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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Aug 22. 2019

<스파이더맨>을 둘러싼 각자의 입장

디즈니와 소니의 협상 결렬과 그들의 입장에 대하여

  한국 시간으로 어제인 8월 21일(현지 20일), 굉장히 충격적인 소식이 하나 발표됐습니다. 바로 <스파이더맨>이 더 이상 MCU에서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당장 올 7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으로 크게 흥행하고 MCU의 페이즈 3를 잘 마무리했기에 이 소식은 더 충격적입니다.

  상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소니와 마블 스튜디오의 모회사인 디즈니가 <스파이더맨> 판권에 대한 계약을 진행하던 중 디즈니가 기존의 수익 배분 구조(소니 5 : 디즈니 95)를 '소니 50 : 디즈니 50'으로 변경하길 원하자 소니 측에서 이를 거절하면서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소니 측에서는 협상은 아직 열려있다고 말했는데, 오늘자로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소니의 톰 로스먼 회장이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케빈 파이기(마블 스튜디오 CEO)의 참여 없이 간다'고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번복이야 언제든 가능하겠지만 일단 당장으로서는 두 회사가 확실히 갈라선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화가 난 마블의 팬들은 소니의 SNS 계정을 테러하는 등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파이더맨이고 MCU에도 안정적으로 편입됐기 때문에 이러한 반발은 당연한 수순이었는데요, 겉으로 보기에는 '잘 나가는 마블에 소니가 어깃장을 놓는 것 아니냐', '애초에 5:95라는 비율이 말도 안 되는 것 아니냐'라는 등 팬들의 여론은 디즈니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근데 이게 정말 소니만의 잘못일까요? 이 상황에 대해서 한 번 각자의 입장을 추측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소니 픽쳐스

  우선 판권의 주인, 소니 픽쳐스부터 살펴봅시다. 냉정하게 바라봤을 때 소니 입장에서는 이번 상황이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MCU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 판권 문제로 꾸준히 이슈가 나오는 캐릭터는 헐크와 스파이더맨이 있습니다. 이 둘의 상황은 조금 다른데요, 헐크의 경우에는 배급 권한을 유니버셜이 가지고 있는 반면 제작 권한은 마블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헐크를 다른 마블 영화에 출연시키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헐크의 솔로 무비 제작 시에는 반드시 유니버셜의 동의가 있어야만 합니다.

  반면 <스파이더맨>의 경우는 간단합니다. 소니가 배급부터 제작까지 모두 판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블이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제작에 모두 참여하긴 했지만 소니 산하의 콜럼비아 픽쳐스, 전 소니 프로듀서 에이미 파스칼의 파스칼 픽쳐스와 함께 제작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 상으로는 마블에 소속된 것이지만 엄연히 이건 소니가 제작부터 배급을 전부 한 영화나 다름이 없는 셈이죠. 95:5라는 살인적인 수익 배분도 여기서 이 부분에 기인합니다. 소니가 북한에게 해킹당해 유출되어 위키 리크스에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마블 편입 이전에도 소니는 수익의 5%만을 마블에게 로열티로서 지불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소니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최고 IP(지적재산권)를 무려 타사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허락하고(<시빌 워>, <어벤져스3, 4>) 자기 영화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던 것인데 도리어 이게 욕을 먹고 있으니 억울할만하겠죠.

  디즈니의 50:50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블이 제작에 참여하고 그들의 스토리라인에 편입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문서상으로 따졌을 때 엄연히 <스파이더맨>은 소니가 배급하고 제작하는, 소니의 영화지 디즈니의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50:50은 소니 입장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입니다. 95:5를 고수하는 건 자신들이 소유한 권리를 행사한 것인데 그걸 이유로 여론을 통해 비난을 받으니 당연히 억울할 것 같습니다.

  소니 입장에서 <스파이더맨>은 절대로 놓을 수 없는 IP입니다. 소니가 배급한 영화들 중에서 가장 흥행한 10편 안에 <스파이더맨> 영화만 6편이 들어갑니다. 그 외에 시리즈화하여 길게 가져갈만한 판권이 <007>과 <쥬만지>밖에 없는데, 그나마 <007>은 계약이 만료되어 MGM에서는 다른 스튜디오를 찾고 있고 <쥬만지>는 지금 시대에 맞게 잘 살려내긴 했지만 시리즈로서의 지속성은 아직 의문입니다. 기존의 성적표와 더불어 소니의 현 상황을 생각해보면 <스파이더맨>의 IP는 소니에게 필수적입니다.

