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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r 10. 2017

<데드풀>, 그리고 <로건>

슈퍼히어로 장르의 다각화

  한국에서 3월 1일 개봉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신작이자 휴 잭맨의 마지막 울버린 <로건>이 북미와 한국 모두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북미에서는 주말 8800만 달러($88,411,916)의 수입을 올렸고 한국에서는 주말 63만 관객(632,995명), 누적 107만 관객(1,079,913명)을 동원했습니다. 북미에서의 성적은 R등급(한국의 '청소년 관람불가'와 비슷한 맥락의 등급) 영화 중 4번째로 높은 오프닝 성적이며 한국에서는 개봉 첫날 <해빙>에 밀렸음에도 등급의 불리함을 이기고 얻어낸 1위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로건>은 현재까지 2억 4700만 달러($247,444,337)를 벌어들였습니다.

  <로건>의 전세계적인 흥행은 1년 전 개봉한 어느 다른 영화와 더불어 슈퍼히어로 장르에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데드풀>입니다. 우선 두 영화는 모두 R등급, 국내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의 등급으로 개봉했고 한국과 미국, 특히 미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했습니다.(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폭스의 작품, 그것도 <엑스맨>에서 파생된 작품들이네요.) 현재 슈퍼히어로 시장에서 가장 흥행력이 강한 것은 당연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지만 <로건>과 <데드풀>의 흥행은 슈퍼히어로 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팀 밀러 감독의 <데드풀>은 굉장히 선정적이고 폭력적입니다. 그리고 메타적인 유머, 영화 밖 세계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유머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으로 <데드풀>이 얻어낸 효과는 기존 슈퍼히어로 장르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 거기서 오는 시니컬하고 유쾌한 코미디입니다. 오프닝 크레딧부터 생각을 해보죠. 투자자들을 돈 많은 호구, 감독을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등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희화화하며 시작합니다. 그럴만도 한 것이 슈퍼히어로 영화는 영화계 자본주의의 끝판왕이고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규모로 밀어붙이는 영화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돈이 많이 들어간 만큼 가능한 많은 관객층을 노려야 하기에 표현 자체가 굉장히 가벼운 편입니다.

  반면 <데드풀>은 굉장히 잔인하고 선정적입니다. 그걸 또 보란듯이 대놓고 보여줍니다.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강한 수위의 언어를 구사합니다. 마치 기존 슈퍼히어로 영화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말이죠. 이렇듯 <데드풀>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표현의 강도를 장르 자체를 저격하면서 한 단계 올려놓았습니다. 완성도 자체도 뛰어날 뿐 아니라 흥행 역시 좋은 성적을 올리게 되면서 성인을 타겟으로 한 슈퍼히어로 영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로건>은 <데드풀>과 비슷하지만 정 반대의 위치에 있습니다. <엑스맨>은 블록버스터 시리즈 중 굉장히 좋은 성과를 내던 작품이었습니다. 흥행으로나 작품 자체로나 말이죠. 하지만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에 타겟 관객도 전방위적이라 수위도 그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보니 튼튼하고 깊은 드라마를 구사하지만 모두 희망적으로 마무리되기에 비교적 어두운 캐릭터의 끝을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특히 세대교체 전 <엑스맨>의 주인공이 울버린[휴 잭맨 분]이라는,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동물같은(과거사도 액션의 방식도) 캐릭터라면 그 아쉬움이 더더욱 크죠. 두 차례의 <울버린> 솔로 영화 역시 이런 캐릭터의 끝(!)에 다다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로건>은 이를 해냈습니다. 우선 블록버스터의 화려함을 버리고 굉장히 삭막하고 황량한 분위기로 무장했습니다. 기존 시리즈에서 가져온 것이라면 오랫동안 등장하며 깊은 사연을 가지게된 캐릭터 뿐입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를 더 깊이 파고듭니다. <로건>에 등장하는 울버린은 기존 <엑스맨>에 등장하는 울버린보다 훨씬 더 짐승같고 날 것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로건>은 상처의 영화입니다. 이제 더 이상 완벽한 치유가 불가능한 울버린이기에 온몸에 많은 흉터가 새겨져있고 이 흉터, 자신이 경험한 물리적, 심리적 상처를 자신과 꼭 닮은 다음 세대(로라[다프네 킨 분])에게 넘겨주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깨끗한(!) PG13 등급에서 벗어난 높은 수위의 액션과 시각적은 묘사는 이런 울버린의 캐릭터를 강하게 보강해줍니다. R등급으로 진행이 됐기에 더 거칠고 날것으로 캐릭터를 다룰 수 있었고 그렇기에 <로건>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깊이있는 드라마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데드풀>이 더 강한 것을 위해 R등급을 취했다면 <로건>은 더 깊이있는 것을 위해 R등급을 취했다"고 했습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말은 두 영화가 R등급을 취한 이유와 그 효과를 가장 잘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두 편은 단지 피상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R등급을 영리하게 잘 사용하여 슈퍼히어로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더 넓혔습니다. 분명 현재 슈퍼히어로 시장을 이끄는 것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고 MCU를 통해 많은 관객층이 코믹스 원작 영화로 유입됐습니다. 더 넓은 스펙트럼의 관객들이 유입된 만큼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고 MCU는 여러가지 시도를 하며 전진해왔습니다. 이런 접근의 측면에서 봤을 때 <데드풀>과 <로건>의 성공은 아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MCU의 다양한 시도는 모두 PG13 등급(13세 미만 부모 지도 필요 등급) 하에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데드풀>과 <로건>은 아예 등급을 깨버리면서 더 넓고 깊이있는 표현의 범주로 나아갔습니다.

  지금까지 코믹스 원작 영화에서 R등급, 한국의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작품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퍼니셔> 시리즈나 <왓치맨>과 같은 시도들이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작품은 규모가 작거나 이미 무거운 원작에 충실한 작품들입니다. 물론 미국에서 코믹스, 그 중에서도 슈퍼히어로 코믹스는 아주 오래전부터 유행을 지키고 있었고 그런 만큼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에 비한다면 영화의 슈퍼히어로는 구현의 과정에서 많은 자본이 투입되기에 블록버스터 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다양한 관객층을 노리고 이야기나 수위의 측면에서 비교적 사린(!) 작품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원작이 성인을 타겟으로 해도 말이죠.(영화에서 데드풀의 첫 등장이 <엑스맨 탄생: 울버린>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느껴지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데드풀>과 <로건>, <엑스맨>이라는 인지도 있는 블록버스터 시리즈에서 파생된 작품이 등급을 넘어 표현의 범주를 확장시켰다는 것은 슈퍼히어로 장르가 더 다양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를 갖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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