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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Aug 03. 2019

[영화 리뷰] - <엑시트>

현실적이고 소시민적인 재난 상황의 해석

  한국에서 재난 영화는 그리 흔한 장르가 아니다. 재난 영화로 구분하기 애매하지만 2000년 개봉한 <싸이렌>을 시작점으로 잡는다면 꽤 오래된 장르이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규모 재난이 스크린에 구현된 것은 불과 10년 전인 2009년 <해운대>가 처음이다. 그 이후 인재 <판도라>, <부산행>, <연가시> 등 타 장르와 결합하여 여러 형태로 등장하긴 했지만 여전히 자주 볼 수 있는 장르는 아니었다. <엑시트> 역시 정통적인 재난 영화라고 보기 어렵다. 코미디의 색채를 강하게 두른 영화이지만 그 코미디의 기원이 되는, 아주 짠내나고 현실적인 상황의 해석이 재난 상황도 새롭게 해석하게 만든다. 특히 다른 사족을 최대한 쳐내고 이 영화의 장점에만 집중하면서 짧지만 간결하고 유쾌한,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다.

  <엑시트>는 재난 영화의 클리셰들을 상당 부분 제외하고 간다. 재난 상황이 예고되거나 이를 해결하는 데에는 크게 집중하지 않는다. 재난 영화라면 한 명쯤은 꼭 나오는 과학자마저도 거의 등장하지 않고 재난 자체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한다. 한국 재난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정부 시스템의 무기력함이나 신파적인 요소도 없진 않지만 이 역시 짧게 보여주고 지나간다. 영화는 이렇게 비워둔 부분을 용남[조정석 분]과 의주[임윤아 분], 두 캐릭터에 집중하고 이 재난에서 탈출하는 데 집중한다.

  재난을 탈출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스펙타클은 없지만 영화는 세세한 부분에 집중하면서 긴장감을 연출해낸다. 두 주인공의 특기인 클라이밍은 빠르고 역동적이지는 않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진행해야하는 스포츠다. 이러한 클라이밍의 특징과 간판, 외벽, 외부 파이프 등 도시적인 특징을 더하고 재난 상황에 따라 '실수하면 죽는다'는 전제를 깔아둠으로써 각각의 액션에 긴장감을 더한다. 영화의 톤 앤 매너 상 주인공들이 죽지 않을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뛰어난 연출이 돋보인다.

  이런 정적인 긴장감이 빛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있다. <엑시트>는 재난 영화이지만 굉장히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설정들에 기반하는 코미디 영화이기도 하다. 용남과 그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라이징을 꽤나 디테일하게 들어가는 이유도 이러한 현실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20대가 처한 상황을 용남과 의주를 통해 보여주고, 변화했지만 가부장적인 부분들이 남아있고 오지랖 넓은 가족상을 용남의 부모와 그 대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그 이후에도 드론의 사용이나 인터넷 방송, 해병대나 보습학원 등 영화는 지금 우리 주변의 현실을 최대한 담아내어 상황을 이끌어가려 노력한다. 이렇게 현실적인 설정들은 두 주인공들에게 짠내나는 느낌을 주어 코미디를 유발하면서 동시에 몰입감을 높여주면서 동시에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에 다양한 상황을 이끌어낼 여지를 남긴다.

  무엇보다 이러한 요소들에 과하게 몰입하지 않는다. 영화 내내 만화적인 컷 구성과 장면 전환(여러 화면을 한 컷에 배치하거나 시트콤에서 보이는 장면 전환 등)을 자주 사용하며 스피디하면서도 유쾌한 톤을 유지한다. 덕분에 수 많은 디테일들, 특히 가족에 대한 감정이나 보습학원의 학생들, 갑질하는 사회적 강자 등 관객들의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릴 수 있는 디테일들도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유도해낸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많은 것들을 담아내면서도 그것이 감정적으로든 영화의 흐름상으로든 관객들에게 인상은 남기되 불편한 기색 없이 넘어갈 수 있게 만들어낸다. 그리고 다시, 영화의 기본인 '두 청춘의 재난 상황 탈출'이라는 영화의 기본에 집중하여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이미 영화 초반 용남이 친구와 술을 먹는 장면에서 이승환의 [슈퍼히어로]가 흐르고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대놓고 등장하면서 이 영화의 테마곡이 된다. 영화는 [슈퍼히어로]의 가사처럼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아주 잘 구현해낸다. 특히 그 '누구나'에 해당되는 부분을 아주 현실적이고 소시민적으로 그려내면서 '영웅이 될 수 있다'의 임팩트와 공감을 살려내고, 무엇보다 재난과 코미디라는 장르적인 재미에도 충실하고 있다. 아주 뛰어난 걸작은 아니더라도 여름 블록버스터로서 갖출 건 다 갖춘, 정말 유쾌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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