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 혹은 자기변호. 쓸쓸하게, 혼자
작품과 별개로 한국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감독은 아마 이 감독이 아닐까 싶다. 물론 작품 자체로만 봐도 워낙 독특한 작품 세계와 완성도로 국내외를 불문하고 큰 화제를 모았던, 독립 영화의 아이콘과도 같은 감독이었지만 한 차례의 불륜으로 지금까지 받았던 국내의 관심보다 100배는 더 되는 관심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감독이다. 눈치 챘겠지만 바로 홍상수 감독이다. 매년 찍어내듯 영화를 찍던 홍상수 감독이지만 이번 이슈로 인해 기존 작품들보다 크게 관심을 받은 감이 없지 않다. 게다가 한 층 더 나아가 이슈의 주인공인 김민희를 주연으로 내세워 작품을 했다. 일종의 도전일까 아니면 받아들이는 것일까. 아무리 자전적인 요소가 있다고 추측되던 홍상수 감독의 영화지만 이렇게까지 현실과 경계가 무너져있는 작품은 또 처음이었다.(거기에 내용까지!)
영화만 놓고 보자면 꽤 재미있는 작품이다. 홍상수 감독답지 않게 1부와 2부의 균형이 아주 무너져 있으며 두 에피소드는 반복이 아니라 선후관계를 가진다.(물론 영화관 씬을 통해 이를 어느 정도 별개로 두려 하지만 이후 나오는 에피소드들에서 선후관계로 추론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또한 1부에서는 인서트 컷들이 전작들보다 더 많이 사용이 되고 2부에서는 기존 작품들보다 더 격정적인 분위기로 영화가 진행되는 느낌이 있다. 영화 자체만 놓고 보자면 굉장히 흥미롭다. 한국에서 파스타를 자주 먹냐고 물어보자 맛있다, 배가 고파서 그렇다 등 이미 소통 구조가 무너져있는 대화들이 오가고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남자가 영화의 주변을 배회하고 개입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술자리 씬들은 꽤나 시끌벅적하다. 그런데 영화가 표현하는 감정은 쓸쓸함과 외로움이다. 꽤나 화려하게 영화는 구성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영희[김민희 분]는 더 쓸쓸해진다. 홍상수 감독의 리얼한 연출과 만나서 건조하지만 보는 사람을 흔드는 연출을 한다. 더불어 이 모든 연출은 김민희의 연기가 완성해낸다. 수상의 이유가 있는 연기였고 모두에게 둘러싸인 공간 안에 혼자만의 공간을 만든 것 같은, 묘한 공간감을 만들어내는 연기였다.(그래서 영희가 더 고독해 보였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을 보다보면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오른다. 이제까지 현실에서 죄를 저질렀지만 작품으로 인정받는 예술인들은 많았다. 할리우드에서는 로만 폴란스키가 그러했고 케이시 애플렉도 아카데미 수상을 통해 영화인으로서의 예술성은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죄를 영화 속에 끌어오지는 않았다. 최근 우디 앨런의 <카페 소사이어티>가 전작들보다 더 불륜을 미화하는 느낌이 강해 아쉬웠는데(우디 앨런의 과거사와 겹쳐보이면서) 이 영화는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가져오면서 진행이 된다. 어찌 보면 자학이지만 사실상 스스로를 변호하는 느낌이 강했다. 영희를 외롭게 만들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 영희의 주변인들은 영희를 옹호하고 마지막 감독[문성근 분]과의 대화는 마치 홍상수와 김민희가 직접 영화에 들어와 신세한탄을 하는 것 같았다.(감독의 자신의 작품 성향을 설명하는 것을 보면 이건 홍상수 그 자체다.) 그렇다보니 어떠한 방향으로 영화를 읽으려 해도 그들의 이야기로만 보이고 그 이야기로 스스로를 깎아내리거나, 혹은 변호하려고 하니(당연히 후자의 경향이 더 강하다.) 완성도나 영화의 재미와는 상관 없이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죄를 지은 사람이 만든 작품이 잘 만든 경우는 있었지만 자신들이 지은 죄를 소재로 잘 만든 작품이 나오니 작품으로서 좋아해야 할지, 혹은 현실로서 안타까워해야 할 지 쓸 데 없는 고민이 생긴다. 언제나 예술가의 윤리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것 같은 작품은 또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위 주제에 대한 갑론을박은 잠시나마 굉장히 크게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다.(물론 거부반응이 대다수지만) 뭐가 어찌됐든 작품을 받아들이는 건 영화를 보는 관객 개개인의 몫이다. 필자는 예술적인 성취는 인정하고 영화 자체도 재미있게 봤지만 그러면서도 보는 내내 불편함과 의문을 느꼈던, 그런 작품이었다.