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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r 02. 2017

[영화 리뷰] - <로건>

아름다운 작별을 담은 우아한 웨스턴 드라마

  한 캐릭터를 17년간 연기해온다는 것은 무슨 느낌일까. 휴 잭맨은 10차례 나온 <엑스맨> 시리즈에서 <데드풀>을 제외하고, 그 분량이 크고 작고를 떠나서 언제나 울버린을 연기해왔다. 신인이었던 휴 잭맨을 할리우드의 스타로 만든 캐릭터이며 <엑스맨> 시리즈의 중심과도 같은 캐릭터였다. 배우로서 굉장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예상을 해본다. <로건>이 제작에 들어갈 무렵, 휴 잭맨은 계속해서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울버린 연기가 될 것임을 암시했다. 17년간 봐온 울버린을 보내야 한다는 슬픔과 더불어 마지막인 만큼 좋은 영화가 나오기를 빌었다.(지금까지의 <울버린> 시리즈는 다 평가가 좋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이번 작품은 울버린과 휴 잭맨을 위한 완벽한 작별 인사가 됐다.

  영화는 이미 기존의 슈퍼히어로 장르의 틀을 벗어나있었고 기존의 울버린을 처참히 깨부숴놓았다. 영화의 오프닝을 생각해보자. 술에 취해 잠들어있던 로건[휴 잭맨 분]이 자신의 차를 분해하려는 동네 건달들과 만나 싸우게 된다. 비틀대는 걸음걸이, 총에 맞고 고통스러워하며 일어나며 클로의 한 쪽은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예전같지 않은 몸. 그리고 건달들에게 얻어맞고 뻗어버릴 때 타이틀 <로건>이 들어온다.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천하무적의 로건이 아님을 영화는 보여준다. 그 이후는 장르를 뒤집어버린다.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잔혹한 액션과 텍사스 번호판, 그리고 앨파소의 표지판. 웨스턴의 주 무대인 두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기존 <엑스맨>이 하지 못한, 성인을 넘어 늙어버린 로건의 짙은 드라마를 보여줄 것을 암시한다.

  대놓고 고전 웨스턴 <셰인>을 보여주듯 로건은 멋진 슈퍼히어로가 아닌 고독한 웨스턴의 영웅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로건을 총잡이로, 오토바이와 차를 말과 마차로 대입을 해보면 머릿속으로 그려내기가 충분할 것이다. 물리적인 관계에서는 전혀 보호가 필요하지 않지만 로라[다프네 킨 분]와는 정신적으로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를 형성하며 영화 속 삽입되는 <셰인>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해낸다. 그리고 이 관계에 찰스[패트릭 스튜어트 분]가 개입하면서 틱틱대지만 아랫 세대에게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로건 스스로 가지게 된다. 찰스의 개입은 가족의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에 단순한 세대감을 넘어서는 유대감을 형성해낸다.

  이러한 장르적 접근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이유는 영화가 가진 캐릭터의 깊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17년의 세월동안 진행된 <엑스맨> 시리즈가 만든 것이 아닌, 캐릭터가 가지는 고독감을 영화는 굉장히 깊게 표현해낸다. 오프닝과 그 이후 스스로를 치유하며 보여지는 흉터들이 그러하며 찰스도 사실상 정신이 나가 짧은 순간해도 여러 인격을 보는 듯한 모습을 부여하면서 그 인물들이 물리적, 정신적으로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짤막하게 요약해낸다. 그리고 각 인물들을 대부분의 장면들에서 분리하면서 그 고독감을 끌어올린다. 단순히 이야기적으로만 고독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는 이에 대해 충분히 많은 표현을 해내고 있다. 영화 초반, 사막 한 가운데의 황량하고 색 자체도 굉장히 죽어있다. 그러나 영화는 점차 진행되면서 다양한 색감을 회복한다. 공간은 사막에서 화려한 카지노 도시를 지나 울창한 숲으로 진행되고 그들이 탑승하게 되는 차량의 색깔도 검정색에서 짙은 초록색, 그리고 하늘색~연두색 계열로 바뀐다.

  연출적인 표현에서 뿐만 아니라 배우들 하나하나 모두 굉장히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주인공인 휴 잭맨의 이야기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본격적으로 성인 영화가 되고 로건이라는 캐릭터를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자 그는 이제까지 이해한 로건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침 없는 행동과 말투는 물론이요 폐쇄적인 모습과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미세하게 캐치해 표현해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이전 시리즈들에서 로건이 이 만큼의 깊이를 가지고 다뤄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17년 간 로건이었기에 이런 깊은 연기가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패트릭 스튜어트는 스스로를 내려놓은 연기를 해냈고 다프네 킨은 어리지만 굉장히 당찬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공들인 표현을 통해 영화는 가장 <엑스맨>스러운 메시지인 유대감을 강조한다. <엑스맨> 시리즈는 언제나 밝고 희망찼다. 그들은 개인이 아닌 팀으로 뭉쳤을 때 더 강해졌으며 소외된 자들이 모여 가족관계를 형성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영화는 가장 고독하고 기존 <엑스맨>의 색채를 모두 지워냈지만 마치 차갑고 단단한 부싯돌들이 충돌해 만드는 불처럼, 시리즈 중 가장 따뜻한 작품이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상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통해 세대가 모두 교체됐다. 울버린이 이끄는 1세대의 이야기는 끝났고 젊은 찰스와 에릭[제임스 맥어보이, 마이클 패스밴더 분]이 이끄는 <엑스맨>의 이야기만이 남았다. <로건>은 그 1세대 이야기의 진짜 마지막을 다루는 영화다. 영화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로건의 퇴장이 영화 속에 등장할 때면 왠지 모르게 울컥하게 된다. 물론 이는 17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무게감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 만큼 캐릭터에 집중해 뛰어난 드라마를 만들었기에 가능한 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기존 <엑스맨> 시리즈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기존 시리즈의 무게감과 감정만큼은 아주 잘 담아낸 작품이며 그렇기 때문에 울버린, 로건, 휴 잭맨을 보내기에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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