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신익 Aug 05. 2019

[영화 리뷰] - <누구나 아는 비밀>

비밀이 관계를 형성하고 무너뜨리는 메커니즘에 대하여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꾸준하게 가족의 관계에 대해 탐구해온 감독이다. 특히 관계의 불안함을 다루는 데 있어서 탁월한 면모를 보이고 비슷한 주제로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왔음에도 그 영화들이 인상적인 깊이감을 갖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번 신작 <누구나 아는 비밀> 역시 가족 드라마에 미스터리를 더한 형식으로 관계를 파고든다. 비교적 최근작들인 <세일즈맨>과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와 비교를 한다면 훨씬 화목한 분위기를 깔고 들어가는 영화다. 하지만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영화는 '비밀'이 중심에 있는 이야기다. 그 은밀함처럼 화목해 보이는 관계 뒤에 불안하게 지탱되고 있는, 그리고 마침내 무너져버리는 방식에 대해 영화는 탐구한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사건을 늦게 배치한다.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영화 초반, 대가족이 모여 결혼식에 참석하고 뒤풀이 파티를 즐기는 장면까지를 마치 생중계하듯 인물들을 쫓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아낸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긴 호흡으로 담아낸 이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이 가족은 화목한 가족입니다'를 수없이 강조한다. 심지어 가족 구성원이 아닌 파코[하비에르 바르뎀 분]까지도 이 공동체에 합류시켜 영화를 이끌어나갈 인물들과 분위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레네[칼라 캄프라 분]가 납치된 이후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앞서 소개된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를 부수면서 흘러간다. 중요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하게 적을 수는 없지만 영화 초반 기본적인 설정으로 제시됐던 정보들(ex. 파코는 농장주다)에 대한 설명이 붙기 시작한다. 표면적으로는 이레네를 찾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정보들이지만 영화는 그 정보로 인해 범인을 추적하기보다는 그 정보가 드러남으로써 감춰져있던 감정의 골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누군가는 몰랐던, 누군가는 알고도 모른 채 살아왔던 비밀이 어떻게 관계를 지탱해왔고 비로소 누구나 알게 됐을 때 어떻게 이 관계를 무너뜨리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여러 인물이 주요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고른 인물 묘사를 하던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이번 영화는 보다 확실한 방점을 찍고 인물을 묘사한다. 사건에 연루된 수많은 인물들 중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 분]와 파코를 중심으로 사건을 이끌어가는 영화는 사건의 비극을 겪으면서  비밀로서 감춰왔던 감정의 골과 그로 인해 지탱됐던 화목한 관계를 드러내고 무너뜨렸다면 대놓고 범인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새로운 사이클을 제시한다. 범인의 등장을 기점으로 이전까지 대부분의 장면들을 라우라와 파코의 시선에서 바라보았던 영화는 기존의 라우라와 파코, 두 시점과 더불어 새로이 두 인물들의 시점으로 바라본다. 라우라와 파코의 비밀이 '누구나 아는 비밀'이 되고 그로 인해 보인 관계 변화의 사이클이 끝났다면 새로이 시점을 부여받은 두 인물을 통해 다시 한 사이클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이클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영화는 끝난다. 이를 통해 영화는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일종의 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마치 이것이 하나의 메커니즘임을 강조하듯이.

  완성도와 재미만을 따진다면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특별하게 뛰어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복제적일 정도로 비슷한 형식과 인물들을 가지고 다시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아직까지는 이러한 자기 복제가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적어도 당분간은 더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게 가족 이야기를 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유사하면서도 나아가는 방향에서 대척점에 있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영화다웠던 <누구나 아는 비밀>은 언제나 그랬듯 우리와 상당히 가까이 있으면서도 간담이 서늘한, 감독 본인만의 색채가 잘 베여있는 영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리뷰] - <엑시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