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신익 Feb 10. 2017

[영화 리뷰] - <더 킹>

한국 근현대사를 뻔뻔하게 비웃는 대담한 연출

  <연애의목적>과 <우아한 세계>. 뚜렷한 작품세계를 가지긴 했지만 비교적 소박한(?) 규모로 활동하던 한재림 감독이 <관상>으로 규모를 넓힌건 2013년이었다. 그 이후 4년, 별다른 활동 없이 있던 한재림 감독은 규모를 더 넓힌 작품으로 돌아왔다. 규모 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현 시국을 저격하는듯한 내용으로 보아 더 과감하기까지 한 것 같다. 막상 영화를 보니 <관상>이 많이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특히 여러 인물들이 각자 축을 담당하고 주인공은 그 축 사이를 헤매는 구조가 그러했다. 하지만 <관상>에서는 보지 못했던, 현실을 크게 아우르는 뻔뻔한 연출력이 빛나던 작품이었다.

  영화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완벽하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분명 준수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중후반부 즈음에는 이야기가 약간은 늘어지는 구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곧 뛰어난 연출력으로 커버가 된다. 각 시대와 정권을 이야기의 흐름과 직결시켜 각 파트마다의 이미지를 아주 단단하게 다져놓는 것은 물론이요, 표현의 범위에 있어서도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직부감 샷들이 빛나던 초반부 태수[조인성 분]의 젊은 과거를 빠르게 압축해서 보여주던 씬들, 영상을 현실로 끌어오고 현실의 인물을 영상으로 집어넣는 묘한 교차로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해낸 초반 스캔들 비디오 씬, 정통적인 느와르의 느낌을 주는 두일[류준열 분]의 등장분이나 자료 화면의 적절한 활용 등. 감독이 연출자로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영화를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요소는 블랙 코미디다. 그렇기 때문에 유쾌한 웃음이 아니라 어딘가 아다리가 맞지 않는 곳에서 나오는 웃음들이다. 수 많은 아이러니를 내포한 한국의 근현대사와 감독이 놓은 화려한 표현이 블랙 코미디와 맞물리니 이 시너지는 상당했다. 마치 우리 역사의 그림자들을 비웃는듯한 영화의 분위기는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많이 상쇄해 보는 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간다. 무엇보다 근래에 단순히 과거 시기가 아닌, 현대사를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 중에서 이렇게 뻔뻔하게 웃었던 작품이 어디 있었을까. 이 자체로도 한재림 감독의 패기가 돋보이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영화는 절대로 단순한 비웃음으로 그치지 않는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영화의 타임라인은 역사에 그치지 않고 현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재로 돌아와서는 사뭇 진중해진다. 이제는 돌아보며 비웃을 수가 있는 게 아닌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의 가장 마무리(쿠키 영상이라고 해야하나)는 코미디로 끝나긴 하지만 분명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매 순간 꽤나 진지하게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지금까지 충분히 무거운 사건들을 다루면서 보여주지 않은 무게감을 선사하면서도 메시지에 힘을 싣는 영리한 연출이었다. 

  결과론적으로 이 영화는 현 시국 덕분에 조금 더 주목을 받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시국이 펼쳐지기 전부터 이런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재림 감독의 대담함과 날카로운 시선이 빛나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 영화는 현 시국에 잘 맞는 영화다. 그리고 필요한 영화다. 근데 그런 걸 다 떠나서 무엇보다 연출자로서 한재림 감독의 능력이 제대로 드러난 영화라 생각한다. 이런 뻔뻔하고 대담하면서도 섬세한 감각은 어디사 나오는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리뷰] - <여교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