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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r 02. 2017

[영화 리뷰] - <싱글라이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해외 배급사들이 한국 영화를 배급하기 시작한 건 꽤 됐지만 그것이 본격화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폭스를 통해 관객들을 만났고 같은 해,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워너브라더스를 통해 개봉했다. 디즈니는 올 해 초 <그래, 가족>을 배급하며 한국 영화와 연을 맺었다. 영화 <싱글라이더> 또한 마찬가지다. <밀정>을 배급했던 워너브라더스를 통해 개봉한 이 영화는 어쩌면 해외 배급사이기에 가능한, 기존의 한국영화와는 느낌이 많이 다른 작품이었다. 비록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한국영화도 쥐어짜는 감정이 아닌, 정적인 리듬에서 감정을 뽑아낼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앞서 말한대로 영화는 굉장히 정적이다. 카메라 앵글도 움직이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간단한 패닝이나 틸팅도 최대한 자제하며 영화 속에 담아낸다. 광활한 이미지를 가진 호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안에서는 최소한의 공간만을 이용한다. 캐릭터의 대사나 행동도 그렇다. 영화는 재훈[이병헌 분]이 혼자 있는 시간들을 주로 다루는데 대사가 아예 등장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씬들이 굉장히 많으며 그 씬들에서의 행동들도 가장 역동적이어봐야 걷는 것 정도이며 대부분은 서서, 혹은 앉아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에 그친다.

  영화는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서 차분하게 감정선을 쌓아올린다. 물론 그 와중에 이병헌의 미친듯한 연기, 무표정으로 수만가지 감정을 다 담아내는 말도 안되는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는 하지만 재훈과 그 가족들의 캐릭터가 착실하게 쌓아올려지고 후반부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장면들이 억지스럽지 않고 공감된다. 한국 영화에 신파가 만연하기에 순수 드라마에 열중해 이런 감정을 끌어올린다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정적이고 소박(?)함에도 불구하고 사족이 꽤 붙어있다. 우선 진아[안소희 분]라는 캐릭터가 그렇다. 재훈에게는 변화의 계기이자 거울같은 역할을 하는 캐릭터지만 이 캐릭터가 보여주는 패턴은 굉장히 단순하다.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반복해서 실패를 맛본다. 재훈이라는 캐릭터를 이루는 환경이 굉장히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아내[공효진 분]와 그 주변 사람의 관계, 자신이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 아내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캐릭터가 어울리지 않게 설계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반전도 마찬가지. 영화는 일종의 정리이다. 한국에 모든 것을 두고 재훈이 호주로 떠나온 순간 그 정리는 시작된 것이다. 막판까지 차분하게 정리가 되어갈 즈음 그 반전으로 인해 지금까지 정리된 것들이 엎어진다. 논리적으로나 인과적으로나 이야기 내의 요소들을 모두 설명해주는 반전이기는 하지만 천천히 올라오던 영화의 감정선이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반전을 이용하지 않았어도 이 정도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재주라면 충분히 더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비록 아쉬운 부분이 있는 영화지만 그래도 의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한국 대중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화법 중 하나는 신파라고 생각한다. 강한 자극을 앞세워 감정을 억지로 쥐어짜내는 식으로 연출된 작품들이 굉장히 많고 이러한 작품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그러한 신파극의 홍수속에서 어떠한 자극도 없이, 그것도 호주라는 새로운 공간을 눈앞에 두고도 오직 이야기와 인물들에게만 집중해 의도한 감정을 전달해냈다. 한국 영화가 감동을 줄 때는 감정의 최고조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간다. 하지만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고은 시인의 시처럼, 내려가면서 보이는 꽃이 있는 것처럼 영화의 템포고 멈췄을 때 비로소 보이는 감정들이 있고 <싱글라이더>는 그런 감정들에 한 발짝 다가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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