  더불어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가진 잠재력만을 봐도 소니가 많은 것을 포기해가며 마블과 <스파이더맨>을 가져갈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톰 하디를 주연으로 내세운 <베놈>이 완성도 논란이 있었지만 전 세계에서 8억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더불어 애니메이션인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입소문을 통해 비교적 적은 제작비(9000만 달러)로 북미에서만 2억 달러 이상의 성적을 올렸고 디즈니와 픽사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아카데미 최우수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소니 산하에서 <스파이더맨> IP의 작품들은 개봉이 확정된 <베놈 2>와 <모비우스>를 비롯해 총 5편이 기획 중에 있습니다. 당연히 마블의 아성을 따라잡는 것은 어렵겠지만 충분히 확장과 자생이 가능한 IP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소니 입장에서도 마블의 네임 밸류로 이득을 보지는 못해 아쉽겠지만 그렇다고 향후 <스파이더맨> 영화 수익의 50%를 뗄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2. 디즈니

  그렇다면 디즈니는 왜 기존의 조건을 대량으로 수정하는 조건을 내걸면서 협상에 나섰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디즈니, 그리고 마블이 가진 인지도와 규모에 기대어 협상에 나선 것 같습니다. 명실상부 마블은 현재 영화 시장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브랜드입니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세계관들, 그 과정에서 벌어들인 흥행 수익은 상당하며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아바타>를 밀어내며 전 세계 흥행 1위 자리를 차지한 것만으로 그 화룡점정을 찍었습니다. 디즈니의 입장에서는 <스파이더맨> 역시 그 반사이익을 본 것이라 추측, 수익 배분을 더 높게 잡은 것이라고 보입니다.

  마블에 편입되기 전부터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상당히 잘 나가는 시리즈였습니다. 다만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부작 이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로 리부트, 이후 <시니스터 식스>까지 이어지는 시리즈의 확장을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의 흥행이 부진해 소니는 이 기획을 포기하고 마블과 손을 잡고 지금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구축해냅니다. 그 결과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북미 흥행 수익은 샘 레이미의 3부작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돌아왔고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11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역대 <스파이더맨> 솔로 무비 사상 최고의 흥행 수익을 기록합니다. 이 과정에서 단지 <스파이더맨> 단독 IP로서 이룩한 성과가 아니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반사 이익을 본 것으로 보입니다. <홈커밍>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직접 출연했으며 <파 프롬 홈>은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어벤져스: 엔드 게임>과 토니 스타크에게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마블은 기존 협상안을 뒤집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협상이 어그러졌을 때, 여론이 자신들의 편에 설 것이라는 것도 충분히 계산한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만 보더라도 소니 SNS 계정이 테러 당하는 등의 사건이 있으며 대다수의 팬들은 스파이더맨이 '마블'에서 이탈하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MCU의 배우들 역시 스파이더맨의 이탈을 아쉬워하는 SNS 게시글을 올리는 등 여론전의 측면에서는 디즈니의 완승입니다. 이러한 여론전은 당장의 협상에서도 유효하지만 향후 별도의 <스파이더맨> IP의 작품이 나왔을 때의 타격까지 이어질 수 있어 디즈니에게는 여러모로 이득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스파이더맨> IP에 대한 절박함에 대해서도 디즈니와 소니의 입장은 다를 것입니다. 소니의 입장에서 <스파이더맨>은 성적 면에서 굉장히 비중이 높고 중요한 IP인 반면 디즈니는 같은 히어로 계통에서 생각해봐도 이를 대체할 IP가 많습니다. 최근에 개봉한 솔로 무비들만 하더라도 <블랙 팬서>가 북미에서 7억 달러, 전 세계에서 13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캡틴 마블>은 북미 4억, 전 세계 11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두 작품이 사회적인 이슈의 도움을 받았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굉장히 높은 숫자임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외에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나 <토르>만 하더라도 북미에서 3억 달러 이상은 거뜬하게 벌어들일 수 있는 작품이 많으며 향후 새로이 등장한 히어로들 역시 마블의 네임 밸류 하에 개봉한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흥행은 보장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즈니는 협상 과정에서 이렇게 '질러도' 아쉬울 것이 없는 입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번외. 사실 이 모든 건 협상의 과정?


  양사의 의견이 갈리면서 협상이 결렬되는 쪽으로 진행이 됐지만 사실 양사의 협업은 여러모로 양사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입니다. 소니는 마블의 네임 밸류를 사용하면서 자신들의 작품을 할 수가 있는 것이고 마블 입장에서는 영화 이전부터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IP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결렬 상황마저 협상의 한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볍게 소비되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할리우드는 명실상부 전 세계 최고 규모를 자랑하는 영화 업계이고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판입니다. <스파이더맨>이 꾸준히 북미에서만 3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는 IP임이 증명된 현재, '사업'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이 IP를 놓치고 싶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설사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팽팽한 상황을 유지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케빈 파이기를 제외하겠다는 톰 로스먼 소니 회장의 발표에서도 "우린 미래에 이 상황이 바뀔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는 말을 붙이며 조금의 여지라도 남겨두고 있으며 마블의 수장인 케빈 파이기에게 감사하고 칭찬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계약관계는 소니 - 디즈니의 갈등이며 마블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케빈 파이기 마블 CEO가 스파이더맨에 가진 개인적인 애정을 생각해봤을 때, 그리고 큰 그림의 이야기를 짜 놓는 마블의 특성상 스파이더맨의 부재에 마블이 크게 반대할 수도 있고 디즈니와 어떤 얘기가 오갈 가능성도 없진 않아 보입니다. 당연히 모기업인 디즈니의 결정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고 디즈니가 거대한 미디어 그룹으로서 큰 힘을 휘두룰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소니와의 협상이 결렬된 지금의 상태가 유지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라는 게 이해만 맞으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죠. 과연 지금 상태가 최종 결론일지, 아니면 이마저도 협상의 과정일지는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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