌 틀은 분명 인상적이다. 하지만 좋은 각본과 기획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진다 해도 이를 어떻게 배합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영화가 연출 놀음이라 불리는 이유도 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사자>를 꽤나 괜찮은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바라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