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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r 02. 2017

[영화 리뷰] - <23 아이덴티티>

패를 다 까놓고 보니 가늠할 수 있는 샤말란의 진가

  한 때 미스터리/스릴러 장르에서 굉장히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장르에서(<해프닝>), 그리고 블록버스터 장르에서(<라스트 에어밴더>, <애프터 어스>) 모두 실패를 맛봤다. 평판이 거의 추락해버린 것과 같은 샤말란이었지만 오히려 힘을 빼고 저예산에 본인이 자신있던 장르로 돌아갔다. <더 비지트>로 나름대로 성공적인 복귀를 치룬 샤말란 감독은 <23 아이덴티티>로 돌아왔다. 소재 자체는 독특하긴 하나 본인의 장기인 초자연적인 현상들이나 반전은 없다. 그리고 이 영화를 샤말란의 혁신적인 작품이라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번 작품으로 샤말란 감독은 '내가 그래도 이 정도는 하는 감독이야'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중인격자라는 설정 자체가 독특하지만 영화는 초장에 모든 패를 공개해버린다. 한정적인 공간에 인물들을 가둬버리고 독특한 소재인 다중인격자 케빈[제임스 맥어보이 분]에 대한 사실들에 대해서도 서서히 공개한다. 아예 제 3의 전문가를 두어 친절하게 설명하기까지 한다. 충분히 자극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몇몇 씬들도 오히려 힘을 빼고 진행하는 여유까지 보인다. 여기 이 비어버린 공간을 캐릭터로 가득 채운다. 케빈에 대해 순차적으로 공개하는 이유도 그것이며 피해자라는 점에서 케빈과 대척점에서, 혹은 똑같이 상처입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케빈과 동일 선상에서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 분]의 캐릭터를 구성해나간다. 덕분에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고조되는 긴장감보다는 인물의 충돌 자체에서 오는 긴장감이 상당하다.

 사실상 케빈과 케이시의 충돌에서 주된 긴장감이 유발되다보니 두 배우에게는 연기력을 뽐낼 수 있는 넓은 판이 제공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한 캐릭터 자체가 워낙에 독특하다보니 연기가 중요하기도 했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맡은 역할을 굉장히 잘 수행해냈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캐릭터를 수시로 오가며 보이는 연기는 보다보면 소름이 돋는다. 제임스 맥어보이가 넓이라면 안야 테일러 조이가 보여주는 연기는 깊이다. 유독 과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캐릭터인 만큼 캐릭터 자체가 깊게 구성이 되는 편이다. 이러한 캐릭터를 젊지만 성숙한, 미숙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든든하게 잘 표현해냈다고 생각한다.

  당장 샤말란이 <식스센스>와 같은 작품을 다시 연출해낼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근래 샤말란의 커리어를 보면 마치 때를 기다리는 듯 칼을 갈고 있는 것 같다. 한정된 예산과 상황에 좋은 아이디어와 연출과 연기, 영화의 기본으로 충분히 재미있는 긴장감을 만들어낸 걸 보면 칼은 잘 갈려있는 것 같다. 특히 여타의 공포/스릴러와는 다르게 <23 아이덴티티>는 자극을 최소화한 작품이다. 쓸데없이 놀래키려는 시도가 아닌 착실하게 쌓아올린 긴장감을 선사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아마도 샤말란 감독은 자신의 기본기를 증명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싶고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영화는 충분히 성공적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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