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사건과 과한 사연 사이의 단조로운 이분법
올여름 텐트폴 영화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개봉하는 <봉오동 전투>의 개봉 시기는 이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이미 여러 차례 영화의 배경으로 그려진 일제 강점기를 다루면서도 지금껏 주 소재로 다뤄지지 않은 독립군을 다룬다는 점에서,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소재를 택한 <봉오동 전투>는 본래 광복절을 노리고 8월 초 개봉을 노렸지만 한일 관계가 부정적으로 흘러가면서 올라온 반일 감정으로 추가적인 반사이익을 보게 됐다. 출연진도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등 인지도로만 따졌을 때 송강호, 박해일 주연의 <나랏말싸미>의 다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그런데 <나랏말싸미>는 초고속으로 퇴장했다.) 여러모로 대중에게 어필할 부분이 많은 데다 사회적인 분위기마저 도와주는 이 영화는 아쉽게도 그런 기획 의도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과하게 단순한 양상으로 그려지는 영화는 깊이감마저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면서 그저 그런 아쉬운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는 인물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그려낸다. 당연히 당시 독립군과 조선의 백성들은 선역, 일본인은 악역이 맞지만 이미 정해진 사실을 오히려 몰입이 어려울 정도로 과장한다. 예를 들어 기타무라 카즈키가 연기한 야스카와 지로 추격 대장이 등장할 때 호랑이를 직접 잡으면서 피 칠갑을 하고 웃으며 등장한다. 저항하는 호랑이를 보고서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도륙 낼 뿐이다. 박지환이 연기한 아라요시 시게루 중위는 어떤가. 마을을 학살하는 장면에서 시종일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혀를 내밀기도 하고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학살을 자행한다. 오히려 이런 부분을 잘 살려낸 배우들의 연기는 칭찬하고 싶지만 이 방향을 잡은 각본과 연출은 참으로 안타깝다. 차라리 '이들은 악마입니다'라고 머리에 써서 붙이는 게 나을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과장되어있다.
물론 당시 일본군이 악마와도 같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영화는 현실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영화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관객들이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영화 안에서 설득하는 것 역시 영화의 역할이다. <봉오동 전투>는 도리어 그 부분을 과장하면서 보여줬고 당연히 설득의 역할은 수행하고 있다 보기 어려운 지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영화가 폭력을 묘사하는 방식 역시 아쉽다. 앞서 언급한 영화 초반부, 마을 학살 장면에서 영화는 그 사건을 당한 당시의 사람들의 고통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사건을 가하는 일본인의 악함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스테디 캠으로 롱 테이크를 가져가면서 그 행위들을 정확하게 담을 필요가 없으며 동시에 일본군의 액션 디렉팅이 그렇게까지 악마적으로 보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 중반부, 황해철[유해진 분]의 입을 빌려 "나라 뺏긴 설움"이 이 싸움의 정확한 명분이지만 영화 초반부에 묘사되는 폭력의 양상은 그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엇나간 느낌이 아닌가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봉오동 전투>는 스테디 캠을 중심으로 넓은 앵글을 자주 사용하여 전투를 담아낸다. 한눈에 들어오는 전투의 상황과 액션, 그리고 이를 부드럽게 따라가는 데서 오는 사실감과 역동성이 주는 장르적 쾌감은 분명 칭찬할만하다. 하지만 단순히 액션으로만 이 영화를 평가하기엔 영화가 초중반부에 건드린 부분들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야기를 깊이 있게 가져가지도 않으면서 어중간하게 사연을 군데군데 집어넣어놨고, 이를 장르적 상황 안에서 해결할 강렬한 이미지(ex.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야기 상으로 충분히 비중을 두지도 않는다. 그리고 액션을 담아내는 방식과는 별개로 영화의 핵심인 전투의 양상마저도 과하게 단순하게 가져가면서 상황이 주는 극적 긴장감도 그저 그런 수준이다. 시대적 배경만을 빌려온, 단순한 장르 영화라고 해도 아쉬운 수준인데 <봉오동 전투>는 실제 상황을 빌려와 무게감을 더했기에 더더욱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이 영화의 아쉬운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될 부분을 건드린 것(과장된 캐릭터라이징)과 장르적인 상황만을 믿고 과하게 단순하고 얕게 구성된 것. <암살>처럼 장르 영화의 틀을 지키면서도 충분히 당시의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 영화는 좋은 기획을 가졌지만 오히려 거기에 기대는 듯 쉽게 넘어가는 부분들이 많이 보여 아쉽다. 항상 생각하는 부분이지만 이러한 역사 배경의 영화들이 잘 나와줘야 한다. 그것이 국뽕이든, 그로 인한 관객몰이를 노린 장사든, 어쨌든 그것이 영화가 되어 대중에게 공개됐을 땐 역사와 시대를 기억하는 또 다른 매개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봉오동 전투>의 아쉬움은, 다른 영화들이 그저 아쉬웠을 때보다 더 크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