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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r 22. 2017

[영화 리뷰] - <토니 에드만>

여유와 절박함이 공존하는 인생의 담론

  작년 칸 영화제, 부산 국제영화제를 통해 이미 수많은 호평을 들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꽤나 많은 기대를 했는데 예고편을 보고서 의외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평범한 인생을 살던 사람이 어떠한 계기로 기괴한 상황이나 행동을 하거나 맞이하는 이야기는 많다. 예고편만 봤을 땐 비교적 평범한 영화가 아닌가 했다. 이런 식으로 부모와 자녀간의 갈등이 화해되는 코미디 드라마는 차고 넘치지 않았는가. 하지만 2시간 40분에 달하는 러닝 타임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영화를 직접 보고나니 내가 잘못 생각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오히려 <토니 에드만>은 앞서 말한 평범한 가족영화에는 없던 씁쓸함까지 가져가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이 느껴지도록 만든 작품이었다.

  우선 영화에 등장하는 행동들은 굉장히 독특하다. 영화 초반부터 나오는 폭탄 이야기, 학생들과 함께하는 이상한 분장,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로 넘어가서 벌어지는 거짓말들과 일종의 연극들. 그러나 이 행동들은 단순히 자극적인 행동이 아니라 영화의 이야기로 이어져 하나의 의미를 담은 이미지가 된다. 아버지와 딸, 실제하는 것과 허구로 만들어진 것, 진실과 거짓말, 계획과 즉흥, 유와 무, 극의 시작 양 극단을 담당하고 있는 죽음과 생까지. 많은 이미지들이 말 그대로 공존한다. 단지 한 작품 안에서 같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씬에서, 한 시퀀스에서 공존해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마치 화합할 수 없는 두 감정이 공존하게 함으로써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 분]와 이네스[산드라 휠러 분]를 같이 배치한다. 이러한 감정, 화합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공존하는 상태의 감정으로 생각하면 영화의 마지막도 이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감정을 표현하는 영화의 연출도 아주 뛰어나다. 영화는 독특한 이미지들을 담아내고 있고 그런 만큼 겉으로 보여지는 많은 요소들을 나열하기만 해도 풍성한 화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멈춰있는 상태에서 대부분의 감정들을 연출해낸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를 느꼈던 것은 이네스의 동료들이 함께 클럽에 가서 노는 장면이다. 클럽 자체도 굉장히 화려한데다 샴페인을 우스꽝스럽게 따르고 노는 동료들과 달리 지친듯 자리에 앉아 애잔하게 아버지 빈프리트를 바라보는 이네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빈프리트의 리버스 쇼트. 영화는 꽤 긴 시간동안 그들을 고정된 쇼트로 바라본다. 영화는 그 어떤 화려한 효과보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그 장면에서 하고싶었던 이야기를 다 해낸다.

  시종일관 무거운 감정을 환기하는 것은 코미디다. 영화의 코미디는 빈프리트와 이네스의 충돌에서 온다. 지극히 다수의 시선에서 정상적인, 성공한 삶을 추구하는 이네스와 그들의 시선에 상관하지 않고 기상천외한 행동들을 연발하는 빈프리트. 그들 사이에서 보이는 액션과 리액션은 가장 큰 코미디의 지점이며 가장 둘이 동화됐다고 느껴지는 누드 파티 장면에서도 이네스는 벌거벗은 반면 빈프리트는 털이 수북한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그리고 이 누드파티 장면은 장담컨대 2017년 최고의 코미디 장면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코미디 연출법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마렌 아데 감독이 주제의 연장선상에서 무거운 분위기를 어떻게 환기를 해야하는가를 정말 잘 알고 있으며 이 주제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예상 밖의 요소들을 어떻게 가져와야 하는 지를 정말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할 건 없지만 영화는 이야기를 더 파고들어 특별한 에피소드들을 끌어냈다. 이미 전형화된 가족드라마를 이렇게 비틀 수도 있구나 하면서 그 안에 독특한 이미지들을 자유자제로 활용하면서도 이야기하고자 바를 확고하게 전달하는, 아주 멋진 영화였다. 하다못해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이 영화를 쉽게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이 영화를 곱씹어볼수록 하고싶어지는 이야기가 정말 많아지고 다시 한 번 보고싶어지는 작품이다. <라라랜드>, <컨택트>, <너의 이름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 그리고 수많은 영화들과 이 영화까지. 작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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